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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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멋진 세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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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이 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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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입을 모아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름이란 생각보다도 날카로운 것이어서 걸핏하면 상처를 입히고 만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존재를 경계한다. 일종의 필터링 작업이다. 편견과 차별의 본질은 결국 편 가르기다. ‘네 편’과 ‘내 편’을 구분하기 위해 마치 면접을 보듯이 상대의 세세한 이력과 성장 과정을 고려할 만큼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 즉 겉모습이나 이런저런 ‘라벨’을 바탕으로 평가하게 된다.

 

영화 <멋진 세계>의 미카미가 가진 라벨은 ‘전과자’. 주홍 글씨다. 13년의 형기를 마치고 복역한 야쿠자 출신의 그는 전과자라는 한계로 인해 다양한 차별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생활보호를 신청하기 위해 센터를 찾아온 미카미에게 복지 담당 공무원 이구치가 말한다. “반사회적인 사람은 혜택을 받을 수 없어요.” 새 삶을 꿈꾸지만 좀처럼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슈퍼마켓 점장 마츠모토에게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받는 그의 앞날은 어두워 보인다.

 

 

 

학대당한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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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유전, 환경, 우연 등의 복잡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인의 성공이 오로지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이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전과자가 되는 법의 구조는 얼핏 공정해 보이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사법 시스템이 인간의 죄를 온전히 측정할 수 있다면 미카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입원한 미카미에게 다큐멘터리 작가 츠노다가 찾아온다.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며 미카미가 자신의 수감 기록을 보냈기 때문이다. 게이샤였던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미카미는 4살부터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야쿠자 세력의 일원이 된다. 그 뒤 이런저런 죄목으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들던 그는 집에 침입하여 아내를 위협하는 괴한을 제압하다 죽음에 이르게 한 죄로 13년간 수감된다.

 

물론 모든 이가 미카미의 입장에서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다를 수 있었을지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멋진 세계>는 이를 지적하면서도 미카미를 마냥 선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시비가 붙거나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불의를 참지 못하면서도 불법 조직에 가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묻는 츠노다의 질문에 태연하게 ‘없다’고 답한다. 구직에 번번이 실패하며 굴욕을 느끼자 갱생을 단념하고 옛 동료 아키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미카미의 진정성을 평가하게 된다. 범죄를 저지른 그는 그렇지 않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 그의 품행은 충분한 안전성을 증명하는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요시자와는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인물이다. 전과자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에 경종을 울리겠다던 요시자와는 말과 달리 미카미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반면 폭력적인 습관에 가려진 미카미의 순수한 본성을 알아본 츠노다는 요시자와와 결별한다.

 

죄는 만들어지는가, 주어지는가?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묻는 질문만큼이나 첨예하고 복잡한 논쟁을 탄생시킨다. ‘갱생’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부류는 엄연히 존재한다. 흔히 알려진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하위 범주로 분류된다. 선천적 성향에 가까운 사이코패스와 후천적 성향에 가까운 소시오패스 모두 일반인과 다른 뇌 구조가 관찰된다. 이들에 대한 치료 역시 양심을 느끼도록 돕기보다는 친사회적인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장래의 이익을 학습시키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닌, 즉 공감 능력과 선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도 뇌 손상으로 인한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분노나 폭력을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 다수는 어릴 때 심한 학대를 받아 뇌를 다쳤기 때문이래요. 하지만 아이는 어떤 경우라도 어머니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대요. 당신은 어머니가 자길 데리러 왔다든가 버린 게 아니라고 두둔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츠노다의 이 말은 미카미가 아키가 있는 규슈로 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도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다. 점점 발전하는 세상의 흐름과 함께 야쿠자는 예전과 같은 위상을 잃고 말았다. 당뇨로 한 쪽 다리를 절단한 아키의 노쇠한 몸이 이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키가 집을 비운 동안 낚시를 하며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던 미카미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온다. 츠노다는 미카미에게 그가 자란 보육원에서 옛 기록을 찾아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모두를 위한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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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미는 츠노다와 함께 보육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기대감에 잔뜩 부푼 미카미가 마주한 현실은 그를 또다시 낙담시킨다. 당시 관청에서 보관하던 명부는 10년 전에 소각 처분되어 찾을 수 없었다. 보육원의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던 미카미는 별안간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를 지켜보던 츠노다는 목욕탕에서 미카미의 등을 밀어주며 입을 연다.


 
저 미카미 씨에 관해 써 보려고요. 미카미 씨가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글로 적어 남길게요. 그러니까 이제 과거로 돌아가지 마세요. 돌아가지 말아 주세요.
 

 

잠자코 그가 끼얹어 주는 물을 받아내는 미카미의 등은 침묵 속에서 어떤 결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 곧 기쁜 소식이 찾아온다. 이구치의 제안에 힘입어 미카미는 ‘과거를 묻어버리는 게 아니라 알고도 고용해 주는 곳’에 취업한다. 오랫동안 엄한 규율 속에서 생활하며 끈기가 필요한 단순 작업을 많이 경험한 미카미의 과거가 요양 시설에서 힘을 발휘한 것이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폭력이나 학대로 인한 뇌 손상은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 충동 조절의 어려움, 대인관계 문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밖에도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 즉 생후 5년 전후까지의 경험은 삶 전체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무력한 시절 영문도 모른 채 휘말린 불행의 올가미가 선택의 자유라는 구실 아래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나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사회는 이러한 부조리를 대개 묵살하지만, 이를 뛰어넘을 열쇠 역시 우리 안에 있다.

