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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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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발레단의 ’Romeo + Juliet’(로미오 + 줄리엣)이 '홍콩위크 2025@서울' 행사의 개막 공연으로 초청되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2025년 9월 26일부터 27일까지, 2회의 공연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2017년 새롭게 부임한 셉팀 웨버(Septime Webre) 예술감독이 안무를 맡아 2021년 초연된 <로미오 + 줄리엣>은 중세 시대 베로나에서 가문 간 대립으로 인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두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1960년대 홍콩의 황금 시대를 배경으로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수많은 안무 버전의 역사 속에서, 홍콩발레단의 <로미오 + 줄리엣>은 12세기 이탈리아 베로나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유지하기보다 이를 바꾸려는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진다.

 

1935년에 작곡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러시아의 라브롭스키가 안무한 버전으로 처음 공연되었지만, 프티파의 안무를 기반으로 원전이 구성된 다른 고전 발레와 달리 다양하게 개정되어 엄밀한 의미에서의 ‘고전 발레’는 아니다. 현재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존 크랑코, 케네스 맥밀란을 거쳐 대표적인 ‘드라마 발레’ 레퍼토리로 자리잡았고,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매튜 본, 노이마이어 등의 모던한 해석이 더해진 안무의 버전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다양화된 안무 레퍼토리 속에서, 1980년대 홍콩이라는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로미오 + 줄리엣>은 기존의 서구적인 발레의 고전적인 미학과 1960년대 ‘황금기’를 겪던 홍콩의 역사와 문화라는 배경과 혼합되어 새로운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 기존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다양한 버전에 대한 지식을 얻고 싶으시다면, 관련된 기사를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기본적인 서사 구성과 흐름 속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그 배경과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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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발레단의 발레 <로미오+줄리엣>이 원작의 서사 구조와 캐릭터의 틀을 유지시키면서 구체적인 설정을 배경에 맞게 각색한 것도 눈에 띈다. 줄리엣은 상하이 출신 부호의 딸이고, 로미오는 홍콩의 유력 가문 출신이다. 줄리엣의 아버지와 타이 포(티볼트)는 동업자 관계라고 명시되어 있고, 타이 포(티볼트)는 삼합회의 보스다. 등장인물의 이름 역시 중국식으로 바뀌었는데,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쇼는 리틀 맥으로, 또 다른 친구 벤볼리오는 베니로, 티볼트는 타이 포, 줄리엣의 약혼자 파리스 백작은 미스터 파커가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밀 결혼식을 주관한 로렌스 수도사는 무협의 ‘사부’(시푸)로, 줄리엣을 키웠고 줄리엣의 어머니보다 더한 애착을 지닌 유모가 유사한 나이대의 ‘아마(Amah)’로 변화했다. 로미오와 머큐쇼, 벤볼리오와 같이 놀던 ‘거리의 세 여인들’은 베이누이, 번역하자면 ‘불량소녀’라는 명명으로 변화했다.

 

