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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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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본다는 건, 극장에 갇히는 것이다. 관객은 어두운 객석에 갇혀 창작진과 배우가 만드는 세계에 속절없이 끌려 들어간다. 극이 끝나고, 객석이 밝아지면 육신은 극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 마음은 무대 위 세계에 계속 붙잡혀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속박을 다른 말로는 몰입, 또는 여운이라고 한다. 몰입과 여운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몇 달, 운이 나쁘면 평생 못 빠져나가기도 한다. 물론 때에 따라서 이러한 무기징역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때도 있다. 이와 같은 몰입은 생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는다.


연극을 만든다는 건, 작품에 갇히는 것이다. 물리적인 육신과 시간이 대본과 연습실, 극장 안에 갇히는 걸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마음, 삶 자체가 무대와 작품에 붙들리는 것이다. 그러한 구금(拘禁 :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구치소나 교도소 따위에 가두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강제 처분)은 자발적이기도, 비자발적이기도 하다. 혹은 비자발적인데 ‘좋아서 하는 것’이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연극에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생이 끝나면 그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34년 전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의 잔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아직도 연극 속 시간과 공간에 구금된 자가 있다. 그는 연극 <동승>에서 동자승 ‘도념’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 지춘성이다. 국립극단 연극 <삼매경>은 <동승>이란 덫에 걸려버린, 생의 끝자락에서 주마등에 갇힌 지춘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삼매경>은 <동승>을 원작으로 연출가 이철희가 재창작한 작품으로, <동승>과 배우 지춘성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지는 메타 연극이다.


1991년, 20대에 도념을 연기한 지춘성은 제15회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제2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인기상을 받았다. 배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고, 객관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연극 <삼매경> 속 지춘성은 자신의 도념을 완전한 실패라 느낀다. <동승>의 시공간에서 길을 잃은 그는 자신의 곁을 맴도는 14세 동자승 도념의 혼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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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와 한국전쟁기에 활동한 극작가 함세덕의 희곡 <동승>은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서 극연좌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동승>은 비구니와 사냥꾼 사이에서 태어난 14세 동자승 도념이 주인공이다. 파계(破戒 : 불교 용어, 계(戒)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기고 지키지 아니함)의 죄를 짓고 떠난 친어머니를 한없이 기다리던 도념은, 아들을 잃고 절에 제사를 지내러 온 미망인에게 어머니의 정을 느끼고 이끌린다. 도념의 마음은 어머니가 그리운 정서적 허기이기도 하지만, 속세를 향한 열망이기도 하다.


미망인 또한 떠난 아들의 빈자리를 도념으로 채우고 싶다. 그는 도념에게 자신을 ‘어머니’라 불러 보라며 도념의 텅 빈 마음을 뒤흔들고, 입양을 결심한다. 미망인에게 처음엔 꽃만 따다 주던 도념은, 금기를 깬다. 살생을 저지른 것이다. 미망인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기 위해 절에 덫을 놓고 토끼 사냥을 하는 도념. 처음부터 입양을 반대하던 주지 스님은 도념의 살생과 죄에 극대노하고, 입양은 무산된다. 미망인과의 인연 또한 끊어지고, 절을 떠나게 되는 도념은 세상 밖으로 나간다.


34년 전, 도념을 연기해 찬사받은 배우 지춘성은 자신이 만들어낸 ‘망령’인 도념의 혼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어쩌면 지춘성이 그림자이고, 도념의 혼이 본체일 수도 있겠다. 지춘성은 자신의 분신(分身)에게 찔려 저승으로 떠나야 할 운명에 처하지만, 그는 <동승>을 준비하던 1991년의 연습실로 회귀한다. 운명을 거스르고 삼매경(三昧境 :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도념은 물론 연출의 말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겉핥기 연습만 하던 1991년의 지춘성은 어머니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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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지춘성은 어머니의 정에 목마른 도념을 완전히 이해하며 역할에 한 걸음 다가선다. 어머니의 혼이 지춘성을 위해 <동승>의 미망인이 돼 주기 때문이다. (연극 <삼매경>에서 지춘성 어머니 역할과 극중극 <동승>의 미망인 역할은 한 배우가 연기한다) 이 모습은 도념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도 도념이 ‘되려고’ 하는 지춘성의 연기 열정과 광기를 보여준다. 또한 연극에 삶을 빼앗기고 작품과 무대에 갇힌 연극인들의 천형(天刑 : 하늘이 내리는 큰 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가족을 잃고,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연극인들의 이야기도 묘사되기 때문이다.


<동승>의 도념이 미망인을 기쁘게 하려고 ‘살생’이란 금기를 깬 것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삼도천에 뛰어든 지춘성은 ‘완성’이란 꿈에 집착한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다. 따라서 인생에서 모든 것이 온전한 합일을 이루는 완벽한 순간을 붙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승과의 연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동승>과 도념에 매달리던 지춘성은 삶은 ‘아름다운 미완성’이란 걸 마침내 깨닫는다.


미망인을 위해 토끼 덫을 놓고 살생의 죄를 저지른 도념은 절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종을 친다. 그 종소리엔 슬픔도, 원망도, 그리움도 담겨 있지 않다. 도념은 친어머니, 미망인, 속세에 대한 갈망까지 모든 걸 내려놨기 때문이다. <동승> 마지막 장면의 모든 역할을 홀로 연기하는 지춘성도 생은 아름다운 미완성이며, 자신 또한 미련을 버리고 절을 떠나는 도념처럼 삶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현실과 환상이 뒤엉키며, <동승>과 원작에 대한 현대적 시선이 뒤섞이며 펼쳐지던 지춘성의 내면적 독백이 고요해지자 무대 또한 정적에 휩싸인다. 그 침묵은 지춘성이 그토록 염원하던 ‘완성’에 가장 가깝게 맞닿은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주마등은 그렇게 암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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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신이고 배우는 사제다.”


<삼매경>의 대사처럼 연극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무대를 만드는 이들, 무대에 서는 이들은 연극을 두려워하면서도 연극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무대를 보는 이들 또한 연극의 묘미를 알아버리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연극이란 삼매경에 스스로 갇혀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시감을 넘어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무대는 인생의 축소판이며,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만들고 연기하는 극작가·연출가이자 배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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