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연은 잠시 스쳤을 뿐인데 진한 여운을 남기고, 영원할 것만 같던 오래된 인연은 별것 아닌 이유로 쉽게 멀어지기도 한다. 인연이란 늘 기묘하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만남은 그때의 시간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억지로 만들 수도,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 인연이다.
같은 반 짝이 되었기에,
같은 학원을 다녔기에,
학창시절 같은 아이돌을 좋아했기에
그런 우연들이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는 친구 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모든 인연에는 그 나름의 계절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멀어진 건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모양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각자의 삶의 궤도가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겹쳤던 그 시절에 만난 인연이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에는 여전히 아쉬움과 슬픔이 남는다. 내 인생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어떤 인연은 실제로 끝까지 함께하는 관계로 남기도 한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이상하게도 서로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한 시절인연을 넘어 인생응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된다.
가끔 기대한다. 이미 멀어진 인연들이 언젠가 다시 돌고 돌아 마주칠 날이 오지 않을까. 또 다른 모습으로, 서로의 다른 시절에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잃어버린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이는 지나간 듯 마음속에 오래 남고, 어떤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곁을 지키며, 또 어떤 이는 언젠가 다시 다가올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인연 앞에서는 다짐할 수밖에 없다. 억지로 붙잡지 말 것, 그러나 소중한 사람은 놓치지 않으려 애쓸 것.
결국 우리의 삶은 그렇게 스쳐가고, 남고, 다시 이어지는 수많은 인연들로 완성되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