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이 글은 영화 <더 웨이, 웨이 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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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짜리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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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영화는 길에서부터 시작한다. 룸미러에 비친 남자의 못마땅한 시선이 짐칸에 앉은 소년에게 향한다. “10점 만점에 넌 몇 점이라고 생각해?” 14살 소년 덩컨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트렌트의 태도가 불편하다. 덩컨이 마지못해 ‘6점’이라고 답하자 트렌트는 “내가 볼 때 넌 3점이야.”라고 말한다. 덩컨이 밖에 나가 또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함께 차에 탄 덩컨, 덩컨의 어머니 팸, 팸의 애인 트렌트, 트렌트의 딸 스태프는 언젠가 한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사이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점수를 올려보라는 트렌트의 제안에 덩컨은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답을 대신한다. 이와 동시에 OST [For The Time Being]이 삽입되고, 역방향으로 앉은 덩컨의 시점에서 보이는 도로 옆에 오프닝 타이틀 [The Way, Way Back]이 떠오른다.

 

‘웨이백(way back)’은 스테이션 왜건이나 SUV 같은 차량 내부에 화물을 싣는 뒤쪽 공간을 말한다. 운전석에 트렌트, 조수석에 팸이 앉아 있고 뒷좌석에 다리를 뻗고 누운 스태프를 위해 짐짝처럼 덩그러니 놓인 덩컨의 모습은 그의 처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덩컨이 듣는 노래의 가사에도 소외감과 반항심이 뒤얽힌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You think you know me well

당신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군요


But you don't know me at all

그런데 당신은 나를 전혀 모르잖아요

 

 

그러나 그들의 차가 지나간 자리에 서 있는 표지판은 이 길이 향하는 곳이 단순한 목적지가 아님을 암시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워터 위즈 워터파크’ 영화의 시작이자 덩컨이 걸어갈 새로운 길의 시작인 셈이다. 트렌트의 차가 잠시 정차한 사이 뒤차에 탄 오언이 그를 발견하고 씩 웃자, 덩컨이 따라 웃는다. 앞유리와 뒷유리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의 특별한 조우는 시작부터 의미심장하게 예고된다.

 

 

 

새장 속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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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차가 도착한 장소는 트렌트의 별장. 여름휴가 동안 그들이 머무를 곳이다. 수다쟁이 이웃 베티는 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가족들의 흉을 보기 시작한다. 장남 찰리는 마약과 사이키델릭 음악에 빠져 있고, 딸 수재너는 우울한 성격에 아빠 편만 들고, 막내 피터는 사팔뜨기 수술을 받았는데 더 나빠져서 안대를 씌워야겠다는 둥.

 

덩컨은 트렌트의 등쌀에 떠밀려 해변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피터 모자를 마주친다. 베티는 덩컨과 대화하는 내내 피터에게 무안을 준다. ‘네 눈을 보면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베티의 말에 피터가 ‘순악질 엄마라니까’라며 대꾸하자 베티가 ‘말투도 아빠 닮아간다’고 투덜거리는 모습은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소아과 진료를 기다리는 부모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떠올린 생각인데, 부모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우리 애가 이렇게 잘났어요’ 유형과 ‘우리 애가 이렇게 못났어요’ 유형. 후자 역시 전자 못지않게 관찰되는 유형이다. 묻지도 않은 자녀의 험담을 마치 자랑처럼 늘어놓는 케이스. 똥 씹은 표정으로 연신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내일 피터와 함께 놀지 않겠냐는 베티의 제안에 엄마한테 물어보겠다며 자리를 피한 덩컨 역시 말하자면 두 번째 유형의 자녀이다. 트렌트는 덩컨이 자신이 식사한 그릇을 치우지 않는다며 타박하지만, 정작 어른들이 놀러 나간 뒤 그들의 그릇을 치우는 것은 덩컨의 몫이다. 또 트렌트는 수영에 서툴다는 이유로 덩컨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요트에 탈 것을 강요한다. 결국 혼자 구명조끼를 입은 덩컨은 스태프로부터 비웃음을 당한다. 덩컨이 불만을 표현해도 팸은 ‘트렌트도 노력하고 있다’며 그를 두둔할 뿐이다.

 

하지만 베티의 딸 수재너만은 그의 슬픔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을 표현한다. 그녀 역시 이혼 가정의 자녀로, 덩컨과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어머니 베티와 갈등을 겪는 수재너는 덩컨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덩컨도 그녀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은 눈치지만 ‘올 여름은 덥겠다’며 엉뚱한 말만 덧붙이고 만다.