줄리엣의 어머니와 티볼트가 애인 사이였다는 암시적인 설정은 기존의 (‘로미오와 줄리엣’ 하면 상상되는) 크랑코와 맥밀란 계통의 안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거나, 마치 파트리스 바르 안무의 발레 <지젤> 속 지젤과 바틸드가 이복 자매였다는 출생의 비밀처럼 그 코드를 미리 알고 있던 이들만 눈치채는 포인트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타이 포(티볼트)와 줄리엣의 어머니가 애인 사이였다는 것을 초반부터 극에서 명시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줄리엣의 부모 사이에서의 갈등도 공공연히 드러낸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에서도 이러한 설정이 등장하지만, 이 버전에서는 줄리엣의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는 설정이기에 크게 놀랍지 않았던 반면 이 버전은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줄리엣과 로미오가 두근거리며 사랑을 쌓아 가던 당시, 타이 포(티볼트)와 줄리엣의 어머니의 밀회가 병치되기도 한다. 이때 로미오와의 관계가 들키면서 줄리엣은 경고를 받고, 줄리엣의 어머니와 타이 포(티볼트)의 관계 역시 줄리엣의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암시를 남긴다. 따라서 타이 포의 죽음에 분노해 로미오에게 무기를 겨누기도 하지만 끝까지 애인을 애도하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떠나는 줄리엣의 어머니의 모습은 줄리엣의 가족 사이에 내재한 균열과 갈등을 전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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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홍콩발레단 버전에서 부각되는 것은 파리스 역할을 맡은 미스터 파커가 서양인이라고 명시된다는 점인데, 이는 그 당시 홍콩을 둘러싼 국제적인 힘과 그 속에서 복잡해진 정치경제학적 맥락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영국령이었던 홍콩과 중국 본토 사이의 정치적인 혼란을 담은 텍스트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가능성과 암시만 있을 뿐 직접적인 근거가 부족하기에 단지 삽입된 홍콩의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혼종성이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줄리엣과 줄리엣 어머니의 ‘사랑’을 통제하는 줄리엣 아버지의 모습이 다른 버전에 비해 유독 강화된 것 역시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중세 베로나와는 또 다른 방식의) 가부장성을 반영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타이 포(티볼트)를 모욕하기 위해 수행하는 리틀 맥(머큐쇼)의 키스는 이를 퀴어 코드로 암시할 여지를 남기는데,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머큐쇼의 정체성이 게이라고 명시된 것과 희곡 속 로미오의 하인 역할인 밸더자(발티자르)의 이름을 한 캐릭터와 연인 사이라는 설정을 연상시킨다. 줄리엣의 유모가 줄리엣과 동갑인 시녀로 바뀌며 기존 맥밀란 안무 버전에서 유모 앞에서 자신의 가슴을 터치하며 스스로의 성숙함을 자각하는 줄리엣의 첫 등장 장면 역시 느낌이 변화하며, 줄리엣과 원작 속 유모를 이어받은 시녀 ‘아마’의 퀴어 코드 역시 흥미롭다. 최근 연극 <스타크로스드>, 뮤지컬 <앤(&) 줄리엣>, 그리고 발레에서는 매튜 본이나 벤자민 밀피에의 안무처럼 원작이 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퀴어 코드를 ‘발견’하거나 재창작하는 작업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흐름 속에 있는 셈이다.

 

