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LGBT :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ed) 퍼레이드마다 등장하는 무지개 깃발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술가 길버트 베이커는, 1978년 미국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정치인인 하비 밀크에게 의뢰받아 무지개 깃발을 만들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 ‘Over the rainbow’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무지개 깃발은, 다양한 정체성과 화합을 표현하며 1978년 샌프란시스코 게이 퍼레이드에서 처음 사용됐다.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에는 무지개처럼 다양한 개성을 가진 게이들이 나온다. 눈에 보이는 외모와 성격,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이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내면의 상처를 다루는 방식까지. 그들이 성소수자로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1960년대 뉴욕, 일곱 명의 게이 친구들과 두 명의 손님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한 아파트에 모인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다. 분위기가 뜨겁게 무르익으며 그들은 점점 술에 거나하게 취해간다. 위태롭게 이어지는 한밤중의 생일 파티는 험악한 유머의 난사와 거친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때, 파티의 호스트인 마이클은 위험하고 대담한 전화 게임을 제안하며 묻어둔 진실을 들추려 한다.
2024년 한국에서 초연된 <보이즈 인 더 밴드>가 2025년 재연으로 돌아왔다. <보이즈 인 더 밴드>는 초연 당시 관객 평점 9.9점을 기록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초연 캐스트 대부분의 귀환과 함께, 극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뉴 캐스트의 합류로 작품은 순항 중이다. 8월 27일에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개막한 <보이즈 인 더 밴드>는 11월 23일에 막을 내린다.
<보이즈 인 더 밴드>는 미국 극작가 마트 크롤리(Mart Crowley)가 쓴 작품으로, 1968년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선보였다. 극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던 1960년대 시대상을 충실히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흑인 민권운동(1950~1960년대 미국 흑인들의 차별 철폐 및 투표권 획득을 위한 투쟁 및 시민 불복종 운동)·여성 및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일어난 당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냈다.
성소수자란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심지어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던 1960년대. 당시 미국 사회에선 동성애자들을 반대하고 억압하는 것이 합법이었기에,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맞서 싸웠다. <보이즈 인 더 밴드>는 당시 힘겹게 살아가던 동성애자의 삶을 진솔하게 조명하고, 인류애·가족애처럼 보편적인 주제도 함께 다루며 미국 연극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2018년, 초연 50주년을 기념해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된 극은 전 배역을 실제 성소수자 배우들로 캐스팅해 의미를 더했다.

자신을 연민하면서도 혐오하는 알콜 중독자이자 파티의 호스트인 ‘마이클’ 역은 공연계에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들인 백석광, 박정복, 오정택, 안재영이 연기한다. 파티의 주인공이자 자기혐오에 잠식된 ‘해롤드’는 역시나 믿고 보는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박은석과 김바다가 열연 중이다. 해롤드 역엔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으로 주목받는 윤승우도 새롭게 합류했다.
갑자기 파티에 찾아와 모두를 긴장시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마이클의 대학 친구이기도 한 ‘앨런’ 역은 정상윤과 이예준이 더블 캐스트로 연기하며 각자만의 개성 있는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동성애를 거부하며 정신 분석을 받는 마이클의 친구 ‘도날드’ 역엔 김준식과 곽다인이 캐스팅됐다.
래리의 매력적인 애인인 ‘행크’ 역은 송상훈, 허영손, 차예준이, 행크의 애인이자 자유를 갈망하는 상업 예술가 ‘래리’ 역은 강은빈, 김아론이 연기한다. 이들은 혼란스러운 내면의 갈등과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조명하며 캐릭터와 작품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동성애자인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유머 감각이 뛰어난 ‘에머리’ 역엔 홍준기, 홍순기, 한민우가 캐스팅돼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첫사랑을 못 잊는 인물인 ‘버나드’ 역엔 김준호와 지병현이 출연하며, 남자 매춘부이자 초대받은 손님인 ‘카우보이’ 역엔 신예 김한빈과 박만준이 초연에 이어 다시 극에 합류했다.
<보이즈 인 더 밴드>는 성공적으로 초연을 이끈 성종완이 재연에도 대본 윤색과 함께 연출을 맡는다. 작곡을 담당한 이나경과 안무 감독 김경용 또한 다시 한번 작품을 이끌어간다. 송현정 협력연출·최보윤 조명 디자이너·홍문기 의상 디자이너가 새롭게 합류하며 작품에 깊이와 몰입도를 더하고 있다.
1968년 미국에서 초연된 <보이즈 인 더 밴드>가 2025년까지 한국 관객들의 지지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동시대적 감각과 보편성이란 힘이 작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여전히 성 정체성을 철저히 숨겨야 하고, 이에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은 자신 주위에 그들이 존재하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경찰의 억압에 맞서 동성애자 집단이 뉴욕 술집 ‘스톤월 인’에서 항거한 스톤월 항쟁이 1969년이다. 스톤월 항쟁이 일어나고 <보이즈 인 더 밴드>가 초연된 지 50년이 훨씬 넘게 지난 지금, 수많은 성소수자의 삶과 인생은 아직도 수면 위로 완전히는 올라오지 못했다.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에선 한밤중에 벌어진 기묘한 생일 파티를 통해 2025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성소수자의 고민과 삶, 그리고 사랑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