 

 

 

새로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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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덩컨에게도 변화의 계기가 찾아온다. 우연히 찾아간 펍의 게임기 앞에서 덩컨은 오언과 재회한다. 동료들과 함께 가게에 들른 그는 팩맨 게임을 플레이하다 떠날 때가 되자 덩컨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플레이할 것을 권한다. “패턴은 안 돼. 너만의 길을 찾아봐.”라는 말과 함께. 며칠 뒤 워터파크에서 덩컨을 발견한 오언은 그를 친근하게 맞이하며 이곳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출근 첫날, 덩컨은 워터파크에서 댄스 배틀을 벌이는 사람들이 바닥에 깔아놓은 널빤지들을 회수해 오라는 미션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널빤지를 가져가고 싶으면 먼저 춤을 추라고 말한다. 서툴게나마 선보인 춤사위로 그들의 인정을 받은 덩컨은 ‘팝핀록’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워터파크에서의 나날에 적응해가며 덩컨은 점차 자신감을 얻는다. 능숙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손님들을 통제하는 그의 모습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말하던 예전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존중해주는 어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자아가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언어가 된다. 길게 자라는 넝쿨 식물이 지지대를 통해 뻗어나갈 자리를 찾듯이. 하지만 크고 탐스럽게 자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열매도 그것을 옭아매는 방해물이 있다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수박을 네모난 틀에 넣고 키우면 네모난 수박이 된다.

 

이러한 시각을 사회학 용어로 ‘낙인 이론’이라고 한다. 일탈 행동이 개인의 내적 특성이나 환경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낙인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낙인이 찍힌 사람은 그 낙인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함으로써 이차적 일탈이 발생하게 된다. 처음부터 문제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문제아를 만드는 것은 아이를 함부로 재단하는 어른들의 손가락질인 것이다. 덩컨이 트렌트의 차 지붕 위에 올라가 듣는 노래의 가사에는 ‘3점짜리’라는 낙인에 대한 반발적 욕구가 담겨있다.

 

 

And I can't fight this feeling anymore 

난 더 이상 이런 느낌을 참을 수 없어요


I've forgotten what I started fightin' for 

왜 싸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어요

 

It's time to bring this shipin' to the shore 

이제 배를 해안에 댈 시간이에요 


and throw away the oars forever 

노를 영원히 던져버릴 거예요


- Reo Speedwagon, [Can't  Fight  This Feeling]

 

 


초대받고도 손님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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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팸 역시 아들의 수모를 마냥 태평한 심정으로 모른 척하는 것 같진 않다.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덩컨과 단둘이 생활하던 그녀에게 경제력을 갖춘 트렌트는 구명줄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녀는 트렌트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팸은 3개월 동안 자신을 쫓아다닌 트렌트를 받아주기로 결심한 계기를 ‘아들의 회유’라고 답하지만 덩컨의 태도를 보면 이는 거짓말처럼 들린다. 그들 관계의 ‘을’은 오히려 팸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녀는 트렌트의 불륜을 눈감아주기에 이른다. 보다 못한 덩컨이 이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적하자, 트렌트는 ‘네 아버지는 너랑 살기 싫어한다’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한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고 도망쳐 나온 덩컨은 피터와 함께 워터파크 직원 루이스의 송별회에 찾아간다. 오언은 안대를 벗은 피터의 눈이 멋지다며 칭찬하고, 트렌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덩컨에게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조언한다.

 

결국 팸은 트렌트와 함께 별장에서 떠나기로 결정하지만, 덩컨은 주유소에서 차가 멈춘 틈을 타 워터파크로 도망친다. 그리고 오언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워터 슬라이드에서 앞사람을 추월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미스테리를 증명하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덩컨은 멋지게 승리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팸의 마음에도 작은 불씨가 피어난다. 덩컨을 다시 태우고 달리는 차 안에서 그녀는 조수석과 뒷좌석을 넘어 덩컨이 있는 웨이백에 앉는다.

 

웨이백에 홀로 앉은 덩컨의 우울한 얼굴을 비추는 오프닝과 달리 모자가 나란히 앉아 미소를 짓는 엔딩은 상반된 수미상관 구조를 통해 그들의 내적 성장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여기서 막을 내렸지만, 팸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우리의 마음속 필름에 이미 선명하게 영사되고 있다. 트렌트의 별장에 초대받고도 손님이 되지 못했던 그들 모자는 마침내 트렌트 부녀와 다른 방향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이 걷는 길의 주인이 된 것이다.

 

 

 

우리의 길에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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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여정과도 같다. 우리는 웨이백의 덩컨과 함께 <더 웨이, 웨이 백>이라는 여정을 시작했다가 웨이백의 덩컨 모자와 함께 현실로 돌아온다. 덩컨과 팸의 미소를 바라보는 내 표정도 어쩌면 그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무엇을 버렸길래, 혹은 무엇을 찾았길래 그토록 홀가분해 보일까.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 ‘낙인’이란 말은 그것이 가진 위력을 말해준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남들에게 평가받고 자신을 검열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른이 되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는 팸의 말처럼 우리는 이 운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정이듯 삶도 마찬가지라면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어디론가로 가고 있다. 그 길은 우리의 마음에 들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발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 영화는 앞만 보고 걸어온 관객들을 여름휴가에 초대해 반짝이는 해변을 둘러보게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지 않냐며.

 

자꾸만 등을 떠밀고 눈앞을 가리는 손길을 뿌리치는 것이 어려울 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삶의 풍경은 순식간에 뒤바뀐다. 그 아름다움이 전부 자신의 걸음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진정한 길이 펼쳐진다. 덫은 사라지고, 돌부리와 오르막길 같은 자연스러운 방해물만 남는다. 그 길은 여전히 고달플지언정 우리를 어디로든 인도한다. 그렇게 단 하나의 자유로운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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