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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2번 2악장'
사람들은 종종 같은 일을 하는 업계 동료를 '양날의 검' 같은 존재라 말하곤 한다. 서로의 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비교와 경쟁,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술고등학교에서도 같은 전공 친구보다 타전공 친구와 더 편하게 지낸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갈등과 긴장감은 과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음악계의 라이벌'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이 두 사람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아마데우스 (Amadeus)
'아마데우스'는 라틴어로 '신께서 사랑하신 자'라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살리에리는 늘 천재를 질투한 2인자의 대명사처럼 비추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평생 모차르트를 이길 수 없었던 살리에리를 단순히 동정하거나, 그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마데우스'는 예술가에게 필요한 마음이 무엇인지, 진정한 동료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에 대해 말한다. 두 사람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결국 서로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건 '서로' 뿐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하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살리에리
살리에리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사랑했다. 아버지의 반대와 가정 환경 떄문에 음악을 바로 접할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마침내 궁정음악가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며 직접 만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첫인상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미숙한 예의범절, 한없이 가볍고 방탕한 태도에 살리에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모차르트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만큼은 달랐다. 모차르트의 음악성은 살리에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유자재로 뽑아내는 변주와 음악적 감각. 살리에리는 그런 미성숙한 자아에 음악성이 깃들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은 곧 열등감이 되었고 그는 점점 모차르트를 향한 시기와 질투에 깊게 물들어 갔다.
그러나, 기존의 음악적 관념을 깨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펼쳐보이는 모차르트의 음악 앞에서, 살리에리는 질투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깊은 경외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살리에리는 상반된 감정 속에서 점점 무너져갔고, 결국 이런 감정에서 회피하기 위해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다.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의 마지막 순간, 모차르트 또한 살리에리의 음악을 인정하고 있음을 이야기했고 살리에리는 자신이 오해와 왜곡 속에서 살아왔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의 진심
모차르트가 국립극장에서 점차 대중 오페라로 밀려나게 되는 과정 중에서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 음악의 진가를 늘 알아보고 있었다. 모차르트 역시, 죽음을 앞두고 [라크리모사]를 작곡하면서 순식간에 자기 음악을 이해하고 받아 적어가는 살리에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때, 살리에리는 파티에서 모차르트가 자신을 비웃어 분개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생의 마지막 순간, "살리에리가 항상 자신을 무시하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파티에서의 일도 이런 생각 속에서 벌어진 것이며, 결국 이 모든 비극은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서야, 모차르트가 자신의 음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인정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살리에리는 그의 음악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결국 서로의 음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알아본 존재는 오직 두 사람 뿐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제목은 표면적으로는 모차르트의 미들네임에서 따온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끝날 쯔음 우리는 '신께서 사랑하신 자'는 모차르트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살리에리 또한, 자신의 음악을 알아볼 수 있는 동료를 만났던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고 음악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면 분명 서로에게 '아마데우스'적인 존재가 되어 더 따뜻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모두가 그를 '모차르트'로 기억하고, 아내 콘스탄체는 그를 '볼프강'이라 부를 때, 오직 살리에리만이 그를 '아마데우스'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살리에리의 시선을 담은 '아마데우스'가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중에는 우리보다 더 빛나는 이들도 분명 있다. 사람들의 재능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때로는 그 재능이 질투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나보다 뛰어나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질투하고, 오해하거나 외면한다면, 우리는 많은 소중한 이들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데우스'는 결국 그런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각자의 진심을 알아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도 우리 삶 속의 그런 귀중한 존재를 알아보기를. 그 인연들을 소중히 지켜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