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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찬란한 첫사랑, 마지막에야 내게 건네는 인터뷰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신작 영화 <마리아>는 전작 <재키>와 <스펜서>에 이어 20세기 위대한 여성의 초상을 그리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재키>에서는 대통령의 부인으로서의 삶을, <스펜서>에서는 왕세자비의 고립된 내면을 섬세하게 풀어냈던 라라인은 이번에는 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를 선택했다. 그녀는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명성을 떨쳤지만, 동시에 수많은 외로움과 복잡한 감정 속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마리아>는 그녀의 삶을 단순한 재현이나 영웅담의 서사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의 시간, 다시 노래하고 싶은 갈망과 기억, 고독, 그리고 사랑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배우는 안젤리나 졸리다. 영화계에서는 너무도 명확한 존재감을 가진 배우이기에 마리아 칼라스에 녹아들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영화가 끝난 후 안젤리나 졸리는 마리아 칼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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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적이어도 괜찮은가”라는 불안은 곧 사라졌다


영화의 전반부는 매우 정적이고, 서사의 밀도보다 감정의 여운에 무게를 둔다. 익숙해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영화는 마리아 칼라스라는 인물을 조금씩 관객의 품 안으로 밀어넣는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망상이 유려하게 교차되는 가운데, 삶을 성찰하는 그녀의 시선과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진다. 영화 내내 마리아는 ‘맨드랙스’라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데, 이는 극 중 그녀가 자주 마주하게 되는 ‘리포터 맨드랙스’라는 인물과 연결된다. 그 리포터와의 인터뷰는 결국 마리아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그녀 스스로에게 말하는 고백이다.


“마리아,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걸 알고 있나요?”

“자주 있는 일이에요.”


이 대화는 단순히 극중 인물이 건넨 능청스러운 농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마리아 칼라스가 오롯이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회한으로 볼 수 있다. 무대 위에서 환호받던 디바로서의 마리아는 현실 속 저물어가는 자신을 외면하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을 떨치지 못한다. 무대와 노래는 그녀의 첫사랑이다. 그리고 그 첫사랑은, 평생을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기에 더욱 애틋하고 아프다. 그녀의 인생에서 ‘오나시스’라는 남자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공식적인 연인도 아니고, 법적인 남편도 아니었지만 마리아의 삶과 감정 속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늘 그녀를 뒤로한 채 떠났고 끝내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지만, 마리아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영화는 이 관계를 낱낱이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듯 보여준다. 관객은 그 관계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고, 마리아가 느낀 슬픔과 사랑, 미련을 섬세하게 공감하게 된다. 영화 <마리아>는 마리아 칼라스의 진심이 담겼던 이 두가지의 사랑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녀의 삶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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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지는 피아노의 위치, 다시 노래하고 싶은 마음


가장 상징적인 메타포는 단연 그녀의 집에 있는 피아노다. 페루치오라는 집사가 몇 번이고 피아노를 옮긴다. 거실에서 창가로, 안방으로, 다시 스피커가 있는 작업실로. 피아노의 위치는 마리아의 내면 상태를 반영한다. 어느 순간엔 음악이 너무 멀게 느껴지고, 또 어느 순간엔 그리움이 솟구쳐 창가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피아노 앞에 앉고 싶어진다. 마리아는 말한다. “이 위치는 내 의도에 맞지 않아.” 그녀의 ‘의도’는 곧 갈망의 움직임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묻는다. “내가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까?”. 페루치오와 브루나는 그녀의 평생을 함께한 헌신적인 가족이자 친구다. 피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곁을 지켜준 존재들이다. 마리아가 그들과 있을 때만큼은 진심을 드러낸다. 그녀의 마지막을 지키는 그들의 담담한 태도는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눴던 그들은 그녀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증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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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아름다움 속 고독을 담은 연출


파블로 라라인은 정적인 미장센과 극도로 절제된 감정선으로 마리아의 내면을 그려낸다. 그녀의 어린시절 회상 장면은 흑백으로 표현되는데, 그 기억이 단순한 회상이 아닌 트라우마이자 상처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어린 마리아 역을 연기한 ‘아겔리나 파파도풀루’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참담하지만 순수했던 소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극 중 안젤리나 졸리의 감정선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망상 속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장면에서는 카메라 시점이 마리아와 나란히 걷거나 그녀를 응시하는 듯 연출되어, 관객도 그 환상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유도한다. 그런 장면이 깨질 때, 풀샷으로 전환되며, 혼자 남겨진 마리아의 모습은 그녀의 짙은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치로 기능한다. 이 모든 장면을 관통하는 건 부드러운 조명, 필름 톤의 색감, 그리고 시대 고증에 충실한 미술과 스타일링이다. 무엇보다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는 놀랍도록 섬세하다. 그녀는 일부 아리아를 직접 노래했다. 그 순간의 표정과 호흡, 시선은 얼마나 그녀가 철저히 연습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엔딩 크레딧에서 실제 마리아 칼라스의 영상이 흐를 때, 관객은 생각보다 더한 고증에 놀라게 되고, 동시에 이 영화가 진정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한 인물의 외형 뿐 아니라, 그녀가 남긴 감정의 파편들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는 다시 노래하고 싶었다. 그렇게 꽁꽁 뭉쳐진 마음은, 오래된 집 한가운데에 있는 피아노에 숨어있었다. 가장 사랑했던 것들과 다시 조우하기 위한 조용하고도 간절한 발버둥. <마리아>는 거대한 서사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한 여인의 오래된 갈망, 끝내 닿지 못한 사랑, 그리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목소리를 애써 기억하려 한다. 그녀의 마지막 아리아는 조용히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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