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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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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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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팽이의 회고록>은 전체적으로 암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띠는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 영화다. 무채색과 채도 낮은 색감으로 회색 도시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와 장면 전환 연출 등이 돋보이기도 하는 영화다.


그보다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달팽이의 회고록>이란 제목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삶의 고통과 상처로 점점 달팽이에 대한 집착이 커진 그레이스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핑키를 떠나보내고 소중하게 여겼던 달팽이 실비아에게도 자유를 주며 멀어지는 실비아에게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느릿하게 기어가는 실비아와 그레이스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의 속도감이 확연히 대비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해 약간의 재치도 느껴지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쌍둥이 회고록


 

어릴 적 수면무호흡증을 가진 곡예사이자 영화 제작자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쌍둥이 오빠인 길버트와 떨어져 살게 된 그레이스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의 집으로 입양가게 된다. 초반에는 양부모 모두 그레이스에게 관심을 두었으나, 시간이 지나 양부모는 자주 여행을 떠났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외롭게 지내게 된 그레이스는 어느 날 핑키라는 한 노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살면서 경험해 볼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며 지내는 사람이었다. 욕망에 충실히 지내는 핑키는 그레이스에게 희망의 비타민이자 양부모 같은 존재로, 유일하게 외톨이인 그레이스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이였다.


그에 반해 길버트는 에덴동산이라는 과수원과 교회가 있는 집으로 맡겨졌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죄수와 감시자 관계에 가까웠다. 모두 머리를 밀고, 죄수복을 입고, 이름표를 달고, 노동했다. 매일 감시하고, 성경책을 읽도록 강요하고, 기도하게 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던 양부모는 아이들에게 예수님께 봉헌하라며 노동으로 번 돈까지 다시 뺏어가곤 했다. 그 돈은 뻔하리만치 양부모의 사치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길버트는 그에 굴하지 않고 반항하며 곡예사라는 꿈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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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른 환경에 떨어졌음에도 고통과 상처를 받는 길버트와 그레이스. 10대를 지나, 두 사람은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레이스는 사랑을 원했지만 받지 못했고 투명인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러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삼류소설을 읽으며 허구의 사랑을 통해 안정을 느꼈다. 또, 달팽이에 대한 집착을 키워나갔는데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은 수집욕과 도벽이었다. 그렇게 달팽이 맥시멀리스트가 되어버린 그레이스는 방이라는 안전한 달팽이 요새에 숨어 사는 애정결핍 은둔자가 되었다. 그러한 나날 속에 한 줄기 빛처럼 그레이스는 앞집 남자 켄과 사랑에 빠졌다. 켄은 깨진 그릇을 고치는 사람으로, 그 예술 안에 ‘영혼처럼 모든 것은 고쳐질 수 있고 결함까지 소중히 하라는 철학’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레이스를 치유했다. 가끔 그레이스를 기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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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길버트는 형제 중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다른 형제와는 조금 다른 벤과 가까워진다. 하루는 벤과 함께 불쇼를 연습하던 길버트를 발견한 양엄마는 길버트 안에 있는 악령을 퇴치해야 한다며 기이한 퇴치를 감행했다. 그럼에도 길버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느새 길버트는 벤과 사랑에 빠졌고, 그 광경을 목격한 양부모는 동성애는 죄악이며, 몸 안에 있는 사탄을 물리치고 영혼을 치유해야 한다며 영혼 정화식이라는 명목으로 두 사람을 전기충격기로 고문했다.


고치고 정화해야 하는 영혼은 대체 무엇일까.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떠오르는 시점이다. 깨진 조각을 붙이고 고치려는 것보다 ‘깨진 유리 조각으로도 빛날 수 있다’라는 메시지. 이 영화도 큰 맥락으로 보면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맞물리는 지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즉 우리의 결함과 상처, 과거를 직면하고 나 자신을 받아들인 채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기 때문이다.

