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메트로폴리탄의 경호원이 있다. 그는 미술관의 그림들을 지키는 일을 했지만, 사실은 그의 마음 한 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형의 죽음 이후, 브링리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으로 들어가버렸고 그곳이 바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200만개가 넘는 작품이 전시된 메트 안에서, 10년간 일한 브링리. 그는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를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끈다. 책 장을 넘길 때마다 작품이, 얼굴이 하나 하나 지나간다. 공간이 그려지고, 삶이 그려진다. 오른손에 잡히는 페이지가 얇아지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그의 마지막 업무를 따라하게 된다.
메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는 일 말이다.

여기 인계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 은키시(Nikisi), 현대 콩고민주공화국 부족인 송예사람들이 만들었다. 송예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것은, 얼핏 보아도 평범하지 않다.
초자연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공이 들어가 있다. 무당 응강가는 비심바라는 약재와 주술적인 물질을 주입했고, 마을 남자 중 한 명이 언제나 그 곁을 지켰다. 야자 섬유로 만든 끈으로만 잡을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강력한 은키시를 지키며 그는 꿈이나 영매를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받곤 했다.
나는 한참 뒤에야 은키시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긴 눈과, 딱딱한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웅장함과 묵직함. 인간의 손길 너머에서 아득히 느껴지는 강렬함이 놀랍다.

물론 지극히 인간적인 것에도 강렬함이 깃들어있다.
여기 잠든 하녀를 보자. 그녀를 둘러싼 물건들은 정적이고 일상적이다. 실내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오는 빛의 절묘한 표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순간들을 그냥 스쳐보내지 않을 때 느껴지는 느낌을 포착해낸 작품이다. 익숙함 자체에 깃들어져있는 장대함과 성스러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수확을 봐도 그러하다. 황금빛 들판과 항구가 펼쳐진 광활한 풍경 속에서, 마치 풍경처럼 존재하는 농부들이 있다. 배나무 아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홉명의 농부들을 보다보면, 어딘가 따듯하고 희극적인 애정이 샘솟는다.
어디선가 참새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스치는 갈대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출장 이후 간신히 얻어낸 오후 출근 날에, 급하게 역 근처 김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많은 테이블, 많지 않은 사람들 중 중년의 여성분이 눈에 띄었다.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밥을 먹는 와중에, 여성분은 꼿꼿하게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우동 국물이 얼마나 따듯한지, 김밥 속 단무지가 얼마나 큰지. 모든 것을 제대로 음미하며 시간을 꽉 채워 보내고 있었다.
일상의 성스러움은 그런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발은 좀 아프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보다 다리가 부러지는 편이 훨씬 낫다고 했다. 요즘 2N년 인생 처음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일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곤 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가 낳은 노동의 소외는 우리를 위협해오고 있으니. 나는 그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형태의 일을 하면서 살아야하는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절을 떠올린다. 푸른색 근무복 아래 비밀스러운 자아들이 있는 것처럼, 편의점 문의 종소리 아래에도 당당한 자아들이 있었다. 다양한 인종, 나이,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행운이다. 그건 마치 가만히 있어도, 저 멀리 다녀올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가장 역동적인 형태의 예술이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쉽게들 좁아진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회사. 나는 점점 나와 비슷한 사람들,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 더 정확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 읽으면서 게속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싶다.
정확히 어떤 형태로 실현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쌀쌀해진 새벽, 사람 많은 지하철 출근길에 짬을 내 읽은 경비원의 이야기는 좋았다.
브링리의 글을 읽다보면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비로소 그 시간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도망가듯 흘러가는 시간들을. 그 속에 함께 흘려보낸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