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말엽이었다. 학동역 부근에서 어느 소설가의 신간 북토크에 참석했다. 집에서 한 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였으며, 평소 근방을 밟을 일이 없었기에 목적만 달하고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주변 놀거리를 모색해 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영화가 제격이란 생각에 시선을 옮겼다. 근처 독립영화관인 ‘픽처하우스’가 눈에 밟혔다.
이름이 낯설어 뜻을 찾아보니, ‘영화관’이었다. 주로 영화관은 미국식인 ‘movie theater’나 영국식인 ‘cinema’ 정도가 익숙하였는데, ‘movie house’와 ‘picture house’처럼 집에 빗댄 점이 신신했다.
영화의 집일까, 혹은 집 같은 영화관일까. (덧붙이자면, 동네영화관은 ‘nabe’라고 한다. 동네의 반경 기준이 어떠한지는 모르겠다만, 일본식 전골과 이름이 같아 괜히 친근했다. 누군가 영화관을 만들 재력이 된다면 그 이름으로 강력히 추천해 본다. 가장 ‘맛있는 영화관’이 될 것이다.) 아무튼 이름이 영화관인 영화관은 분명 견인력이 있었다.
평소 독립영화관과 친밀치는 않지만, 항상 동경하여왔기에 새로 알게 된 장소를 이참에 한번 가볼까 싶었다. 그러나 상영시간표에 기재된 영화가 그다지 구미에 당기진 않았다. 여건이 되는 시간대에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과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이 상영 예정이었다. 두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음에도, 그날의 끌림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재관람에 따른 거리낌으로 여겼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른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작가와 만나고 온지라 아이의 세계를 다루는 두 영화를 택하기가 꺼렸었는지도 모르겠다. 꿩 대신 닭으로 근처에 유명한 평양냉면집을 찾아갔지만, 이마저도 줄이 길어 서울냉면집으로 갈음했다. (그럼 닭 대신…)
이로써 그 영화관과의 우연은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또 다른 우연이 돌차간에 찾아왔다. 바로 다음 날 어느 영화 커뮤니티에서 그곳이 휴관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단 하루 차이였다. 그때 느낀 감정은 뭐랄까, 경황망조하달까 우두망찰하달까. 그럴싸한 어휘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어딘가 미진하다. 썩 좋지는 않았다. 툭 까놓고, 아 가볼 걸, 하는 막연한 아쉬움에 급체했다.
사실 독립영화관에 대한 애정이 크진 않다. 가본 곳이라곤, 서울 소재의 네다섯 군데와 대구에 위치한 두 곳(하나 휴관 중이다) 정도가 전부였다. 시네필의 성지인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는 근처도 얼씬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주로 예술영화에 대한 갈증은 CGV 아트하우스에서 해소하였으니, 이런 멀티플렉스의 기생충이 독립영화관을 논할 자격이 있나 싶다. 확실한 증거로, 지난해 유서 깊은 대한극장이 폐관한다는 사실을 기사로 접했을 때도 별반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가보지 않았고, 가볼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사뭇 달랐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픽처하우스가 벗어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좌석이 얼마나 불편한지, 영사막이 깔끔한지 등을 알지 못한다. 그저 타인의 글에 묘사된 풍경만으로 상상해 볼 뿐이다. 그럼에도 그립다. 이건 턱없는 아이러니이다. 결국 후회는 하지 못한 것보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에서 파장이 더 일렁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66년이나 되었던 극장을 가지 못한 것에 미련은 없지만,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영화관을 갈 수 있었는데 가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거세다.
유월의 마지막 날, 픽처하우스는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근작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끝으로 영사기를 멈추었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 피는 꿈에는 줄곧 그 영화가 재생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장중함에 잇따라 떠오른다. 깨어날 때쯤이면, 같은 감독이 처음 찍어낸 장편 속 아이의 눈망울과 마주하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을 머금은 마침표를 찍으려다 비듬히 손을 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