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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질적인 조합에서 오는 묘한 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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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막연한 호기심이었다. ‘이질적인 요소가 따로 떨어져 있다가 하나로도 묶인다는 말이지?’ 클래식과 신디사이저의 합이 내 입장에선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선율과 몽환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기계음이 만났을 때 과연 그 접점에서 어떤 소리들이 튀어나올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상상이 어려웠다는 것이 이 공연에 마음이 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롭고 과감한 음악 장르였다. 귓가에 익숙한 선율로 다가올 때는 막연하게 빠져들었다가 어딘가 낯설게 들릴 때는 의식적으로 몰입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눈으로 귀로 보고 듣는 일차원적인 집중을 뛰어넘어 내 방식대로 연주를 해석하고 정의하는 능동적인 몰입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공연에 빠져 있던 당시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적어 내려간다. 공연에 대한 감상이자 몰입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가 될 수 있겠다. 낯설고 선명했던 한 시간의 꽉 찬 그 여정을 찬찬히 기록한다.

 

 

 

클래식×신디사이저: 전에 없던 몰입형 사운드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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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무언가에 깊이 빠져든 고도의 집중 상태 또는 깊게 빠져들어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잊게 되는 감각. 2025년 8월 9일 17:00 푸르지오 아트홀에서 열린 공연 「IMMERSION 몰입」은 그 감각의 순간을 클래식 트리오(피아노·바이올린·첼로)와 전자악기 신디사이저의 연주로 구현해 냈다.  


이번 공연은 작곡가 안성균(안콘텐츠랩 대표 및 음악감독), 피아니스트 조영훈(유튜브 채널 ‘피아니스트 조영훈 HOON TO BE’ 크리에이터, 한국리스트협회 이사, 아즈앙상블, 엠클래식 단원), 바이올리니스트 정지훈(앙상블 소브, 에츠하임앙상블, 벨레콰르텟 멤버), 첼리스트 최영(클레프엠, 베어콰르텟, 트리오미르텐 멤버, 슈테른필하모니 수석, 심포니송 단원) 네 아티스트가 함께했다. 


작곡가 안성균의 작곡발표회 IMMERSION(몰입)은 음악적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에 허무는, 국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공연이다. 특히 클래식 트리오와 전자 악기의 결합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과감하게 넘나드는 자유로운 느낌을 주면서도 불안정함 속 가능성을 품고 있는 미지의 우주를 연상케 한다. 또 공연은 단순한 클래식 연주 감상이 아닌 관객 스스로가 음악을 해석하며 그것을 각자의 몰입으로 연결시키게 한다. 이는 능동적인 청취 경험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번 공연이 새로운 음악 장르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용기 있는 실험이 계속되길, 희소성을 가지고 꾸준히 확장되길 응원한다.


 

 

[Piano Trio No. 1 in c minor, Op. 7] 창작곡 초연: 한 사람의 서사와 함께 흐르다


*각 악장의 서사 내용은 공연 홍보 팜플렛 책자의 작곡가 노트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공연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1번-안성균의 Piano Trio No. 1 in c minor, Op. 7 초연-IMMERSION 순으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

 

D. Shostakovich

Piano Trio No. 1 in c minor, Op. 8


Ahn Sung Kyoun (창작곡 초연)

Piano Trio No. 1 in c minor, Op. 7


1악장. Non Allegro – 프롤로그

인생의 무대를 열어젖히는, 어딘가 도전에 대한 어둡고 두려운 시작점

2악장. Pesante - 섬 집 아기

아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부재와 그리움

3악장. Allegro Assai - 아리랑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 느껴지는 상실과 혼란

4악장. Rubato ad libitum - 할머니와 여섯 살 아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애정이 담긴 유년의 장면의 회상

5악장. Tranquillamente - 일출과 일몰은 다르다

인생의 시작과 끝, 그 다름의 쓸쓸함

6악장. Allegro- 피아노 공기놀이

피아노를 좋아했던 천진난만했던 소년의 창의와 놀이

7악장. Straziantemente - 바다의 지휘자

혼란과 방황 속에서 마주한 자연과 감정의 파동

8악장. Silence - 기억의 지배자

지나간 모든 기억들이 결국 어떻게 삶의 주인이 되는가


Ahn Sung Kyoun (창작곡 초연)

IMMERSION 몰입 (+신디사이저)

  

 

이 8악장의 서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작품은 삶을 따라 흐르던 여덟 개의 상징적인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인간의 성장이라는 긴 서사 속에 담긴 기억과 감정을 음악에 담아냈다는 작곡가 안성균. 서사의 중심엔 엄마와 할머니가 있고, 그때를 감각하던 순간들을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각각의 악장에 잠깐씩 머무는 동안 나도 나의 서사를 되짚어 보았다. 어떤 사람에게서, 어떤 공간에게서,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존재의 의미들에게서 나는 무얼 느끼고 무얼 감각했었나. 어디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었나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했다. 


