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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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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분위기.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남자 앞에 두 사람이 경직된 걸음으로 들어온다. 왼쪽에 선 여자가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연설 예행 연습 시작을 알리고, 오른쪽에 선 남자는 앉아 있는 남자의 자리를 경외하듯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앉아 있는 남자의 이름은 '한들호'. 대통령이 된 그가 당선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의 소극장 보노마루에서 상연한 <맵핑히틀러>는 구독과 좋아요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한들호'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의 신작으로, '시뮬라시옹'과 '워크맨'을 잇는 [미래인의 현대인에 대한 추상]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다. 


맵핑히틀러는 낯선 단어 '맵핑'과 사람들에게 이미지가 분명한 '히틀러'를 합쳐 제목을 붙였다. '맵핑'은 컴퓨터공학 용어로, '특정 정보를 다른 형태의 정보로 변환대응하는 것'을 뜻한다. 연극은 20세기의 히틀러를 21세기 한들호로 변환대응해서 극을 진행한다. 20세기에는 없던 '유튜브'라는 개념이 등장하지만 한들호의 서사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연결되어 있다.

 

 

 

맵핑히틀러



한들호는 과거 미대 지망생이었지만 대학 입학에 실패한 뒤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마저 그가 4학년일 때 이사장의 비리가 밝혀져 폐교했다. 엄마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내다 3수생이 된 그는,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지지층이 생기며 인플루언서가 된다. 

 

<맵핑히틀러> 속 한들호의 모습은 히틀러를 연상하게 한다. 이름은 유사하고 미대 지망생이었다는 점은 일치한다. 여러 과정을 거쳐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다는 점도 같다. 연극은 한들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사람들 앞에 서기 직전의 모습으로 막을 연다. 자신과 뜻을 같이 했던 보슬, 가람과 모여 과거를 회상하며 극이 시작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들호는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할아버지 영상'을 찍어 올린 후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우리 아파트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라며 모인 이들이 하는 일은 함께 불편함을 호소하며 분노를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 들호에게 '보슬'이 등장한다. 보슬은 들호의 채널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시청자들의 사진이나 영상 제보를 받아 라방(라이브 방송)을 켜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채널 사진을 다시 찍고 팬들에게 '구좋대원(구독과 좋아요로 도와주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이들의 라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각자가 겪은 부조리를 나누는데, 그 과정에서 래민을 만난다. 

 

들호와 보슬, 래민이 만나는 자리에는 마침 배달 갈 준비를 하던 가람이 있었다. 가람은 들호를 발견하고 자신이 구좋대원 중 하나라며 뜻을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들호의 채널 아래 네 명이 모이게 된다. 각자 제갈공명, 유비, 조조 등 역할을 나누며 청량산에 올라 도원결의까지 한다.

 

그들의 말로 '부조리를 고발하고 청산한다'고 모인 들호와 3인(보슬, 래민, 가람)의 행동에는 점점 사회에 대한 도발과 혐오가 가득해진다. 부조리한 행동을 해 온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은 모두 이렇게 생겼어'라고 말을 모은 뒤 그들을 '무소인'으로 정의한다. 무소인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며 물총을 쏘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한들호를 지지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들호와 3인은 조금 더 큰 일을 벌여보기로 한다. 사회가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이유는 국회의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국회로 가서 '국회의원 빗자루 폭동'을 일으킨다. 의원들의머리를 미화원의 빗자루로 쓸어버리고, 채널의 구독자는 500만 명을 달성한다. 이 사건으로 들호는 감옥에 가게 되고, 그 안에서 들호는 구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겠다며 '나의 복음'을 써서 3인을 통해 사회에 전한다. 들호의 메시지는 하나하나 모여 책으로 출판되고,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까지 등극한다.

 

들호와 3인은 기세를 몰아 '당'을 창설해 정치계로 나아가려 한다. 당명을 짓고, 당내 규칙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보슬과 래민은 갈등한다. 거친 당명을 사용하고 무소인 척결에 나서야 한다는 보슬과 회유와 융화적인 당명을 사용하고 편향적이고 일반화된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고 말하는 래민. 래민은 줄곧 다른 인물들이 편향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을 해 올 때마다 지적하곤 했는데 묵살되었고, 그것이 쌓여 한 번에 터져 버려 당을 나온다. 그들의 당은 보슬의 주장대로 '공격개시당'으로 지어진다. 그나마 이성적으로 제지해주는 이까지 사라진 공격개시당은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그들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래민을 죽이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극단성의 발현과 확대


 

연극은 '부조리 청산'이라는 옳은 말을 두고 있지만 실체는 그와 다르게 혐오와 일반화로 얼룩진 행동이 자행되는 과정, 선동, 그들에 대한 그릇된 지지의 형태를 보여준다. 들호를 비롯한 등장인물의 행동은 어떻게 보아도 '상식 밖'에 있지만 들호, 보슬, 가람과 지지자들은 그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과 함께 했던 래민은 '그나마' 해야 할 말을 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미 굳어진 사상을 가진 이들에게 그의 말이 들릴 리가 없다. 관객도 답답한 현장을 보고 있을 뿐 작품 내에 목소리를 전할 수는 없다. 

 

그들의 사상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출발한다. 작품 초반 들호와 보슬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듣게 되는 그들의 생활은 녹록지 않다. 들호는 가고 싶어서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비리가 일어나며 쫓겨났고, 보슬은 연극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제대로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주인공을 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작품은 그들이 겪은 부조리에 관객을 끌어들인다. 사연은 다르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고 연민하게 된다. 이 장면은 악인이 어떻게 탄생하고 그 사상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나쁜 사람' 이전에 '나쁜 사회'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환기한다.

 

나쁜 사회에서 인물들의 사상은 공감과 지지가 더해져 더욱 견고해진다. 사례가 모이면 하나의 주장이 완성되듯 들호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해 온 사람들을 통해 '나의 생각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과정에서 그의 생각은 점점 더 극단화되고, 급기야는 구조화하기까지 한다

 

 

 

신랄한 풍자와 미래 조망


 

<맵핑히틀러>는 악인이 양성되기 좋은 조건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사고와는 멀고 혐오하는 마음만으로 지지를 끌어모으는 인물이 권력을 갖는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비판의 방향이 인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 모두를 향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작가는 작품에서 나쁜 사람 이전에 나쁜 사회가 있음을 환기한다. 그러나 작가는 등장인물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들이 구조화된 사상을 가지고 일으키는 또 다른 폭력에 주목하며, 그들을 지지하는 인물에까지 시야를 확장한다. 이 연극은 한들호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넓은 곳까지 고찰해야 함을 주장하고, 악인이 생겨나기 더 없이 충분한 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혹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내포하고 있다. 현실에서 내다 보는 2035년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사회 문제를 폭넓게 지적하고, 히틀러의 이야기를 현대적이고 국가적으로 재해석한 시도가 인상적이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블랙 코미디라면 존재할 법한 상황으로 불편함을 안겨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보다 첨예하게 현실성을 가진 사건을 배치해 히틀러의 역사와 대조했더라면 극에 더 몰입할 수 있었을 듯싶다.

 

가망 없어 보이고 비웃음이 나오는 현장이지만, 극단주의가 깊어지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경고하고 과장함으로써 경계심과 공포감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코믹한 요소와 비판의 요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블랙 코미디인 이 작품은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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