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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중 1876'

  

 

겨울이 올 즈음이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연말 약속을 잡으며 관계를 되돌아볼 때마다, 나는 늘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속 앨빈과 토마스를 만나게 된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봤다. 서로를 누구보다 아꼈지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솔직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였다. 그들의 관계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주인공들과도 닮아 있었다.

 

수상소감의 언급으로 상연과의 과거를 돌이키기 시작한 은중처럼, 토마스는 오랜 친구 앨빈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토마스는 앨빈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송덕문을 써야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상황에 놓인다. 톰은 앨빈과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기억을 되짚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어린시절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할로윈 파티에서였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서점을 운영하던 앨빈은, 파티에서 천사 클라렌스로 분장한 토마스를 처음 만난다. 엄마 분장을 한 앨빈은 단번에 토마스의 분장이 클라렌스 천사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그날 이후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두 사람은 늘 함께였다. 앨빈은 늘 천진난만하고 아이디어가 많았다. 그 이야기들은 토마스가 작가로 성장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앨빈의 말 한마디면 토마스는 막히는 글을 술술 쓸 수 있었다. 그런 도움으로 대학 진학에 성공했지만, 도시로 떠난 토마스는 점차 앨빈과 멀어진다. 톰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글을 쓰지 못해 슬럼프가 오고 약혼자 애니, 앨빈과의 관계 또한 삐걱이게 된다.

 

 

 

 

그러던 때, 앨빈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앨빈은 토마스에게 아버지의 송덕문을 부탁한다. 하지만 슬럼프에 시달리던 토마스는 끝끝내 글을 쓰지 못했고, 그 일로 둘의 사이는 균열을 맞는다. 앨빈은 결국 직접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낭독하게 된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톰은 앨빈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재능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멀어진다. 앨빈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후 일주일 뒤 토마스는 앨빈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되고 만다.

 

 

 

 

 

송덕문


 

토마스는 앨빈과의 추억을 하나씩 되짚으며, 자신이 써왔던 모든 글의 근원은 사실 앨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제서야 톰은, 자기 인생이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우정


 

이처럼 우정은 미묘하다. 관계는 그냥 시간이 흘러서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에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기꺼이 한 발을 더 내딛는 것이다.


‘은중과 상연’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 은중의 주변엔 늘 사람이 많다. 상연은 그런 은중을 보며, ‘걔는 다 가졌으며 나는 걔를 이길 수 없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건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은중은 언제나 먼저 다가가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그런 ‘작은 노력’들이다.

 

 



 

나는 상연이나 토마스에 가까운 사람이다.

 

한때는, 아니 어쩌면 지금도 나는 친구 관계를 비롯한 모든 사람간의 관계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같이 지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너무도 어렵다. 살갑지도, 상대의 마음을 잘 읽어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대답을 해야, 어떤 반응을 보여야 계속 함께 있고 싶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끊임없는 계산을 반복하느라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친구란, 이해관계 없이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지속된다. '오늘 만날래?' 그 한 마디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렸다.


이런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언제나 연말이었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보고 싶다며 연락을 건네올 때, 그 한 통의 메시지가 결코 가벼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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