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네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갈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꽃」 김춘수
아마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김춘수 시인의 「꽃」.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시가 또 있을까 싶다. 이름. 사람과 다른 생명체를 구별 짓는 가장 뚜렷한 표식. 우리는 누구나 이름을 지니고, 또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인다. 반려견이든, 오래 곁에 둔 사물이든, 특정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그 존재를 향해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고 있다는 일종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대상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볼품없던 바위도 이름을 붙이는 순간 세상에 하나뿐인 바위가 되는 것처럼.
서로의 이름을 알고 부르는 행위는 인간관계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가명을 쓰는 모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떠올려 보자. 촬영 중에는 가명을 사용하다가 더 알아보고 싶은 상대에게만 최종 선택 때 귓속말로 본명을 알려준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본격적으로 바깥 세계에서 만남을 이어간다.
익명이 기본값인 인터넷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닉네임 뒤에 숨어 대화를 이어가다 마음이 통하면 결국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는다. 익명(匿名). 이름을 숨긴다는 것은 곧 나를 숨기는 일이자 타인과의 연결을 미리 차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관계 속에서 이름을 공개하고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알랭 레네 감독의 1959년 작 <히로시마 내 사랑>은 영화 촬영을 위해 잠시 히로시마에 머물게 된 프랑스 여배우 ‘그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일본인 건축가 ‘그’ 사이에서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전쟁의 아픔에 주목하는 영화다.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름, 그리고 이름을 부르는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두 주인공의 이름이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검색을 해보면 여자 주인공은 ‘그녀(elle)’, 남자 주인공은 ‘그(lui)’라고만 표기된다. 영화 속에서도 둘은 서로를 “당신”이라고만 부를 뿐, 관객은 그들이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내레이션으로 밝히거나 누군가에게 불리며 시작한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공받은 관객은 인물들에게 서서히 정을 붙여 나간다. 그러나 <히로시마 내 사랑>은 두 주인공의 이름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들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는 대신 그들이 놓인 현재와 지나온 과거에 집중하게 된다. 마치 그가 끊임없이 그녀의 고향 느베르를 묻고 파고드는 것처럼.
이름이 부재한 이 영화의 핵심은 모순적이게도 여전히 이름이다. 남녀가 서로를 “당신”이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장면은 엔딩에서 단 한 번 등장한다. 그마저도 본명이 아닌 도시명으로. 그는 그녀를 느베르라고 부르고, 그녀는 그를 히로시마라 부른다. 영화 내내 그들은 서로에게 욕망을 품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며 탐색한다. 그러나 정작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회피와 도망을 반복한다. 과거의 아픈 기억에 묶여 서로의 상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오프닝의 대사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처럼 고통을 완전히 공유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대화를 지나 마침내 서로의 도시를 이름으로 부를 때, 둘은 비로소 서로를 이해했음을 확인한다. 이틀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안다고 믿었지만, 마지막에 불러주는 이름 속에서 사랑이 완성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이름은 두 사람에게 진정한 관계의 시작이자 출발점이 된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있다.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정도가 되겠다. 이 작품에서도 두 주인공은 서로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사랑을 확인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그 한마디가 둘의 합일을 완성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읽힐 수 있다. 단지 이들은 서로의 본명이 아니라 각자의 아픈 기억이 서린 도시 이름을 부른다는 점에서 더 상징적일 뿐이다. 그와 그녀의 본명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느베르와 히로시마라는 지명조차도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도시는 그저 전쟁의 상흔을 대표하는 기호일 뿐이니까.
제2차 세계대전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이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품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판단은 오롯이 관객의 몫일 테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또한 이 영화가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름을 부르는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해 본다면,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이 영화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