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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지의 서울> ©tvN

 

 

말끔한 기분이다. 잠을 줄여야 할 만큼의 바쁨이 찾아올 때면 잇따라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죄책감 없이 몰아보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한계까지 차오른 갈증을 개운하게 넘길 휴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흐른다.

 

바쁜 일정이 일단락되고 나면 무엇을 볼까 하는 기대에 입꼬리가 씰룩댄다. 마침내 다가온 여유는 비 온 뒤 맑음처럼 홀가분하다. 어제가 맑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오늘의 맑음이다. 많은 선택지가 있었으나, 작금의 위로를 더해줄 만한 ‘미지의 서울’을 남들보다 다섯 걸음 늦게 꺼냈다.

 

 

 

조금은 싱거운 드라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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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지의 서울> 스틸컷 ©tvN

 

 

‘공감성 수치’라는 말을 알게 된 뒤로, 그간 드라마를 보는 일이 마냥 즐겁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의 8할은 로맨스고, 그중 상당수가 흔히 ‘로코’라 부르는 로맨스 코미디다. 사랑과 웃음은 꽤나 부조화하다. 사랑 앞에 창피를 당하는 순간을 가볍게 웃음으로 넘기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끈질기게 고통과 수난을 반복하는 서사는 도무지 휴식이 될 수 없었다.

 

‘미지의 서울’은 시련으로 점철되어 있다거나, 있다고 해도 두 회차를 넘어가는 법이 없는 드라마다. 누군가에게는 이 드라마가 삼삼한 뭇국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좋았다. 조금은 싱겁지만, 왠지 모르게 싱그럽다. 그래서 이 심심한 빈틈을 통해 ‘존재’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너의 존재가 보여


 

‘미지의 서울’은 문제보다 ‘존재’에 집중한다. 12회차 분량의 짧은 미니 시리즈지만, 그 짧은 서사에도 다양한 문제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지(박보영)는 진로, 미래(박보영)는 직장 내 괴롭힘, 호수(박진영)는 장애와 부조리의 문제를 겪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존재에서 출발한다.

 

낳아준 엄마도 구분하지 못하는 똑 닮은 외모의 두 쌍둥이(미래와 미지)는 하나의 꼼수를 생각해 낸다. 손가락을 걸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하자는 신호다. 어린 날의 장난 같은 작전은 언젠가 꼬리를 잡히고, 결국 미지가 머리를 자르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어느덧 사춘기가 지나며 두 사람은 머리뿐만 아니라 성격도 취향도 완전히 다른 하나의 존재가 되어간다.

 

 

미래는 밥 먹듯이 1등을 했고, 나는 그냥 전교 1등으로 밥 먹는 애였다.

 

 

미래의 절망적인 상황 앞에 미지는 다시 어린 날의 약속을 꺼내 든다. 손가락을 걸면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해주기로 했던 그 약속을 말이다. 완전 범죄 같으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이 장치로 둘은 이해하지 못했던 서로의 삶에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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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지의 서울> 스틸컷 ©tvN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미지를 좋아하는 호수,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에게는 둘의 존재가 보인다. 머리를 잘랐다가 붙이고, 말투를 흉내 내고, 옷을 바꿔 입는 것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존재다. 마침내 친구 지윤과 경구, 심지어 상영에게도 둘이 서로의 삶을 바꿨다는 것을 들킨다. 비로소 한 번도 제대로 이름을 부른 적 없던 세진이 ‘미래’의 이름을 소리 내 불러본다.

 

한편, 이 작품은 사회 고발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정의 구현의 서사가 미흡하다는 평을 받는다. 확실한 악은 처벌되는 듯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동조하고, 방관했던 이들은 잊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만약 직장 내 괴롭힘의 부조리함을 응징하는 사이다를 바랐다면, 더 철저하게 악인을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서사를 택했을 것이다. 미지와 미래를 더 모질게, 호수를 더 유능한 변호사로 설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이 시청자의 속을 잠시 시원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드라마는 여전히 문제에 앞서 ‘존재’를 택한다. 미래는 그저 자기의 이름처럼 ‘미래’를,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난다. 과거의 일은 법에 맡기고서 말이다. 어쩌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잘못을 저질렀던 숱한 미움의 대상들을 응징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조금은 성에 차지 않을지라도 법에 그들을 맡기고, 내 삶에 집중하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 혹 드라마가 끝나고 말끔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문제’를 좇기보다 ‘존재’를 따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 다른 존재, 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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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지의 서울> 스틸컷 ©tvN

 

 

상월의 서사를 통해 이 드라마가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조명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정보란 다른 가치와 쉽게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법인(法人)’이라는 개념을 만들 정도로 법적 리스크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름은 존엄을 뒷받침한다.

