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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약 한 달 전, 친구에게서 한 전시에 관심이 없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기다 보면 이따금씩 광고로 뜨던 "사랑의 단상" 전시였다. 사랑, 사랑, 사랑........많은 예술이 사랑의 가치를 설파해 왔지만, 같은 사랑을 말해도 '누구의 입장에서', '어떻게' 사랑을 말하는가에 따라 그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른 게 사실이다. 너무 흔한 소재이다 보니,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은 그 메시지부터 표현에 이르기까지 조금 식상하거나 지나치게 단순한 구석이 있다면 실망하기도 쉽다.

 

개인적으로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는 가능성 대신 장애를 극복한 판타지를 채택한 아이유의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보다, 가족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 만날 수 있는 몇 번의 행복한 순간이 결국 삶을 지속시킨다는 사랑의 힘을 말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더 와 닿고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이 그 예다. '사랑의 단상' 전시는 그 전시명처럼 사랑에 관한 몇 가지 관점에 관한 이야기일 터인데, 그 중에서 몇 개의 사랑을 건져갈 수 있을 것인지 관람 전부터 공상에 빠졌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기에 기대와 약간의 심드렁한 마음을 함께 안고 뚝섬미술관으로 향했다. 어둡고 서늘한 전시 공간이 주는 약간의 긴장감 덕에, 나른했던 정신은 바로잡히고 무수한 사랑의 스토리텔링 속으로 빠져드는 건 곧이었다.

 

 

 

사랑 타령, 한 개의 노래가 아니기에 질릴 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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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상"은 4명의 작가가 함께한 합동 전시로, 각기 다른 사랑의 대상을 각자만의 방법으로 그려내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데 의의를 둔다. 개인적인 경험과 각 작품에 관한 감상이 교차될 때 에로스적 사랑, 마니아적 사랑, 나르시시즘적 사랑 등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의 형태를 찾아갈 수 있었다.

 

전시를 여는 첫 주제는 어쩌면 가장 강렬한 사랑이자 많은 창작자들을 매혹시키는 에로스적 사랑이었다.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최예영 작가의 사진은 뱀과 사과,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를 피사체로 사용했다. 남성과 여성 모델, 흰 뱀과 어두운 빛깔의 비늘을 지닌 뱀이 마주보는 작품 배치는 작가가 아담과 이브의 메타포를 사용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상대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때론 강렬한 감정에 휩싸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이 사랑은 아름답지만 섬뜩한 느낌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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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영 작가의 작품 '낙원'을 지나면 에로스의 화살을 오브제로 활용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해당 공간에는 무수한 화살에 둘러쌓이고, 그 끝에 꿰뚫리고, 사랑에 지친 듯 쓰러진 여성 피사체의 모습이 벽면에 걸려 있다. 해당 작품들에서 작가는 여성과 남성 피사체의 대치를 활용한 '낙원'과 달리 동일한 여성 피사체가 서로 마주보는 연출과 편집을 택했다.

 

에로스의 화살촉에 찔린 아폴론처럼 앞뒤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의 끝에서, 혹은 그 사랑의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또 다른 우리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성을 압도하는 본능과 감성 앞에서 상처 입고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은 충격을 준다. 입에 넣으면 달콤하지만, 알레르기처럼 의지와 상관 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음을 깨닫고,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역경도 있다는 걸 깨닫는 여정. 그 에로스적 사랑의 연대기는 결국 자신을 재발견하는 인내와 아픔을 통해 성장으로 가는 여정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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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상' 전시는 이렇게 작품과 설명을 통한 관람객의 주체적인 사유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중간 중간 간단한 체험을 통해 사랑의 순간을 직접 반추해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가족이나 반려동물,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점점 따뜻한 시간 속으로 잠겨가도록 해주는 박세빈 작가의 작품과 체험이 무척 잘 어우러졌다.

 

그래서일까, 따뜻한 빛을 사진처럼 포착한 한 점 한 점의 그림들과 여름이지만 기분 좋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지나치는 게 아쉬웠다. 공기처럼 일상적이라 구태여 떠올리려 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가족의 사랑을, 그 다양한 형태를 또 다시 새로이 포착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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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정아사란 작가의 작품은 여타 작품과 다른 주제를 채택했다. 시야를 흐리지 않을 것 같은 투명한 레이어도 결국 시야를 가리고, 혼돈을 주고, 내가 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내 편견이 덧씌워진 이미지로 재창조한다. 깨져버린 사랑을 기억하느냐는 문구 뒤로 보이는 작품은 그림자를 통해 그 사랑의 실체를 비로소 포착하게 한다. 작가는 모든 작품에서 레진이나 플라스틱 등 재료를 이미지 위에 덮음으로써 대상의 진짜 모습을 보는 일의 어려움을 역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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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랑이 깨지는 순간이 도래할 때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졌던 온갖 이상과 환상의 레이어를 벗고 상대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왜곡된 시선 너머의 상대를 볼 수 있을 때, 사랑이 결과가 아니라 이 순간을 위한 계기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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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시 테마는 나르시시즘적인 사랑이었다. 위 문구를 보면서 작품을 보기 전부터 늘 가지고 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사랑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건 어쩌면 나 자신으로 환원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아주 어릴 때, 이타적인 행동이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한 적 있었다. 책 속에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영웅이 많았다. 물론 지금은 사랑이 바깥으로 뻗치도록 하는 내적 동기보다도 그 사랑이 뻗어나가는 모습과 방법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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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수 작가의 작품 중 셀프 포트레이트는 결국 내면의 나르시시즘적인 사랑을 들여다보려 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나르시시즘적인 표현 방법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뒤가 아닌 카메라 앞에 직접 서기 때문에 자신을 관조하려는 시도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전시 공간에 비해 밝고 차분한 전시 공간에서 타인을 줄곧 떠올리며 바깥을 떠돌던 생각을 나에 대한 생각으로 되돌리며, 그런 감상을 받았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대로 결국 타인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베풀고 타인에게 받은 사랑으로 우리의 속을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 몸의 세포가 하나씩 변화하는 것처럼, 사랑은 우리의 곁을 떠났다가 다시 자라나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한다. 때문에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타인에게 의존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일생에 걸친 사랑의 유통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그리고 사랑은 반복되는 하나의 노래가 아니라 다른 노래들의 메들리이기 때문에 질릴 리 없다는 것을 '사랑의 단상' 전시를 보고 나오며 느꼈다. 더 많은 사랑을 그러므로 아직은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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