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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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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과 여행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소재를 동시에 품은 이 작품의 설정은 시작부터 강렬한 대비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죽음을 기점으로 출발한 이야기가 단순한 애도에 머무르지 않고 소년들의 무모하지만 진심 어린 여정을 통해 삶과 우정, 성장이라는 주제로 확장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가 무대 위에서 단순한 비극을 넘어 소년들의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로 펼쳐지는 순간들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었고 나 역시 그 흐름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저항과 서정, 칼 밀러가 남긴 인상


 

'칼 밀러'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극작가로 청소년극과 문학적 각색 작업을 활발히 이어왔다. 그의 이름을 국내 관객에게 각인시킨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뮤지컬 <웨이스티드>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처음 그의 세계를 접했는데 무대 위에서 ‘꿈과 현실, 인간의 결핍’을 록 음악과 저항적 감성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특히 브론테 남매의 삶과 창작의 고통, 그리고 여성 억압의 현실을 직설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낸 대목이 오래 남아 있었다.


웨이스티드를 통해 이미 '칼 밀러'의 세계관을 접해본 나로서는 이번 작품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브론테 남매의 분투를 록 음악으로 그려냈던 그가 소년들의 불완전한 감정과 투박한 우정을 어떻게 무대 언어로 옮겨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조 소년들을 만나며 또다시 ‘칼 밀러의 언어’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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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 속에 남은 목소리


 

뮤지컬 <타조 소년들>은 영국 작가 키스 그레이(Keith Gray)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는 교통사고로 친구 ‘로스’를 잃은 세 소년, ‘블레이크’·’심’·’케니’가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장례식에 반발하며 시작된다. 그들은 로스다운 작별을 해주겠다며 그의 유골을 훔쳐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로스로 향하는 무모한 여정을 떠난다. 이 길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세 소년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겪고 서로의 숨겨진 아픔과 진실을 마주하며 우정과 성장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작품에서 인상 깊었던 연출적 요소 중 하나는 ‘로스’가 무대 위 인물들과 직접 마주하지 않는 채 관객에게만 존재하는 서술자의 위치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극 안의 친구들 블레이크, 심, 케니는 로스의 죽음 이후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려 하지만 무대 상에서 로스와 상호작용하거나 대면하는 장면은 없다. 로스는 죽음 이전의 회상이나 친구들의 말, 갈등 속 욕망의 투사로만 등장할 뿐이다.

 

이런 연출은 원작 소설 Ostrich Boys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소설 속 “Ross was dead. Kenny, Sim and I were learning to live with it.”라는 문장처럼 로스가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지만 존재감이 친구들의 기억과 감정, 행동을 통해 지속되는 방식이 강조된다.

 

무대 연출에서는 이 구조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친구들이 로스를 주제로 대화하거나 회한을 나누는 장면들 사이사이 조명이나 무대 장치(그림자, 소리 등)가 로스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무대 위에 있지만 실질적으로 닿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로스는 친구들이 각자의 죄책감, 분노, 슬픔을 투사하는 대상이 되어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답 없는 질문이 남긴 메아리 


 

어른들의 장례식이 남긴 공허함 속에서 소년들이 택한 방법은 서툴고 무모했지만 바로 그 서툶 속에 진심과 용기가 담겨 있었다. 친구의 유골을 훔쳐 떠나는 여정,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부딪히는 우연한 사건들, 서로에게 쏟아내는 분노와 고백은 모두 불완전했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청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솔직한 애도의 방식이었다. 작품은 형식적인 절차 대신 진짜 친구 다운 작별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애도가 결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완성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로스의 부재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세 소년은 로스를 통해 각자의 죄책감과 상처, 우정을 확인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그를 알았고 또 얼마나 몰랐는지 깨닫는다. 그의 죽음을 사고로만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자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지는 작품 내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답이 없는 그 공백이 이 작품의 무게를 더한다.

 

완전한 해결이나 명확한 교훈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을 마친 그들이 조금은 달라져 있음을,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자로서 앞으로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 해답 없는 질문을 끌어안는 과정에서 소년들은 애도의 또 다른 형태, 그리고 성장의 순간을 경험한다.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남겨진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가. 그 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지만 작품이 남기는 용기와 진심은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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