곡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변했던 조명 색, 클래식한 무드 위에 얹어진 신디사이저의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음이 꼭 삶의 유동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내일을 맞이하지만 나란 사람이 여기 있다고, 내 존재에 대하여 끊임없이 열렬히 외치는 듯했다. 움직이기에 불안하고 두려운 것, 설레임도 그만큼 공존한다는 것, 불확실함과 가능성을 교차로 느끼며 살아있음을 감각하는 것. 몰입을 통해서 얻은 순수한 감정들이다. 

 

 


IMMERSION: 미지와의 조우


 

공연의 마지막 곡 ‘IMMERSION 몰입’은 모스 부호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점과 선의 조합으로 출발해 긴박하게 반복되는 리듬으로까지 연결되어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음악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단순히 기법적인 실험이라기보다 관객들에게 몰입이라는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피어나게 됐는지를 묻는 하나의 장치와도 같다. 


특히 마지막 연주 시작 전에 안성균 작곡가가 IMMERSION 곡에 대한 설명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곡가로 10년째 활동 중인 그는 피아노를 전공하며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지금에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클래식을 가지고 다음에 무엇을 표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 곡을 쓰게 되었다고. 또 어릴 적의 경험들이 곡에 많이 녹아들어 있다며 소개했다.  


이전에는 음악을 클래식으로 꾸준하게 풀어냈다면 최근에는 이 클래식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새롭게 표현해 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때 선택한 것이 신디사이저라는 악기였고 신호음을 가지고 미래를 표현하는 음악이 가능할 것 같아서 연주에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첫 번째 곡이 어렵게 다가갔을 수도 있겠으나 바이올린나 첼로 같은 악기들로 앞으로 계속 새로운 화합을 이끌어 내고 싶다는 음악적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신디사이저로 여러 효과음을 표현하며 한층 더 풍성하고 멋진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곡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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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 IMMERSION은 상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감각될 수 있는 곡이다. 들어서만 익히 알고 있었던 신디사이저의 소리를 제대로 가까이에서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반복되는 기계음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우면서도 어딘가 어긋난 소리처럼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합에서 나온 화음이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우주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현악기의 가느다란 떨림과 신디사이저의 신호음이 만들어낸 불안감은 광활한 우주에서 정처 없이 부유하는 우주인을 떠오르게 하다가 깊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시각적 심상으로도 연결되었다.

 

또 클래식(과거) 연주가 중심을 잡으며 안정적으로 곡을 끌어가거나 신디사이저(미래) 홀로 앞장 서서 소리를 낼 때, 서로 이끌고 받쳐 주는 그 관계성으로부터 과거와 미래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나온 것과 다가오는 것. 모든 게 흘러 지나가면 그 다음엔 또 어떤 미래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몰입으로 잊고 있던 ‘가능성’을 ‘감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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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익숙함과 낯섦이 만나고 성질이 다른 것끼리 엮이면 모호함과 불편함을 낳는다. 깊이가 생기려면 바로 이 충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나의 언어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는 유의미한 과정이라고 본다.


다각적인 몰입에 대해 생각했다. 보이는 장면 너머 스스로 해석하고, 다르기에 대비되는 풍경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해 보는 것. 이는 곧 능동적 청취 또는 능동적 몰입과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아무 해석 없이 처음에 바로 느껴진 것은 영화 괴물 OST였다. 불안하면서도 조급한 음색들이 마구 몰아쳤을 때 꼭 한강 괴물에게 쫓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을 주는 영화적인 장면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위로 포개지는 신디사이저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서로 다른 감각이 엮여 새로운 느낌을 낳았다. 보랏빛이 나는 우주의 소리 혹은 우주에서 부는 보랏빛 바람과 같은 것이었다. 시각적인 상상과 청각적인 상상을 동원했다.


연주에 몰입한 연주자를 바라보는 황홀함도 있었다. 자기 자신을 잊은 것처럼 연주에 푹 빠진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몰입하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된다. 이는 저마다의 몰입에 대하여 골몰하게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또 하나의 장르를 피우는 그들을 지켜보며 나 또한 내 안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을 감각하게 된다. 융합이라는 단어에는 이질적이고 낯선 것, 긴장되고 두려운 것을 끌어안고 간다는 실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세계는 어떻게든 확장된다. 어쩌면 ‘몰입’은 이름 모를 가능성을 독려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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