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향수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다. 향수를 뿌려보고는 싶지만, 정작 어떤 향이 나와 어울리는지조차 모르겠다. 어떤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향을 뿌려야 하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향수에는 메인 노트와 서브 노트가 있고, 잔향이 처음과 전혀 다른 경우도 있으며, 같은 향이라도 사람의 피부와 만나면 또 다른 향을 낸다고 한다. 이 모든 복잡한 이야기에 시향을 꼭 해봐야 한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결국 귀찮음에 휩싸여 향수 구매는 늘 미뤄왔다.
사실, 특정 향수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이끌려 그 이미지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자 향수를 사본 적은 있다. 정말로 그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이미지를 따라가기 위해 향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표현해 줄 향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시각적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향은 때로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 우리 안에서 선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매혹적이다.
이 책을 만나게 된 것도 결국 시각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도서관에서 하얀 배경 위 빨강인지 분홍인지 헷갈리는 색의 글자가 섞인 표지가 내 시선을 확 끌었다. ‘아이 러브 퍼퓸’이라는 직관적인 제목은 “이건 무슨 책일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했고, 목차를 펼친 순간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할 수 있었다.
책의 1부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 라티잔 파퓨미에르, 프레데릭 말, 아틀리에 코롱, 딥디크 등 세계적인 마스터 조향사와 니치 브랜드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향수라는 창조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들이 어떤 철학과 삶의 태도로 향을 빚어내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2부는 한층 더 실용적이다. 향수를 뿌리는 방법, 레이어링, 향수의 계열과 노트 소개, 후각 훈련법까지, 내가 평소 궁금해하던 질문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게다가 무려 200가지에 달하는 향수가 소개되는데, 향수의 ㅎ도 잘 모르는 독자인 나조차도 시향 없이 쉽게 이해가 되는 설명이었다. 덕분에 시향하지 않고도 머릿속에 향이 스며드는 듯했다.
무엇보다 큰 깨달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향수”라는 조향사들의 조언이었다. 향수는 나를 가두는 이미지가 아니라, 나를 더 자유롭게 보여주는 매개라는 사실. 이 책을 통해 향수를 고르는 일은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나만의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 오하니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찾는 과정은 곧 ‘나’를 찾는 과정이에요. 사람들이 향수를 조금 더 편안하게 즐기고, 그 세계를 탐험하며 자신을 알아가길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아이 러브 퍼퓸』은 향수를 특별한 취향의 영역이 아닌 ‘나’를 향한 이정표로 본다. 내 안에 있는 셀 수 없는 갈림길 속에서 향이라는 이정표를 통해 나를 찾아가라는 것 아닐까. 나에게 어렵기만 했던 향수는 이제 조금 덜 낯설다. 내가 어떤 향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지를 탐구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앞으로 나는 이 책을 길잡이 삼아 향수와, 그리고 나 자신과 더 깊이 만나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