 

친구 로사의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상월에게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위태로운 외줄타기다. 상월의 관심은 건물도, 돈도 아니다. 재개발 과정에서 자신이 로사가 아닌 상월임을 들킬까하는 두려움뿐이다. 마침내 불리할 것만 같았던 법적 공방에 마침표를 찍은 건 부끄러워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이름인 ‘현상월’이다.

 

 

나와 상월이를 한 단어로 담아보려 평생 애썼지만 모두 어딘지 넘치거나 모자라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허나 현상월이 어떤 사람인지는 세글자로도 담을 수 있어요. 김로사.

 

 

상월은 로사였다. 아무도 로사를 책임져주지 않던 그 때에, 그의 죄까지도 짊어지기로 결심했던 ‘김로사’였다. 상월은 로사의 이름으로 감옥에 갔고, 재산의 상당 부분을 그의 이름으로 기부했다. 한낱 종이 몇 장으로 담을 수 없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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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지의 서울> 스틸컷 ©tvN

 

 

흔히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말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 앞에서 이조차도 조잡하고 얄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단 두 사람의 삶을 정의할 말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한 사람의 삶은 적어도 그것보다 많은 것을 담는다. 시 한 편의 의미를 읽어내려 그리 애를 쓰는데, 한 사람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헛될 리 없다.

 

 

 

이상한 하나가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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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지의 서울> 스틸컷 ©tvN

 

 

아무리 멀쩡한 척 애써도 결국은 고장 난 내가 누군가와 둘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부족한 하나에서 그쳤을 우리는 서로의 곱해져 양의 값을 갖게 되기도 한다. 시작은 미미해 보일지라도 그런 날이 거듭 반복되다 보면 결국 유한히 성장하게 된다. 사랑이란 그런 정의가 있다. 서로의 결함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품는 일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서로를 읽어야 했고, 부족함을 여백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서두르지 않고 오래 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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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사전

 

 

사랑들은 존재로서 사랑받길 기다리고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었으면 한다’는 말에 사랑이라고 이름 붙였던 수많은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약해서 숨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남들이 해내지 못했다고 나도 실패하리라 속단하지 않는 것, 그런 ‘존재적 인정’ 말이다.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암만 모냥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대부분의 상처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죄책감으로 곪는다. 후회에 잠긴 미련이 발목을 붙잡는 일이 허다하다. 겁먹고 도망쳤던 순간들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싸워서 이긴 사람보다 도망쳐서 살아남은 사람이 많다는 건 진리다. 무엇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제나 함께였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서로의 모자람을 채운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만남을 재촉한다. 약하고 초라하면 실망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랑하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상한 하나가 된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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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증을 고치기 위해서 날을 정해 물건을 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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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물길
원체 운명을 믿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운명처럼' 오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저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격정이나 융합이 아닙니다. 사랑은 홀로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보호하고, 경계를 지어주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사랑은 무엇일까 오래 고민했고, 고민하다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괜히 생경해져서 쭈뼛거리다가, 배신과 불신이 판치는 세상에 진실한 사랑이란 영 불가능할 것 같아서 괜히 아무나에게 꼬라지를 부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승원님의 글을 읽고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사랑이란 나에 대해서는, 내 밖에 있는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 존재에 집중하는 것
타인에 대해서는, 얄팍하게 타인의 처지를 재단하려고 하기보다는 오래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
우리에 대해서는, 결함 투성이의 겁쟁이 둘이 만나서 이상한 하나가 되는 것이었군요.

"사랑이란 그런 정의가 있다. 서로의 결함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품는 일이다."

마침 어제 소개팅에서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나누고 헛헛하게 귀가해서 입이 댓발나온 저에게 필요했던 글입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랑에 대한 기분좋은 예언같아서요.

운명처럼, 스친 이 글 오래 간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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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22:19:32 0
백밤
마리아 릴케의 한 구절을 선물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참 좋은 문장이네요. 일기장 한 쪽에 적어두고 싶을 만큼이요. 생각난 김에 오늘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저도 횡설수설 적었던 사랑이야기를 잘 정리해주셔서 저도 다시 사랑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에게 사랑은 뭘까, 너에게 사랑은 뭘까 우리에게 사랑은 뭘까.