 

 


유골함과 놓아줌에 대해


 

그레이스는 인생의 굴절마다 유골과 유골함을 마주하게 된다. 달팽이를 좋아했던 엄마는 알을 낳고 죽기도 하는 달팽이처럼 길버트와 그레이스를 낳고 죽었다. 아빠는 수면무호흡증으로 자다가 갑작스럽게 죽었고, 정부가 치러준 장례식 이후 유골함에 담겨 돌아왔다. 이후 길버트와 떨어져 살게 된 그레이스. 그녀의 양부모는 집에 기니피그들을 두고 여행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고, 그 기니피그들은 번식해 증식했다. 집안은 그레이스의 달팽이 집착으로 인해 모은 잡동사니들로 가득했고, 그 물건들에 기니피그 세 마리가 깔려 죽어 그레이스는 그 유골을 유리병에 담아두었다.


기니피그의 이름이 바질과 같은 식재료 이름이라 유골함은 마치 소스통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특이한 그레이스의 성격까지 이해해주는 켄이라는 남자를 만난 그레이스는 짧은 연애와 동거 끝에 결혼식을 준비했다. 오빠 길버트에게 비행기 표를 위한 돈과 함께 청첩장을 보낸 그레이스는 하나뿐인 가족을 볼 생각에 설렜으나, 결혼식 당일 돌아온 건 오빠 길버트가 죽었다는 소식과 그의 유골이 담긴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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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고통 속에 있던 그레이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돌봐주었던 켄, 그레이스는 그의 이면을 알아버리고 만다. 그는 사실 그레이스 자체가 아닌 살찐 모습의 그녀를 좋아했던 것이었으며 그 나체 사진을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 그도 그럴 게 켄은 시도 때도 없이 그레이스에게 먹을 것을 바쳤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를 가두는 것과 누군가 날 가두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


다시 어둠 속에 갇힌 그레이스를 돌봐준 것은 핑키였다. 핑키 덕에 살을 빼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땐 이미 핑키에게 치매 증조가 시작된 상태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핑키가 마지막 순간에 “감자!!”라고 외치며 생을 마감한 것. 과거는 잊고 사는 듯 자유롭게 살던 핑키가 그 순간만큼은 기억해 낸 것은 감자밭 아래에 묻혀있었다. 바로 돈과 함께 그레이스에게 남긴 편지. 그 안에는 핑키가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는 과거의 이야기와 함께 그레이스에게 해주는 단비 같은 말들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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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면서 가장 끔찍한 감옥은 스스로 만든 감옥이란 걸 알게 됐단다. 너도 스스로 감옥을 만든 거야, 그레이스. 애초에 잠겨 있지도 않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갇혀 지냈던 거지. 달팽이들은 모두 버리고 너 자신에게 자유를 주렴. 이제 너도 그 껍질에서 나올 차례야. 모으는 건 그만두고 새롭게 시작하렴. 약간의 자기 연민은 괜찮지만 이제 잊고 앞으로 가야지. 물론 고통도 있겠지만 그게 인생이란다. 당당하게 맞서렴. 용감하게.”


그러한 그레이스의 뒤로 불길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연출된다. 그레이스는 집에 있는 달팽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 위를 떠날 줄 몰랐던 달팽이 모자를 불태우려다 웃으며 그만둔다. 그렇게 그레이스는 앞으로 ‘약간의 자기연민’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나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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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에 관한 모든 건 훔쳐서라도 모으던 그레이스는 이제 ‘놓아주기’로 했다. 아빠의 유언대로 롤러코스터를 타며 그의 유골을 뿌려주었고, 핑키의 유골도 ‘측은한 밭’에 뿌려주었으며, 달팽이들과 실비아도 밭에 놓아주었다. 놓아주고 난 모습은 모두 각자 다른 모습으로 인상 깊게 흩어진다. 아빠는 나선 모양으로, 핑키는 그녀의 인생처럼 반짝이는 금빛으로 흩어졌으며, 실비아는 밭에 알을 남기고 죽었다.

 

그렇게 삶의 순환은 계속된다. 그러므로 과거와 상처를 모으는 건 그만두기로 하자. “인생은 끝에 다다라서야 이해가 되곤 하지만 우린 앞을 보고 살아야 해. 달팽이는 걸었던 길을 결코 돌아가지 않아. 오직 앞으로만 가지. 이제 온 세상에 너만의 흔적을 남기렴.” - 이 세상의 모든 달팽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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