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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마음과 얼굴이 얼마나 섬세하게 얽혀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시인은 단순한 표정이나 행동을 그리지 않고, 마음속 두려움과 불안, 후회와 잠깐의 위로까지 담아낸다. “두려움이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얼굴”이나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 같은 표현은 우리 각자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감정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를 따라 읽다 보면, 낮 동안 마음속에 쌓인 무거운 짐이 밤으로 밀려가고, 그 밤을 견디며 잠들기 전 잠시 얻는 평온까지, 하루의 모든 얼굴과 감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그 얼굴들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로 내뱉은 것과 마음속에 담긴 것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 많은 말이 밤으로 밤으로 밀려갑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들과 하나 마나 한 말들이 밤으로 터덜터덜 걸어갑니다


어느 지점까지만 헤아리다 만 생각들이 어제처럼 또 그제처럼 밤에게 도착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도 조금 더 해보았다면 그럴 시간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반복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않았을 것이라는, 익숙한 이 후회 역시 낮을 배웅하며 어딘가에 걸터앉아 밤을 기다리고 있군요


밤은 사방에서 모여들어 아늑하게 내려앉고 있습니다


<비좁은 밤> - 부분

 

 

이 시에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심리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보여준다. 화자는 “해서는 안 되는 말들과 하나 마나 한 말들이 밤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이로 인해 화자를 찾아온 후회는 “낮을 배웅” 하며 밤을 기다린다. 말로 내뱉는 말뿐만 아니라 “담배를 피우며 서성이는 사람과 이불을 덮고 누웠으나 뒤척이고만 있는 사람과 티브이를 켜놓았지만 눈은 그걸 바라보고 있지만 홈쇼핑 광고가 반복되는 것도 모른 채로 앉아만 있는 사람...”들의 속엣말이 “한밤중으로 먹구름처럼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렇게 입 밖으로 내뱉은 말과 속에 담아두고 있는 말들은 결국 비좁은 밤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이 했으면 좋겠는 말들과 꼭 하겠다고 다짐해온 말들”은 빈틈없이 채워진 밤의 골목을 배회할 뿐이다. 말은 종이 위에도 모인다. “책상에 앉아 씌어지는 대로 쓰고 지우지 않아보기로 결심”했지만 결국 종이 위에는 많은 말들이 씌어진다. 사람들이 말을 멈추는 것은 잠들기 시작할 때다. 

 

우리는 가끔 낮에 뱉어버린 말에 대한 깊은 후회로 인해 밤을 지새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해야 하는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그리고 하나마나 한 말들 중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했을까.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가장 많이 해온 사람이다. ‘이 정도까지만 말해야지’하다가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도가 넘는 말들을 해버린다. 그리고 후회한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말들은 너무나도 많아서 밀리고 밀려 밤으로 밀려간다. 그리고 밀려난 그 말들은 비좁은 밤을 만들어 낸다. 그 비좁은 방은 곧 내 뇌를 비좁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침대에 누웠지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의 후회를 되새긴다. 그로 인해 나오는 속말은 또다시 밤을 꽉 채운다. 이렇게 말은 한번 잘못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끊어낼 수 없는 악순환을 돌도 돈다. 말이란 것은 가볍지만 무겁다. 작지만 밀도는 높다는 것이다. 이 시는 그런 말에 대한 성격을 일상에 녹여 말해주고 있다.

 

 

얼굴, 두려움이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얼굴 

눈길이 너무 멀리 가버려 눈빛을 가질 수 없는 

얼굴, 걱정밖에 안 남은 얼굴, 

천근만근 무거운 얼굴, 모가지가 두 개는 되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얼굴, 타인에게도 

슬픔이 있다는 것을 다 잊어버린 

얼굴, 기억하던 그 얼굴은 간데없고 

기억해주길 바라는 어리광이 서린 얼굴 

침대에 나뒹구는 얼굴, 솜으로 채워진 얼굴,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

자그마한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심장의 박동을 느낄 때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 

빗물받이처럼 두 귀가 

쇠구슬 같은 눈물을 모으는 

얼굴, 보고 있는 것들이 모조리 통과되고 있는 

얼굴, 골똘히 잠든 얼굴, 

약간의 근육운동이 약간의 희로애락이 

미미하게 정차하다

떠나는 얼굴, 뒤통수 뒤로 숨는 

얼굴, 머리카락을 꼭 붙들고 놓지 않는 얼굴 

입을 약간 벌려 말을 거는 얼굴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귀를 기울이면 

더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숨을 뱉는 

맹세를 놓아줌으로써

평생 동안 꾸던 꿈에서 비로소 깨어나 잠시 웃는 

얼굴, 완벽한 잠으로 접어드는 얼굴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어> - 전문

 

 

이 시는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상태를 얼굴로 드러내고 있다. “두려움이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얼굴”은 눈빛을 잃어버린 채로 걱정과 무거운 짐만을 남겨두고 있다. 또한 그 얼굴은 “타인에게도 슬픔이 있다는 것을 다 잊어버”린다. 그런 얼굴에는 항상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이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의 모습을 한다. 실패와 절망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울린다. 그리고 화자는 “골똘히 잠든 얼굴”을 통해 생기는 “약간의 근육운동이 약간의 희로애락”을 미미하게 정차시키고 이내 떠나버린다. 그리고 화자는 이내 뒤통수 뒤로 얼굴을 숨기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리고 그런 얼굴에 있는 입을 통해 “맹세를 놓아줌으로써 평생 동안 꾸던 꿈에서 비로소 깨어나” 화자는 잠시 웃는다. 그리고 화자는 드디어 완벽한 잠으로 접어드는 얼굴을 하고 잘 채비를 마친다.

 

이 시는 화자의 하루를 다양한 얼굴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두려움에 잠긴 얼굴과 슬픔에 담긴 얼굴, 경련이 이는 얼굴들을 하며 순탄치 않은 하루를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화자가 잠시나마 웃는 얼굴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얼굴이 있다. 바로 “골똘히 잠든 얼굴”이다. 화자는 잠에 들어서야 비로소 세상과 잠시 단절한다. 그리고 단절된 얼굴은 잠든 순간만큼은 잠시 웃는 얼굴을 지어 보인다. 한 번의 짐을 털어놓은 화자는 그제야 완벽한 잠으로 접어든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시에 나오는 얼굴들 중 어떤 얼굴을 지어본 적이 있을까.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은 어떤 얼굴인지 모를 것이다. “솜으로 채워진 얼굴”도 우리는 어떤 얼굴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얼굴들을 보고 있자면, 저 얼굴은 과연 어떤 얼굴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저 얼굴들 중 하나 이상은 지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저 그것이 너무 일상적이고, 우리가 서로의 표정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결국 얼굴은 거울처럼 우리 삶의 무게와 감정을 드러낸다. 잠깐의 웃음도, 지친 주름도, 말없이 흘러내린 눈빛도 모두 하루를 살아낸 흔적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하루와 마음을 함께 읽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 속에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본다. 이 시가 묻는 것도 어쩌면 그 지점일 것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얼굴로 세상과 마주했는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어떤 얼굴로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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