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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베테랑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력범죄수사대의 서도철 형사는 밤낮으로 일하느라 가족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어느 날, 한 교수의 죽음이 이전에 발생했던 살인 사건들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도철은 악인만을 골라 처형하는 '정의구현' 살인범 '해치'를 검거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는 한편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능력 있고 사명감이 투철한 막내 형사 박선우가 합류한 강력범죄수사대는 해치가 범행을 예고한 전석우의 경호 임무를 맡게 된다.
들어가며
나름 즐겁게 감상한 터라 네이버 평점을 보고 의아했으나, 전편을 보고 비슷한 감동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선징악의 분명한 구도를 통해 거대한 사회악을 날카롭게 비판한 <베테랑>과는 달리, <베테랑2>는 소재가 되는 사회 이슈도 복합적일뿐더러 그것을 아우르는 스토리 라인까지 복잡하다. 너무 많은 것을 다루다 보니 하나하나를 따져 보면 오히려 진부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인상을 줄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사적제재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범죄에 대한 국가의 처벌이 부실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베테랑2>의 답은, '그래도 안 된다'에 가깝다. 국가와 사법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준다기 보다는 사적제재를 둘러싼 다양한 병폐를 보여주기를 택한 것이다. 어쨌거나 '댓글'로 대표되는 인터넷 여론을 거스르는 이야기다.
해치는 누구인가
전편의 통쾌한 결말과는 달리, <베테랑2>의 이야기는 범죄자가 체포되는 '해피 엔딩'임에도 (쿠키 영상과 관련된 부분을 제하더라도) 어딘가 찝찝함이 남는다.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라는 포스터 문구와는 대조적인 주제 의식 때문이다. 서도철과 강력범죄수사대는 악질 범죄자 전석우를 경호하다가 성난 시민들에게 날달걀 세례를 받기도 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의로운 암살자 해치(비록 가짜였지만)를 피범벅으로 만들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죄짓는 사람'에게 관대한 사법 체계는 범죄의 창궐을 낳고, 범죄의 창궐은 시민들의 분노를 낳고, 시민들의 분노는 사적제재를 향한 열망을 낳는다. 홍길동 같은 의적이 나타나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부조리를 단죄해 준다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현대 사회는 조선과 달리 무척 복잡하다. 이 영화가 사적제재의 딜레마를 납작하게 다루고 ‘무고한 피해자의 가능성’이라는 진부한 답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지적한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그러나 <베테랑2>가 꺼낸 카드는 투이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의 주된 포커스는 오히려 사적제재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사적제재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정의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서도철에게, 박선우는 '나는 나를 해치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틀림없는 진실이다. 박선우에게 정의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 '해치'의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자신이 아닌 정의부장이다. 정의부장은 시민들이 열광하는 해치를 내세움으로써 인터넷 방송 수익을 거둬 들인다. 그 과정에서 가짜 해치나 투이와 같은 죄없는 인물들이 조작에 휘말려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리고 박선우 또한 이러한 관계를 계산적으로 이용한다. 가짜 해치를 죽이는 데 실패하자 민강훈에게 누명을 씌워 또다시 살해를 시도하기도 하고, 서도철의 아들과 투이의 목숨을 서도철을 회유하기 위한 장기 말로 이용하기도 한다. 시민들이 칭송하는, 정의로운 '해치'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즉, 사적제재는 욕망에 눈먼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 내지는 꼭두각시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굳이 외부의 문제를 끌고 오지 않더라도 사적제재의 이면을 파헤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박선우의 범행 동기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조태오의 검거를 보고 경찰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밝힌 점, '응징'이라는 주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 자신의 롤모델인 서도철을 갖은 수를 써서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 단순한 쾌락 살인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그만의 정교한 정의관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피해자들에게 보여주는 섬뜩한 미소를 보면, 그것도 전부는 아닌 듯하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충동을 본능 안에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합리화'는 양심이 싫어하는 일을 하기 위해 외부 세계에서 정당한 구실이나 알리바이를 찾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동기를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동기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행위의 이면에 행위자조차 의식하지 못한 악마적인 파괴 욕구가 숨어있었다고 한다면, 그러니까 사실은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실제로 사적제재가 도를 넘은 마녀사냥으로 번지는 일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사적제재가 허용되어선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시스템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폭력은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나 본능적 욕망에 의해 변질되기가 너무나 쉽다. 나는 이 영화가 사적제재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기보단 사적제재를 둘러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결과에 가깝다고 본다. 하지만 서도철은 박선우를 검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박선우, 너는 내가 조서 쓸 테니까 함부로 못 죽어, 이 새끼야.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 차로 돌진해 의식을 잃은 박선우를 서도철은 필사의 심폐소생술로 살려낸다. 그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공권력에 속해 때로는 범죄자를 보호해야만 하는 그이지만, '정의구현'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여전하다. 수많은 범죄자들과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형사 서도철의 '정의'는, 당연하게도 그의 직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형사와 의적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주목한 또 하나는 서도철과 박선우의 엇갈린 시선이다. 조태오를 멋지게 검거한 서도철을 바라보며 경찰이 된 박선우는 강력범죄수사대의 막내 형사로 투입되어 그의 곁에서 또다른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서도철에게 인정받고, 서도철의 말에서 자신과 비슷한 신념을 발견할 때마다 박선우의 눈동자는 기쁨으로 빛난다. 이것이 그를 자신의 계획을 위해 끌어들이려는 계략에 불과한지, 본연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어찌 됐든 서도철과 '좋은 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박선우는 그를 '동족'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는 처음에 서도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오해한 것이다.