은지님의 존재를 알아봐줄 그런 사랑이 찾아오길 마음 깊이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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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 17:27:31 0
윤제경
이면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생각이 확증편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다른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 조금 과장해 말하면 대부분의 것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에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품을 수는 있게 됩니다.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책감으로 남기도 하지만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나가 된다’는 좋은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객관성을, 공정성을 지향한다 하면서 많은 경우 그와 반대되는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갈라치기라는 프레임이 익숙해진 탓인지, 무엇인지 그 이유를 적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항상 이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 요즘 들어 자주 상기합니다.

그런 생각의 다른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여러 생각이 모여,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나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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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9 20:53:57 0
백밤
이전에 봤던 심리학 관련 콘텐츠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은 상처주고 싶어진다고요. 그래서 미운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 너무 밉지만, 그 사람의 상처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랑의 정의가 조금 바뀌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면을 자주 생각하는 제경님은 다정하신 분이 아닐까 감히 상상해봅니다. 사랑은 멸종위기라는데, 사랑을 더 외치고 싶어지는 건 반골기질 탓일까요.

글에 대한 감상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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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 17:30:26 0
두링
<미지의 서울>,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아직 본 적은 없는 드라마인데, 승원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보고 싶어지네요. 굉장히 따뜻한 작품일 것 같아요.

우리는 쉽게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고, 가끔은 다른 사람들을 마치 게임 npc처럼 당연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자신만의 삶을 살아온 하나의 존재이죠. 이런 생각을 간혹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굉장히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어요. 마치 우주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느낌. 나도 그렇지만 이 사람들 모두가 각각 자신만의 nn년이란 시간을 지내온 별개의 존재라는 게, 그토록 오래된 나무 같은 존재라는 게 기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죠. 이래서 도시를 '숲'에 비유하나 싶기도 하고요.

약하고 초라하면 실망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중요한 지적을 하는 것 같아 좋았어요. 존재와 존재가 단순히 만나면 더하기가 되지만, 그 존재들이 서로를 사랑하면 (꼭 성애적 의미가 아니라도) 곱하기가 되죠. 드라마에 대한 얘기도 그렇고, 다정한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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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1 21:48:36 0
백밤
이 글을 선정한 이유는 얼마 전 있었던 백상에서 박신우 감독의 소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공을 들인 글이면서도, 이 글을 다시 떠올리고 펴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쓸모'를 논하는 시대, 저 또한 끝없이 저를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이 버거울 때가 많았습니다. '미지의 서울'이 특히나 좋았던 건 저도 위로를 받았지만, 누군가도 이 드라마를 보며 위로 받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독의 소감을 들으니 그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방심하면 도태되는 불안이 도처에 깔린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한 사랑이 우리를 살게하네요.

혹여 여유가 되시는 시간에 드라마를 보게 되신다면, 혜원님께도 그러한 위로의 메시지가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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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 17:36:32 0
이재원
저도 <미지의 서울>을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는 처음 제목을 보고 왜 제목이 미지의 '서울'일지 고민을 했었어요. 작 중에서 서울이라는 배경이 크게 강조되지는 않는데 말이죠. 저에게 서울은 너무나도 크고 바쁜 도시인 나머지 사람으로 가득 차있지만 각자의 존재가 흐릿해지는 공간입니다.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잘 작동하는 도시라는 것이 중요해지는 느낌이에요. 이 드라마에서 인물들 역시 겉으로는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죠. 저는 이런 서사가 서울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혼자서만 끌어안고 있던 아픔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이해 받으면서 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왜 약하고 초라하면 오히려 사랑하게 되는걸까요? 저는 상대의 약함을 보면 나의 약함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상대를 아껴주는만큼 상대도 나 자체를 아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니까요. 그렇게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포용해주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나'가 되어서 이 힘든 삶을 버텨내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미지의 서울>처럼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돕고 치유 받는 이야기가 각박한 세상에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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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4 14:33:54 0
백밤
중의적인 작품 제목에 더욱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네요. 꼭 서울일 필요도 없지만, 그쵸. 쓸모가 중요해지는 상징적인 공간이 아닐까요. 그래서 개인의 서사보다는 능력, 지위 같은 것이 더 중요해지는 듯 합니다.

재원님의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예전에 그런 영상을 봤는데, 작은 강아지에게 큰 강아지가 다가갈 때 몸을 낮추더군요. 마치 나는 이만큼 약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 무장해제가 우리의 거리를 더 좁히게 만들기도 하네요. 저는 무해한 이야기도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교훈과 주장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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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6 09:02:3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