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똑같은 걸 그림으로 그려내도 어릴 때 그린 것과 상당히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림 자체도 그렇고, 그림을 그리기 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도 그렇고.
한가지의 주제를 바탕으로 정말 연관도 없어보이는 수많은 것들이 동시에 떠올랐던 어릴 때와 달리, 그 생각들 사이에 체계와 개연성 같은 것을 부여한다고 느꼈을 때 그럴 때 문득, 유년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창의성과 상상력의 빛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이가 든 중년의 모습을 한 남성, 손과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조금씩 묻어나오는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음에도 그가 그려낸 그림들에는 마치 7살짜리 어린이가 그린 듯한 순수한 창의성 같은게 보였다.
잘 다듬어진 그림, 화려한 그림, 누가 보더라도 그리기 어려워보이는 그림은 이 세상에 너무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러나, 성인이 그렸음에도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순수함과 기교부리지 않은, 꾸밈 없는 창의성이 보이는 그림은 너무도 드물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의 존재도 몰랐고, 이름 또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그림들을 이미 수도없이 접해왔다.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튀어나오는 그의 그림들에 새로움 보다는 익숙한 반가움을 더 먼저 느꼈다.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 수없이 돌려본 그 장면들에 그의 흔적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처녀 자살 소동> 속 오프닝에 나오는 다양한 방식으로 쓰여진 제목의 로고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 속 미래 도시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해낸 것이 전부 그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그가 그려낸 세상을 애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한 때 그림이 너무 좋아 종이 혹은 책상에 대고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던 때가 있었다. 무엇이 원동력이었는지 인지하지 못한채로 그저 한없이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려나갔다.
그러나 어느순간 그림을 그리는 행위보다 더 흥미가 생기는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고, 새로운 무언가를 내 손으로 창조해내는 그림들이 유사한 자가복제처럼 느껴졌을 때 권태와 피로를 느낀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무엇이 제프 맥페트리지라는 사람을 계속해서 그리게 했나였다.
단순히 흥미 하나만으로 그 수십년의 세월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미약하게 느껴지는 동력이었다. 수년이 아닌 1년만 무언가를 꾸준히 해도 권태를 느끼기 쉽상인데, 손 하나에 의존한채로 수십년간 꾸준히 무언가를 창조해온 그의 원동력과 창의력, 상상력이 너무도 궁금했고 신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실 무언가를 기록한 영상물이기에 그 무언가가 기록할 만한 가치, 그것을 콘텐츠화했을 때 많은 이들이 흥미롭게 볼 가능성이 분명 내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측면에는 분명 그가 다른 이들과 다른 그만의 개성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개성일 것이고, '제프 맥페트리지'라는 사람은 세상을 도화지로 사용해 그의 손 하나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는 그만의 독보적인 개성을 아주 오랫동안 성실하게 수행해왔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보며 경탄의 순간을 느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