박선우는 서도철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범죄자들에 대한 적개심과 울분을 토로하는 서도철의 모습에서 박선우는 '동료의 자질'을 발견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석우가 살해당한 현장에서 인파가 몰려들자 서도철은 "좋은 살인이 어디 있고 나쁜 살인이 어디 있어!"라고 외친다. 그리고 민강훈을 거의 죽일 뻔한 박선우에게 "그러다 일 난다"고 충고한다. 그가 등을 돌린 뒤, 병실에 홀로 남겨진 박선우의 표정은 세상을 다 잃은 듯하다. 나 또한 서도철의 태세 변환이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졌는데, 처음에는 박선우의 과잉 진압을 목격하여 생긴 심경의 변화일까 추측해 보았지만 그가 '베테랑'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어쨌거나 서도철은 '형사'였다. 불의를 향한 뜨거운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의는 '시민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강력한 대전제를 품고 있다. 그는 일견 사적제재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명제는 단순한 관습을 넘어 그 자신의 가치관이었을 것이다. '정의로운 살인'을 추구하는 해치와는 대조적이다. 이를 깨달은 박선우는 그를 포섭하기 위해 이 근본적인 차이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바로 마지막 시퀀스의 트랩이다.
어두운 터널에서 서도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악랄한 사기극의 장본인 정의부장을 죽이고 그의 억울한 희생양 투이를 살려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이들 모두를 죽이는 것. 어느 쪽이든 누군가를 죽여야 하지만, 전자의 경우 희생당하는 것은 악인의 목숨뿐이라는 점에서 직관적으로는 전자가 훨씬 나아보인다. 그러나 전자를 택하는 순간 서도철은 박선우와 다를 바 없어진다.
다행히 동료들의 도움으로 아들이 무사히 구출된 덕분에 박선우를 체포할 수 있었지만, 만약 동료들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어느 쪽을 택했든 ‘살인자’가 된 그의 남은 생은 고통으로 얼룩졌을 것이다. 이상주의자가 신념을 거스른 대가는 가혹하기에… 이 또한 주제 의식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권력과 마찬가지로, 사적제재 또한 일종의 폭력이다. 일본에서는 교도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사형 집행 버튼을 여럿이서 동시에 누른다고 한다. 폭력을 옹호하는 당신, 그 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가? 견딜 수 없으면서 너무 쉽게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은 아닌가?
가족이라는 빛
<베테랑2>가 전편과 차별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서도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름난 범죄자들을 여럿 검거한 '베테랑' 서도철은, 좋은 형사일지는 몰라도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일에 치여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이다. "남자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는 말 아래 방치되었던 아들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의 고뇌가 시작된다. 그가 처음부터 아들을 잘 챙기는 좋은 아버지였다면 박선우에게 빌미를 잡혀 트랩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선우의 지시를 따르는 동안 그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동료들에게 아들의 구출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무신경한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을 닫는 듯했다가 위기의 순간 손을 내밀어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미소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이처럼 아들의 서사가 중심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집단 괴롭힘과 같은 부조리의 피해자가 되면 세상 모든 것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다 자칫 엇나가기 쉽다. 방에 틀어박혀 자극적인 콘텐츠에만 몰두하는 아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는데, 아버지와 라면을 나눠 먹는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을 보게 되어 기쁘다. 인터넷을 통해 어디든 닿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눈앞의 사람과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만큼 진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외
이 외에도 강력범죄수사대의 나머지 동료들을 비롯해 박선우의 범행 동기와 같은 서사가 미흡하다는 점을 또 다른 아쉬움으로 꼽을 수 있겠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안타깝게 낭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박선우의 경우는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3편이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또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던데 나 역시 불편하게 느낀 부분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여론에 휘둘리는 세태를 꼬집는 주제의식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나름의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액션씬과 정해인 배우의 연기력은 훌륭하다. 인터넷 방송을 둘러싼 네티즌들의 반응이 다소 유치하게 연출되었다는 점에는 순수하게 동의한다. 종합하자면, 나 또한 이게 최선이었을까 싶은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전편의 위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