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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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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면 되지 뭐하러 거기까지 가?"

 

선명한 화질로 알프스 산맥을 보며 "와, 가보고 싶다"고 중얼거렸을 때, 아버지가 무심코 던지신 한마디였다. 그건 단순한 귀찮음의 표현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경험의 빈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세계 곳곳을 탐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경험은 감각적인 물리적 세계에서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해 버렸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중한 경험들을 놓치고, 진정한 의미의 경험과 단절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기술이 주는 '대리만족'은 어느새 직접적인 경험을 대신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가 되었다. 우리는 타인이 포장 상자를 뜯거나,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그 경험을 한 것처럼 느끼는 데 익숙해졌다. 이는 손글씨 대신 자판을, 직접 만나는 대신 화상 통화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기술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연결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촉감, 냄새, 미묘한 표정 변화처럼 진정한 경험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들을 가리고 말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존재 자체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단면은 아이들의 일상에서 특히 더 선명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놀이터에서 모래를 만지고 미끄럼틀을 타며 뛰어놀던 경험이 이제는 온라인 채팅과 가상 게임 공간에서의 만남으로 대체되었다. 내가 아동센터에서 봉사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푹 빠져 간식도 건성으로 먹고 보드게임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히 시대의 변화를 넘어,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배우는 협동심, 배려, 그리고 외부 세계에서 혼자 설 수 있는 독립심 같은 중요한 경험들을 놓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술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때, 우리는 그 기술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뿐만 아니라 무엇을 ‘차단’하고 있는지에 대해 신중하게 물어봐야 한다.

 

나아가, 기술은 경험 자체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널리 알릴 목적으로 경험에 참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때 사적인 즐거움이었던 순간들이 이제는 모두에게 공개되고, 모든 경험을 디지털로 기록하려는 충동은 기술이 매개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즐거움을 앗아갔다. 나 역시 스마트폰 화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깨닫고 인스타그램과 각종 알림을 줄여나갔다.

 

우리 모두는 스크린 속 가상 세계에 빠져들며 서서히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모든 것을 데이터로 복제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쾌락에 대한 정보가 실제로 경험하는 쾌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경험은 인내, 즉 시간을 들이는 것이며, 우리 존재에 대한 매 순간 새로워지는 직접적인 접촉에서 비롯된다.

   

결국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무한한 연결과 정보의 바다를 선물했지만, 그 대가로 현재에 머무르며 온전하게 느끼는 능력을 희생시키고 있다.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는 옛말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성장의 가치를 잊어버린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이제 '편리함을 위해 진정한 경험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라는 더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모든 경험을 기술로 매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상실된 현재의 감각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경험을 잊어버렸는지 되돌아 볼 때인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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