 

신경가소성이란 뇌가 새로운 경험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신경 회로를 재편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일생에 걸쳐 지속된다. 뇌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경험과 학습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미카미처럼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들려준다. 또 이는 교화의 중요성으로도 이어진다. 대부분의 수감자는 결국 석방되기 때문이다. 불행의 반복과 또 다른 불행으로의 연쇄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신경가소성이라는 인류의 축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열린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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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되찾는 행복을 뒤로 하고 현재의 새로운 행복에 다가서게 된 미카미를 축하해주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츠노다를 비롯해 신원보증인 변호사 츠토무와 그의 아내 아키코, 슈퍼마켓 점장 마츠모토까지.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카미를 따뜻하게 지켜보고 도움을 아끼지 않은 그의 이웃들이다.

 

미카미를 냉정하게 응대하던 이구치가 그의 적응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되고, 미카미를 도둑으로 의심하던 마츠모토가 자신의 무례를 반성하며 그의 다정한 친구가 되는 모습은 냉정한 세상 속에서도 싹트는 유대의 힘을 보여준다. “화가 나면 우리를 생각해요.”라는 아키코의 말에 미카미는 인내심을 마음에 새기며 그들의 얼굴에 먹칠할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미카미의 인내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받게 된다. 장애를 가진 동료 직원 아베가 다른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미카미는 대걸레를 들고 달려가 그들을 마구 응징하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고혈압으로 주저앉으며 단념한다. 아베를 흉보는 동료 직원들에게 맞장구를 쳐주기도 한다. 태풍이 몰려오는 가운데 아베가 건네는 코스모스를 받아 들며 흐느끼는 미카미의 모습은 가슴 아픈 울림을 자아낸다. 퇴근길에 걸려 온 전 부인 쿠미코의 전화에 미카미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쿠미코 : 당신 같은 사람에겐 이 세상이 살기 힘들 텐데...

미카미 : 응,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비바람이 들이치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코스모스를 손에 쥐고, 향기를 맡으며. 이웃들의 따뜻한 응원과 함께 전과자라는 낙인을 딛고 평범한 세상으로의 새 삶을 꿈꿨던 미카미의 마지막은 차갑고 쓸쓸했다. <멋진 세계>라는 다분히 중의적인 제목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이러한 비극성이다. 그가 나아가려 했던 ‘세상’이란 무엇이고 그가 꿈꿨던 ‘갱생’이란 무엇인가? 전과자인 미카미의 세상과 일반인의 세상은, 과연 같은 것일까?

 

감독은 이러한 질문을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던진다. 부검 현장에 모인 미카미의 이웃들은 아이 레벨 앵글로 조망되다가 트래킹 쇼트를 통해 점차 버드 아이 뷰로 전환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이동을 따라 관객은 마치 신이 된 것처럼 그들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프레임에 담기는 것은 파란 하늘이다. 그 위에 영화의 제목, ‘멋진 세계’가 새겨지며 막이 내려간다.

 

그 글자가 나는 이런 질문으로 느껴졌다. “어떻습니까, 정말 멋진가요?” <멋진 세계>의 한국판 포스터에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이 담겨있다. ‘이 세상은 살기 힘든 만큼 따뜻한 곳’이란 말은 비록 미카미의 죽음은 비극적이었을지언정 그의 마지막을 지키는 이들이 간직한 온기에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나는, 잘 모르겠다. 타인의 마음은커녕 내 마음조차 알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세상을 단정할 수 있을까. 다만 아키의 아내 마츠코의 대사가 떠오를 뿐이다.


 
세상은 인내의 연속이에요. 인내하는 것치고는 보상도 없고요. 하지만 하늘은 넓잖아요.
 

 

 

셀 수 없이 피고 지는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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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의 어원인 그리스어 ‘Cosmos’는 질서, 조화, 우주 등을 가리킨다. 미카미가 죽어가면서도 꽃향기를 맡으려 한 까닭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늘이 닫히기 전에. <멋진 세계>의 영어 제목은 [Under The Open Sky]다. 하늘이 넓고 열려 있는 한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도 회개할 수 있고, 누군가를 외면하면서도 돌볼 수 있다.

 

<멋진 세계>는 몰입감 있는 스토리나 미학적 연출보다는 메시지의 전달에 힘을 실은 영화다. 그렇다고 다른 요소가 뒤떨어진다는 뜻은 아니지만 취향을 타기 쉬운 노선인 것 같다. 미카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노력하는 츠노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 소설 『신분장』의 작가와 그것을 영화화한 감독의 분신처럼 보인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논설적인 뉘앙스가 종종 느껴진다. 나는 이러한 흐름을 예상하고 어느 정도는 기대하면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죄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다. 달궈진 쇠로 만든 구두를 신고 춤추는 형벌을 받게된 <백설공주>의 마녀가 맞이한 결말에 통쾌함보다는 연민을 느꼈고, 사형수의 삶을 다룬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사형제 강경 폐지론자가 되었으며,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는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했다. 지금도 퀸의 [Bohemian Rhapsody]는 내 노래방 18번이다. 그 까닭은 내가 스스로를 죄인처럼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어쩔 수 없었듯이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를 나는 항상 듣고 싶었다.


법은 죄의 무게를 심판하지만 부피와 질량을 밝힐 수는 없다.

 

우주의 역사와 함께 피고 지는 꽃잎의 수를 헤아릴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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