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일지 모르겠으나, 공연 시작 직전에 공연장에 들어서는 편이다. 일찍 들어서봤자 볼 것도,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 <삼매경>은 연극 시작 적어도 20분 전부터(내가 공연 시작 20분 전에 들어선 것 같다. 시간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다양한 소리를 내고, 움직임을 보인다.
환한 조명, 공연장 밖의 어수선한 사람들의 목소리, 곳곳에서 자리 안내를 돕는 공연 안내원의 모습까지. 모든 풍경이 공연 시작 전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지만, 무대 위 배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몰입해 있다. 가운데에는 동자승이 수련을 하고 있고, 남은 배우들은 바람과 나무 소리를 내며 고요한 사찰의 분위기를 전한다.
입장하는 관객마다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에 흠칫흠칫 놀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을 확인한다. 공연이 시작된 것인가, 하는 마음에서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배우들은 똑같은 동작과 소리를 반복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을 향한 배우들의 연기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됐다.
이후 ‘도념’ 역할의 배우 지춘성과, 34년 전, 함세덕의 연극 ‘동승’ 속 주인공인 동자승 ‘도념’ 역할을 맡았던 어린 도념이 대화를 나누며 연극이 시작된다. 작품의 캐릭터 그 자체인 동자승 도념을 나이 든 도념, 배우 지춘성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관객들에게 그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상황을 마주했는지 낱낱이 설명해 준다. 그가 동자승 도념, 어린 도념을 계속 맴도는 이유는 미련 때문이다.
34년 전, 동자승 도념 그 자체가 되지 못했다는 배우로서의 실패감이 이후 배우 지춘성을 압도하고 말았다.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도념을 떠돌며 그를 완성해 내고야 말겠다는 열망은 파괴적인 것이었다. 극 초반, 동자승 도념은 칼로 나이 든 도념을 찌른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나이 든 도념은 끝없이 상처받았음에도 다시 연극을 부르짖는다. 34년 전 자신이 연기한 ‘미완의 도념’에 대한 집착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당시 ‘동승’을 연습했던 비좁은 지하 연습실에 도달한다.
이후 죽어있는 배역에 생명을 불어넣는,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텍스트 안에 갇혀 있는 인물을 구원하면서도 배우들은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끝없이 비워낸다. 내 안의 내가 완전히 없어졌을 때, 비로소 그 배역에 온전히 몰입한, ‘완전한’ 상태가 됐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소멸시켜야 하는 연기는 파괴적이었고, 그런 연극은 잔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삼도천을 건너기 직전 그 순간에도 배우 지춘성은 그날의 연습실을 떠올렸고, 다시 연극을 하고 싶어했다. 다른 배우들 모두, 가족의 죽음 등 고통의 순간에도 계속 연기를 했다. 나이 든 도념의 말대로, 자신을 파괴해 내면서도 끝없이 열망할 수밖에 없는 연극은 정말 잔인한 것이었다.
이후 배우 지춘성은 ‘동승’ 연극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평생 괴롭혀 온 동자승 도념을 죽이어 자신을 구원하려 한다. 그러나 동자승 도념은 끝없이 살아나며, 연극은 한없이 기괴해진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연극 속 캐릭터들은 배우 지춘성에게 그가 완성을 향한 열망으로 그 자신을 살생해 왔음을 일깨워준다. 그가 죽인 것은 어린 동자승 도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혼란스러운 연극 속 상황들이 종결되고, 배우 지춘성은 ‘동승’을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읊조리며 연기한다. 여러 세계관을 정신없이 오갔던 연극의 가장 차분하면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동승’의 어린 도념을 연기한다. 연극도, 삶도 모두 미완의 것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그렇게 끝내 완성해 내지 못한 연극을 뒤로 한 채 사라진다.
공연장을 떠나면서, 미완의 연극을 위해 자기 자신을 소멸시켜야 하는 배우에 대한 연민이 들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극에 몰입했던 배우들의 모습은 삶과 연극의 경계가 없는 ‘배우’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온전히 그 배역을 완성해 내고야 말겠다는 열망은 삶과 연극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연극 <삼매경>은 미완의 삶과 미완의 연극이 뒤죽박죽 뒤섞인 고통 속에서도 연극을 붙잡고야 마는 배우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