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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따금씩 살기 위해 잔인한 결단을 내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오랜 세월 시달린 남편의 손찌검을 더는 견디지 못해서, 부모가 주는 과도한 성적 압박에 숨이 막혀서, 정서적 신체적인 학대를 가한 상대가 죽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왔던 지옥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손에 피를 묻히는 선택이 이성적이고 타당한지 알 길은 없어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최선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한 짐승들처럼 폭력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않고 가급적 대화와 합의를 통한 해결을 시도한다. 불행히도 사회 안전망이 여전히 충분히 촘촘하지 않은 탓에 그 틈새로 빠져버린 사람들은 구제해줄 이 하나 없는 자연 상태에 놓인 기분을 느끼게 된다. 구석으로 몰릴수록 그들이 선택했던 무수한 선지는 소거되고 손 안에는 극단적인 선택지만이 남는다.

 

그렇다면 고통받았던 역사를 계획 범죄의 빌미로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건 살인이라는 절대적 악행을 단죄하기 위해 필요한 이성적인 판단인가. 반대로 불우한 과거가 있다면 어떤 죄든 참작해주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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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애 작가의 ⟪나에게 없는 것⟫은 악인의 탄생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위의 질문과 같이 과거를 지닌 악인의 행동에 관한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나아가 이러한 악행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어른들의 책임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사람을 해친 짐승과 눈을 마주할 때 느끼는 딜레마


 

⟪나에게 없는 것⟫은 폭력적이고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어머니의 양육 방식 탓에 애정에 목말라 있지만, 어머니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해와 폭력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세나'에 대한 양가감정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하영'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미 벌어져 버린 악행의 뒷면을 볼수록 판단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하영은 계속 세나의 행동의 이유와 과거에 대한 실마리를 좇는다. 더불어 하영 자신이 저질러 왔던 폭력의 감각을 손끝에서부터 고통스럽게 반추하며 이제는 정말 자신의 생애를 전부 지배할 악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영과 세나는 작중 초반에는 마치 대척점에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매일 아르바이트를 해야 간신히 먹고 사는 하영과 재벌가 안주인을 어머니로 둔 세나. 가까운 친구도, 가족도, 하물며 자신의 이름에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듯 쉽게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하영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세나. 세나의 어머니 '한 관장'으로부터 세나의 감시와 그에 따른 보수를 약속받은 하영은 이미 자신에게 동경을 품고 있던 세나와 금새 가까워진다. 둘의 관계는 서로의 차이와 격차를 인지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하영은 세나와 자신의 접점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하영과 세나의 사이는 후반부로 갈수록 내밀해지는 듯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는 둘 모두 상당히 동물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지만, 결정적으로 충동적인 세나보다 하영이 좀 더 인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른 나이에 어른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날 필요를 느꼈고, 그 탓에 타인과 애착 관계를 제대로, 충분히 쌓지 못하는데다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묘사가 없거나 적다. 이러한 일련의 성장 배경을 통해 두 캐릭터 모두 사이코패스나 절대적인 악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작가는 분명히 한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하영은 세나가 그러하듯 서로 이해하고 보듬는 애틋하고 소중한 관계를 상상하지 않는다. 세나는 하영에게 외면하고 싶은 트라우마와 과거를 자극하는 인물이며, 결국 세나 자체도 고통스러웠던 과거처럼 자신을 찌르는 칼 같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하영은 돌발적으로 마주해야만 했던 몇 번의 비극으로 인해 살인을 저질렀고 계속해서 머물렀던 곳을 떠나왔다. 세나가 본인의 모친이라는, 제 인생을 지배해온 폭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평생을 애써왔다면 하영은 유년기 때부터 몇 번의 다른 상황 속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타인의 악한 면에 자주 노출되었던 하영은 어쩌면 자신의 다른 가능성에 가까운 모습을 세나에게서 기민하게 포착했을지도 모른다.

 

하영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보다 생존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버리며 살아온 인물로 그려진다. 세나의 집착이 하영을 따라올 때, 하영은 자신이 죽였던 눈앞의 이익과 욕망에 눈 먼 악인들과는 다른, 자신처럼 유년기의 무력한 몸으로 공포를 안고 살아야 했던 한 아이를 봤을 때,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그것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하영의 시점에서 세나를 관찰하는 묘사는 많아도 세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낱낱이 밝히지 않지만, 결국 이를 통해 하영의 딜레마와 결정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사람을 해친 짐승의 눈을 바라보면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연민을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하영은 세나를 볼 때 느끼는 듯했다. 살인자와 살인자가 축이 되어 돌아가는 이야기의 끝은 이 둘을 향한 절대적인 연민과 이들의 살인에 대한 납득으로 매듭지어지지는 않는다. 하영은 세나의 행동을 나무라기는 커녕 오히려 공감을 느끼지만, 끝내 자신의 아픔과 공감마저 자신이 살기 위해 이용해버리는 결말에서 주인공 하영의 처지에 대한 공감으로 내내 이어졌던 정서는 조금 사그라든다.

 

자신의 어머니를 직접 살해한 세나와 그러한 결단을 부추긴 하영 중 누가 더한 악인인지,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할 때 나 또한 상대를 죽일 마음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며 살아가는 짐승 같은 생을, 우리는 연민과 두려움에 찬 눈으로 보게 된다. 어쩌면 그 딜레마의 당사자나 피해자가 될 일이 부디 없기를 바라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하영과 세나의 이야기 중간 중간 나오는 범죄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상담하는 '선경'의 이야기는 이러한 딜레마에서 당연히 고려해야 할 대상을 자연스럽게 염두에 두게 만든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장르물의 이야기에서 우리를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시 한 발 빼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는 결론 내릴 수 없는 딜레마가 아니라 끝끝내 거둘 수 없는 어린 하영과 어린 세나에 대한 연민으로 연결되며, 소설 속 이야기를 소설 세계 밖으로 연장시킨다.

 

⟪나에게 없는 것⟫의 결말에서 남는 것은 악인이 제거함으로써 공포를 완전히 제거한 세상에 대한 바람이 아니다. 죽음과 죽음으로 이야기를 쌓을 수밖에 없는 스릴러의 서글픈 면을 조명함으로써 완성하는, 캐릭터가 아닌 실존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다. 사나운 동물에게서도 자기방어 의사를 읽어내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없는 것⟫을 읽고 나서 이러한 감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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