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에는 페스티벌과 각종 행사가 쏟아진다. 문화예술을 사랑한다면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 또한 예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답게, 이곳저곳으로 쉴 새 없이 예술을 쫓아다니고 있다. 지난주에는 광주로 떠났는데, 그 이유는 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ACC X뮤직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서였다.

X라는 알파벳은 꽤 현대적이다. 미지의 수 X, 크로스의 X 등 신비롭고 열려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ACC X뮤직 페스티벌에서도 X는 다층적 의미로 해석된다. 문화 간 교류와 국경을 초월하여 경계를 허문다는 의미, 그리고 미지의 예술이라는 뜻까지 담아냈다.
그 이름에 걸맞게 페스티벌에서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대중음악 씬의 오존X카더가든, 터치드, 단편선 순간들부터, 국악에서 정체성을 출발한 힐금과 64ksana, 그리고 해외에서 온 누빔 킴 그룹과 김도연 퀸텟, 카바카 피라미드, 센야와 등 다채로운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었다.
오늘날의 예술은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아니, 애초에 뚜렷한 구분을 짓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장르와 같은 딱딱한 경계를 들이밀기 시작하면 이제는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고, 그 안에 갇힌 예술의 가능성은 축소된다. 그런 의미에서 X 뮤직페스티벌은 그 무엇보다 동시대적인 페스티벌이다. 3가지의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종류의 공연을 선택해서 볼 수 있었으며, 그 공연들은 음악의 넓은 스펙트럼 중 서로 가깝거나 먼 지점에 있었다.

나는 전통음악 전공자이다. 따라서 경계를 허문다고 할 때 가장 나의 관심사를 끌었던 것은, 전통음악이 어떻게 다른 요소와 만나서 새롭게 발현되었는가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누빔 킴 그룹'과 '김도연 퀸텟'의 공연이었다.
전통을 재료로,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누빔 킴
우선 네덜란드에서 온 누빔 킴 그룹은,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누빔 킴이 꾸린 앙상블이다. 알토 색소폰(비쯔 무어만스), 피아노(시오 옌), 테너 색소폰/플루트(마티아스 반 덴 브란드), 첼로(베르베르 히어레마), 마림바(교르기 체노프)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이다. 누빔 킴은 그동안 한국의 것을 재료로 하여, 재즈와 클래식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음악을 선보여 왔다.
그의 설명을 따라 진도 씻김굿, 호남우도농악, 진도아리랑 등을 재료로 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국악을 재료로 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때는 자칫하면 촌스러워지거나 혹은 잘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돌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경우에는 국악을 재료로 사용한 것이 안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 그런 어색함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진도 아리랑>에서는 남도 민요 특유의 꺾는 음을 색소폰이 연주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곡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현대적인 요소로 변모하였다. 아이디어는 국악에서 출발했지만, 완성된 음악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것이었다. 이렇듯 그의 음악은 전통의 것을 독창적으로 풀어내는 매력이 있어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즉흥의 새로운 지평, 김도연 퀸텟
다음으로 이야기해 볼 것은 김도연 퀸텟의 공연이다. 김도연은 가야금을 전공한 뒤 미국의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와 버클리 글로벌 재즈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가야금 즉흥 음악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아티스트로, 이번에는 피터 에반스(트럼펫), 필립 골러브(피아노), 샘 미나이(베이스), 사토시 다케이시(드럼·퍼커션)과 함께하는 무대를 꾸몄다.
출연진 한 명 한 명의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김도연 아티스트의 능력이었다. 사실 국악에서도 즉흥은 중요하다. 시나위나 산조와 같은 민속음악의 정체성은 본래 즉흥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훌륭한 국악 연주자들의 전통적 즉흥연주는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음악 속에서 가야금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은 이전에 본 적이 없다. 김도연은 이미 고유한 음악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하여서, 보컬과 가야금, 몸짓이 어우러진 그의 연주 속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부자연스러움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의 음악 속 폭발하는 에너지에 놀랐으며, 이후에는 영적인 느낌까지도 들었다. 일종의 접신적 체험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곡 소개를 할 때 스승님의 죽음에 슬퍼하며 만든 곡들이라고 밝혔는데, 마치 슬픔이 토해지는 듯한 곡들이었다. 그 에너지가 가야금을 통해서 이토록 새롭게 와닿을 수 있다니,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음악에서의 천재성에 대해 경탄했다고 하면 어떨까? 그것이 솔직하게 내가 느낀 감정이다. 연주자들은 모두 너무나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현재 프로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만큼 그들이 쌓아온 경력이 있겠지만, 아무리 훈련해도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타고난 음악적 표현력을 느꼈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귀가 행복했지만 동시에 도달할 수 없는 벽을 느껴 멍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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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페스티벌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은 대중음악에 초점을 둔 상업적 페스티벌들이다. 수요가 많고, 수익성이 담보되어 있으며, 나도 가 본 적이 있어서 알지만 역시 보장된 재미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X뮤직 페스티벌과 같은 현대 예술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는 페스티벌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직까지는 일반 관객보다는 예술인들이 더 많이 찾는 축제가 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동시대의 예술을 탐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우니, 예술 애호가가 되는 첫걸음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페스티벌을 다녀보기를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