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유럽 여행을 하며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미술관이었다. 여러 도시를 이곳저곳 쏘다니는 바쁜 여정 와중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 나라, 그 도시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일이었기에 어느 곳에 가든지 간에 하루는 꼭 미술관을 가는 일정을 고수했었다. 그렇게 3~4일에 한 번씩 내로라하는 여러 미술관을 돌다 보니 공통으로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작품도, 아기 예수를 그려낸 수많은 명작도 아닌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은 잘 다려진 유니폼을 입은 채 오가는 관람객을 예의주시했다. 처음에는 지은 죄도 없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작품을 감상하다 말고 가만히 그들을 지켜 다 보니 나름 사람 같은 면이 있었다. 칼같은 주름의 완벽한 정장을 입었든, 우리에게 조금 친숙한 위아래 착장의 경비원 유니폼을 입었든 간에 그들은 구둣발을 가만두지 못했다. 계속해서 다리를 구부렸다, 피거나 앞뒤로 약간씩 움직였고, 아주 가끔은 화강암의 미술관 벽에 기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인간미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저명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 정도로 아름답고 거장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작품들을 매일 같이 마주하는 일이란 어떤 느낌일까?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과 사람의 대화로 채우기보다는 관람객의 행동만을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 있을 그 순간의 흐름은?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적막만이 남은 미술관을 뒤로하고 가장 마지막에 빠져나올 때의 그 심정은?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하는 그 독특한 순간들을 상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경비원의 일을 두고 이 직업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묻는다면, 사람마다 성향에 따라 천상의 직업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루하기만 할 것 같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요한 적막 속에서 작품과 나,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기울일 시간이 누구보다도 많은 것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궁금증이 들던 찰나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게 되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대학 졸업 후 입사한 “뉴요커”를 떠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패트릭 브링리의 에세이이다. 뉴욕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패트릭은 야망이 넘치는 젊은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형 톰이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으며 그의 세상은 바뀌게 된다. 형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더 이상 아등바등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 패트릭은 삶의 의욕을 잃고 새로운 직업을 찾는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 패트릭은 그곳에서 10년을 근무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회고, 예술과 작품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순간을 기억해 나가기 시작한다.
책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한 남자의 첫 근무일을 묘사하며 시작된다. 새로운 경비원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패트릭은 미술관의 전경과 그의 사수에 대해 서술하며 앞으로 그에게 주어질 일들을 암시한다. 사방에서 대화가 들려오고, 문을 열자 당연한 듯 펼쳐진 위대한 거장의 작품에 압도되어 버린다. 아직 나무 바닥과 대리석 바닥의 차이점을 깨닫지 못한 그는 새로운 직장에서 어리숙해 보이기만 한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마치 회사에 처음 출근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의 모습과도 같아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근무 첫날, 눈앞에 놓인 수많은 관람객을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의 축소판과도 같은 이곳에서 관람객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을 테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곳에서 보낼 시간이 짧을 필요가 없다고.
그는 처음 근무하던 날부터, 10년이 지나 마지막 근무일을 맞이하는 퇴임 날까지를 묘사한다. 그 사이 사이에는 미술관에서 근무하게 된 가장 큰 계기인 형과의 추억이 묘사되어 있다. 유난히 우애가 좋았던 폴과 패트릭 형제는 사회에서 입지를 굳히며 자리를 잡는 시기에 남들은 스쳐 지나가기만 할 죽음이라는 고난을 맞닥뜨리게 된다. 폴이 세상을 떠나기 전, 불행 속에서도 간직해왔던 조그만 행복의 순간은 이따금 떠오르는 기억처럼 책장마다 스며들어 있다.
라파엘로를 좋아했던 형의 병실 침대 머리맡에는 “검은 방울새의 성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형의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병실을 지키곤 했는데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의 어느 날, 형제의 어머니는 잠이 든 아픈 아들과 패트릭, 그리고 새벽의 해가 들어오는 그 풍경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바로 옛 거장들이 그린 그런 그림이잖아.” 체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닥쳐오는 불행의 폭풍 속에서도 일말의 따스한 기운을 찾아내려는 어머니의 심정은 헤아릴 수 없게 사무치기만 한다.
![[크기변환]Raphael,_Madonna_del_Cardellino,_1507,_Uffizi.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13225818_wgeunzlk.jpg)
에세이에서 줄곧 형과의 추억만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패트릭은 미술관의 경비원으로서 근무하는 동안 느꼈던 것들에 관해 서술한다. 거북이처럼 흘러가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되새김질하여 본인의 것으로 만든 예술의 의미나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는 세계를 뒤흔든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작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좋은 작품인지 나쁜 작품인지 함부로 선언하지 말고, 그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예시로 클로드 모네의 “여름의 베퇴유”를 들어 설명한다.
무언가가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고 설명하는 그는 모네의 작품이 유용하고 실용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두뇌가 허용치 이상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다. 모네의 그림을 보면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순간을 연상시킨다는 그의 표현은 미술관에서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마주쳤을 때 온몸이 얼어붙었던 과거의 기억을 돌이키게끔 만든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소용이 없을 것을 직감한 순간에는 두 눈을 반짝이며 작품 속에 빠져드는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에는 조각상이 그랬다. 나폴리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마주친 거대한 파르네세의 황소나,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마주친 가디 토르소는 석상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극대치로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거대한 돌을 깎고 다듬어 실제 살아있는 생물보다도 더 완벽하게 만들어 관객을 매료시키는 작품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넋을 놓은 채 수십 분을 조각상 앞에서 흘려보내며 주어진 시간 속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많은 관람객을 마주하며 생기는 소소한 일화는 책 속 작가가 서술하는 과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사이를 장식하는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그중에서도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 어머니와 아이의 대화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분수대의 가운데,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세계 통용의 미신을 두고, 어머니는 아이에게 두 개의 동전을 건넨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작가처럼, 나 또한 이 문장을 읽고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많은 분수대에 동전을 던져보면서,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기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2개가 있다면, 2개 모두 나를 위해, 100개가 있다면 100번 소원의 기회를 위해 기도하는 개인주의적 현실 사회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따뜻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작가처럼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총 13장으로 이루어진 챕터의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10여 년의 경비원 생활을 매듭짓고, 은퇴를 결심한다. 그는 구석에 서서 사람을 지켜보는 대신,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사람들을 이끌며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여행 가이드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고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지막 근무일의 퇴근 순서를 밟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25만 부라는 기록을 세운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이 책에 이끌리는 개인적인 사유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소시민적인 일상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 현실에서 벗어난 판타지 속 주인공도 아니고, 인생 속 극심한 롤러코스터를 타며 희로애락을 자아내는 드라마 속 주인공도 아닌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일원 속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 작품에는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네가 그렇듯이, 나 또한 그렇기에. 새로운 일상을 꿈꾸며 제3의 인생을 시작한 패트릭 브링리는 누구나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