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스펙이다 못해 기본으로도 모자라다. 이러한 현실에 한탄이 따른다. 우리나라가 한글을 안 쓰고 영어를 사용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한글은 문자이지, 언어가 아니다.
한국어에는 영어 ‘yellow’에 대응하는 단어가 ‘노랗다’뿐 아니라, ‘누렇다’, ‘샛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 다양하니, 세종대왕은 정말 위대하다.
역시 어색하다. 한국어의 색체어가 발달한 것과 한글을 위시한 세종대왕의 업적은 직접적으로 긴밀하지 않다.
다소 과장하듯 말하였지만, ‘한국어’, ‘한글’, ‘세종대왕’ 등을 키워드로 이리저리 조합하여 검색해 보면 심심찮게 유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 실수나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정도가 지나치다. 뭇사람은 한국어와 한글의 차이를 정말 모르는 것 같다.
단도직입한다면, 한국어는 언어이고, 한글은 문자이다. 이 간명한 문장만 기억하면 된다. ‘한국어’는 영어로 ‘Korean (language)’이다. 한편 ‘한글’은 우리 고유문자이기에 영어로도 ‘Hangeul’이다. ‘김밥’과 ‘비빔밥’이 외국에서 따로 번역된다기보다는 ‘gimbab’, ‘bibimbap’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글에 무지한 외국인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선, ‘Korean alphabet’ 정도라 갈음할 수 있겠다.
따라서 ‘나는 너를 사랑해’와 ‘아이 러브 유’는 각각 한국어와 영어이지만, 모두 한글로 표기된 셈이다. 그렇다면 ‘Naneun Neoreul Saranghae’와 ‘I Love You’는 어떨까. 이 또한 한국어와 영어인 점은 동일하다. 다만, ‘한글’이 아니라 ‘로마 알파벳’으로 표기하였다.
그렇다면 한글을 사용하는 민족인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과 한국인이 만난다면 대화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이다. 서로 생전 처음 듣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문자가 없을 뿐 언어는 존재한다. 그 민족만의 고유한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글’을 채택한 것이다. ‘로마 알파벳’도 있지만, 한글을 사용하는 이유로는 드디어 우리가 줄곧 배워온 ‘세종대왕의 위대함’이나 ‘한글의 우수성’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한글은 자질문자로…… 한글은 과학적으로…… 한글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우리 고유의 언어가 존재했다. 다만 따로 표기할 방법이 없어 중국의 ‘한자’를 빌려다가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한국어’를 발명했다는 말은 터무니없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어느 의견을 빌려 온다면, 그가 한국어를 만들면서 당시 사람들의 사고를 뒤바꾼 셈이 된다. 이는 곧 우리 선조들은 1446년에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전까지 중국어를 사용하다가 그 이후로 차근차근 우리만의 언어가 형성되었다는 꼴이다.
개인이 언어 전체를 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한두 가지 단어를 만드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이다(그조차도 다수에게 통용된다는 전제하에만 가능하다). 세종대왕이 발명한 한국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워낙 다방면에서 활동한지라 문헌을 뒤져보면 몇 가지 나올지 모른다. 실제로 ‘훈민정음’이라는 단어도 그가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자면, ‘훈민정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훈민정음’ 즉 문자가 첫째이고, 그것을 처음 반포할 때 해설해 놓은 기록물(책) ‘훈민정음’이 둘째이다.)
이처럼 한국어와 한글은 그 명칭이 비슷하여 혼용되곤 한다. 차라리 ‘한글’이라는 명칭을 ‘훈민정음’ 그대로 사용하였더라면 ‘한국어’와 헷갈리지 않았을까. 사실 그 차이를 구분하는 문제를 진정으로 풀어야 한다면, 헷갈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럼에도 일상에서는 번번이 미끄러진다. 누군가는 실수에 뭐 그리 진지하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것이 매년 언급되고 지적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한국어와 한글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훈민정음 창제가 한국어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언어가 구전되는 것과 기록으로 남는 것은 그 생명력이 다르다.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언어를 문자로 기록하려는 이유도 궤를 같이할 것이다.
또 한국어를 한자로 기록하는 것과 한글로 기록하는 것은 다르다. 양반층의 전유물이었던 한자와 달리, 한글은 일반 백성도 손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글이 민족 전체의 사고를 확장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한글로 기록된 소설이나 사설시조같이 일반 서민들도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영향이다.
그러니 세종대왕 본인이 창제한 문자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訓民正音’으로 명명한 것이 그저 있어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혹자는 한글이 아닌 한자를 계속 썼더라면, 오늘날 중국어만큼은 능하였으리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문자를 가져온 것이지 언어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하물며 문자를 곧이곧대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편의적으로 바꾸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 배운 차자표기인 이두, 구결, 향찰 등이 그 예이다. 일본인이 그들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한자를 변형한 ‘가나’를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어나 한문에 능통한 것이 아닌 것과도 맥락이 닿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한자나 알파벳으로 표기해 보라.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에는 한글이 제격일 것이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이 ‘1446년 9월 상순에 반포되었다’라는 기록에서 유래한다.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임의로 상정하고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변환하여 10월 9일로 지정한 것이다. 따라서 반포 일로부터 올해 한글날을 계산하면 제579돌인 셈이다. 발명 시기를 알 수 있는 현전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라는 칭송도 이러한 기록이 있는 까닭이다.
한글날은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이지, ‘한국어’의 그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관련된 행사에는 이따금 후자에 치중한 모습이 보인다. 그 현상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본질을 해칠 우려가 있다. 한국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고, 글을 쓰면서도 충분히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다만 한글은 관점을 살짝 비틀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한글날엔 한국어와 한글을 구분하여 ‘한글’에 주안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