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주 데브리를 회수하기 위해 정거장에 찾아온 직원은 난감한 상황이다. 폐기가 결정된 우주 정거장을 점유하고 있는 노인 때문이었다.
그 노인, 안나는 워프 항법 시대에 필수적인 동결 수면 기술인 ‘안티프리저’를 개발한 뛰어난 과학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수많은 동면을 반복하며, 100년 동안 오지 않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안나가 남편과 아들을 먼저 개척 행성계로 보낸 것은 웜홀 항법이 등장하기 이전, 워프 항법이 주류였던 시절이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연구를 마친 뒤 새로운 행성에서 가족과 여생을 함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웜홀 통로 항법의 발견은 우주 개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기존의 워프 항법은 빛의 속도보다 빨라도 수만 광년을 가는 데 수년이 걸렸지만, 웜홀 항법은 존재하는 통로에 진입하기만 하면 돼서 기존보다 훨씬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10년에 걸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학회의 전날, 안나에게 가족이 있는 행성계로 가는 우주선은 내일이 마지막 출항이라는 연락이 왔다. 그 개척 행성 주변에는 웜홀이 발견되지 않아서, 만약 내일 우주선을 놓친다면 언제 가족들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나는 학회 발표를 앞당기고, 곧장 우주 정거장으로 향하려 했지만, 발표 이후 몰려드는 취재진 때문에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 그녀처럼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웜홀 항법 시대에 경제성이 떨어지는 워프 항법을 이용해 그들을 도와줄 우주 연방은 없었다.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이곳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우주 정거장’에서 몇 달 혹은 몇 년에 한 번 우주선이 출발했지만, 그것조차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족에게 향하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움의 속도를 잃지 않는 빛
소설의 마지막에 안나는 개인 우주선을 타고 몇 광년이 떨어진 개척 행성으로 향한다. 직원은 그녀의 작은 우주선이 빛의 속도로 갈 수 없어 중간에 우주미아가 될 그녀를 걱정해서 만류했지만,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안나에게는 두 가지 생애 목표가 있었다. 인류 동면 기술의 진보를 이끌어줄 ‘안티프리저’ 개발과, 연구를 마치고 몇 년 뒤에 만나기로 한 가족에게 가는 일이었다.
연구를 마치고 ‘몇 년 후’라는 약속은 ‘몇 광년 후’가 되어 버렸다. 천문학적인 시간 앞에서 인간의 100년 남짓한 수명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과학자인 그녀는 작은 우주선이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가족에게 향하는 마음은 그 어떤 물리 법칙보다 절대적이었다.
우주선을 놓치고 오랜 세월 지난 후의 안나가 우주 데브리를 회수하러 온 직원을 대면했을 때 그녀에게는 가족을 잃은 슬픔, 분노, 후회, 책망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가 10년을 걸친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 우주선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선택에서 후회가 없었을 리는 없다. 아마 오랜 시간 좌절하고, 슬퍼하고, 후회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동면의 시간을 거치며, 그녀는 인생의 목표를 이루려고 했던 선택과 출발에 늦지 않으려 애썼던 노력을 스스로 받아들인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실패담을 직원에게 들려줄 때 꽤 담담하게 전하고 있었다.
100년이 넘게 동결과 해동을 반복하면서도, 가족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얼어붙지 않고 그녀 안에 남아있었다.
안나가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혹은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르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일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그래서 안나가 작은 우주선을 타고 별들 사이로 멀어진 우주선의 빛은 가족을 만날 때까지 영영 그 빛을 잃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