3막의 초반 부분, 줄리엣과 로미오가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역시 더욱 길어져, 기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무보다 수위가 상승해 마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 되었다. 줄리엣의 가짜 죽음 이후, 베니(벤볼리오)를 통해 줄리엣이 죽었다는 가짜 소식을 듣게 되는 로미오의 장면이 추가된 것도 이 버전만의 특징이다. 의문스러운 것은, 로미오가 홍콩의 유력 가문 출신임이 줄거리 상에 명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막 초반을 제외한다면 딱히 ‘가문’의 대립이 부각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대표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 버전들도 캐퓰릿 가문과 로미오와 머큐쇼, 벤볼리오 3총사의 갈등을 위주로 가문의 대립을 표현하긴 하지만, 두 가문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베로나 영주의 자리가 부재하고 음악 상으로 베로나 영주와 대응되는 인물이 등장해야 할 타이밍에 로미오의 사부가 등장하여 중재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사부를 통해 싸움이 가라앉긴 하지만, 그가 베로나의 영주가 하는 역할인 비슷한 행정적이고 공식적인 명령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후에 타이 포(티볼트)를 죽인 로미오가 도망자 신세가 되는 이유에 서사적 유기성이 감소한다. 또한 로미오의 가문이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리틀 맥(머큐쇼)가 죽어가며 하는 ‘두 가문 모두에게 저주를’이라는 원작의 대사를 반영하는 마임 역시 그 의도가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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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한 약 135분으로, 기존의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3막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2막과 3막을 같이 공연하기에, 인터미션은 한 번으로 주어졌다. 전반적으로 영국 로열 발레단과 한국의 경우 유니버설발레단이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는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구성과 흐름이 유사하며, 포인트가 되는 안무 역시 맥밀란의 ‘발코니 파드되’의 안무가 주는 애정의 감각이나,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와 파리스를 죽인 뒤 줄리엣을 발견한 로미오에 의해 행해지는 ‘데스 파드되’ 속 마치 시체처럼 늘어진 줄리엣의 신체라는 느낌과 매우 닮아 있다. 현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장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영국 출신이자 영국 왕실로부터 ‘경’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홍콩이 영국의 통치 아래 있었기에 그러한 것일까? <로미오 + 줄리엣>의 안무가이자 홍콩발레단 예술감독 셉팀 웨버가 미국 워싱턴 발레단을 포함한 미국 발레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안무 창작의 유사성을 단순히 국가 혹은 국가별 발레의 특징으로 귀인하는 것은 속단일수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높은 유사성을 감안한다면 <로미오 + 줄리엣>을 기존 안무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기존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골격과 서사의 흐름에 1960년대 홍콩의 배경과 외양을 단순히 ‘이식’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러한 시도가 서구적인 발레의 문법을 토대로, 단순히 영국의 통치 속에서 다소 혼종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홍콩이라는 배경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가? 질문은 복잡하지만, 다소 아이러니한 결과가 있다면 이러한 창작의 시도가 오히려 기존의 프로코피에프 음악과 원작 희곡의 서사적 흐름을 기반으로 한 발레 버전을 지속적으로 접해 온 발레 마니아층에게 닿기에는 오히려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 기존의 원작과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식으로 각색한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도대체 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인지 의문이 든 것과 반대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20세기 뉴욕으로 옮겨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출신 샤크파와 폴란드계 백인으로 구성된 제트파의 갈등 속 피어난 사랑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처럼 이 작품은 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름을 이 안무에 사용해야만 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1960년대 홍콩이라는 배경을 통해 채워지는 무대의 세부 사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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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로미오 + 줄리엣>은 12세기 이탈리아 베로나의 거리를 재현하는 기존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 양식 대신, 거리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이 빛나고 홍콩의 건축 특징인 대나무 비계를 설치해 전성기의 에너지와 긴장과 분출의 역동으로 가득 찬 홍콩의 거리를 재현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만남을 하게 되는 캐퓰릿 가문의 무도회 장면은 붉은 배경의 금빛 용 장식이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장소로 바뀌었다. 무용수들은 그 당시 서구의 문화와 중국 본토의 문화를 동시에 경험하던 혼종적인 홍콩의 의복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와 남자의 경우 가죽 점퍼, 양복을 입기도 한다. 당시 사교의 중심이었던 마작장에서의 장면 역시 안무를 통해 마작을 표현한 것 역시 돋보인다.

 

기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악기 행렬이나 인형극으로 표현되었던 ‘만돌린 댄스’ 음악이 연주될 때 이 작품에서는 영화를 촬영하는 배우와 제작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당시 영화산업을 이끌며 전성기를 맞이했던 ‘홍콩 영화’에 대한 오마주다. 거리에서는 결혼을 한 커플이 등장하기도 하고, 리틀 멕(머큐쇼)와 타이 포(티볼트)의 싸움이 벌어지기 전 등장하는 이동하는 관과 하얀색 상복을 입은 여성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장례 행렬도 곧 거리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예고하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리틀 멕(머큐쇼)와 타이 포(티볼트)를 중심으로 한 삼합회의 싸움은 역시 쿵푸 동작과 봉술을 활용해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기존 버전이 펜싱용 칼을 사용해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리듬처럼 작용했다면, 여기서는 봉을 쓰는 리틀 맥(머큐쇼)과 두 단검을 쓰는 타이 포(티볼트)의 싸움은 또 다른 생생함을 전달한다. 발레 <로미오 + 줄리엣>은 1960년대 찬란했던 홍콩의 전성기의 모습과 서양의 문물과 중국의 전통이 혼합된 홍콩만의 혼종적인 문화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며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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