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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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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본

 

 

지난주 목요일, 친구와 함께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진행 중인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展"을 관람하고 왔다. 세계적인 사진가 협동조합 ‘매그넘 포토스’가 약 80년에 걸쳐 쌓아온 포토북 150권은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었다. 민족, 개인의 삶 등 작가들이 탐구해 온 주제가 포토북 안에서 시각적 서사로 편집되어 있었고, 전시 초입의 리딩룸에서는 이 서사를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매그넘 포토스’는 무엇인가? 매그넘 포토스는 1947년 파리에서 네 명의 전설적인 사진가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조지 로저, 데이비드 사이무어가 결성한 사진가 협동조합이다. 매그넘의 사진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포착하면서도 아카이브와 인터뷰를 활용하는 등 역사적 기록과 예술적 시도를 동시에 진행해 왔다. 매그넘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4년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기에, 사진가들에게 매그넘 입회는 큰 영예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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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본

 

 

지하 1층 리딩룸에서는 포토북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작은 공간이라 금방 둘러볼 수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포토북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흥미로워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여러 포토북이 눈길을 끌었지만, 스튜어트 프랭클린의 "Hotel Afrique"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프랭클린의 작업은 아프리카의 여러 고급 호텔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아프리카에 대한 통념으로 빈곤과 분쟁, 낙후된 환경을 떠올리지만, 프랭클린의 렌즈에 담긴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고급 호텔은 성취와 가능성의 상징으로, 사진 속 벨보이, 웨이트리스들은 우리의 낡은 인식과 달리 고임금의 안정적인 일터에 다니는 직장인이었다. 또한, 내부 인테리어와 외부 풍경은 아프리카의 전통문화와 국제 비즈니스 문화가 교차하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사람과 문화를 담은 브뤼노 바르베의 "Les Italiens" 역시 흥미로웠다. "Hotel Afrique"가 고정관념을 부순다면, 바르베의 작업은 수녀, 사제, 마피아 등 이탈리아의 전형적 인물상을 촬영하며 한 시대를 증언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흑백 사진임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표정과 상황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전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짐작해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밖에도 리딩룸에는 코카서스나 발칸 반도 사람들을 다룬 포토북도 있어서 이번 전시의 본질이 다양성임을 알 수 있었다. 매그넘이 사진으로 담아온 세계 곳곳의 사건과 사유 말이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을 다룬 포토북도 매력적이었다. 쿠보타 히로지의 "Japan"은 일본의 전통과 현대, 평범한 일상과 특별한 의례를 미학적으로 담아냈다. 오래된 사찰, 파친코 홀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 니가타현의 설경에 이르기까지 쿠보타는 4년간 일본 방방곡곡을 누비며 풍경과 사람들을 담아냈다. 특히 교토의 어느 신사에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하카마(일본의 전통의상) 매무새를 정돈하는 사진이 좋았다. 문화를 뛰어넘는 가족의 유대감이 인상적이었다. 매그넘 포토스 홈페이지에서 설명을 읽어보니 일본의 남자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면 처음으로 하카마를 입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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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본

 

 

총 6개 파트로 구성된 전시는 1943년부터 2025년에 이르기까지 매그넘이 쌓아온 방대한 기록을 담았다. 전시에서는 △매그넘의 시작 △한국전쟁 및 9.11 테러 등 역사적 사건 촬영 △2000년대 이후 포토북의 예술적 지위 확보 과정 △매그넘 작가들의 아이코닉한 작품 △미출간 프로젝트 △삶의 여러 단면 등을 볼 수 있었다.


전시의 끝 무렵에 본 치엔치 창의 “The Chain”은 충격적이었다.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해 사슬을 사용하는 대만의 롱파탕 사원. 정부와 환자들의 가족은 사원의 방식이 비인도적인 방식임을 알지만 묵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원은 일반적인 의학적 치료가 모두 실패한 후에 찾아가는 ‘마지막 희망’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원에서 30년을 보낸 남성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들은 차분한 말투로 편지를 썼지만, 그 말투 아래로 비치는 상처, 울분과 절박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부 본 것만 같아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편지 속에서는 아들이 30년이 지나서도 “얼마나 제가 정상인이 되었는지 보러 와 주세요. 그래 주실 거죠?”라고 말을 걸고 있었다.


매그넘 작가들의 화두는 민족, 인권, 전쟁부터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모든 사진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중이 담겨 있었고, 작가들의 시선은 포토북이라는 물성으로 엮여 하나의 서사로 이어졌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삶이 펼쳐졌고, 그들이 만들어낸 시각 언어는 어떠한 텍스트보다 더 능동적이고 다채로웠다. 세계 곳곳을 기록한 매그넘의 시선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진과 책을 좋아한다면 이번 전시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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