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993년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다. 알록달록 당시 일본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있다. 타바타 토모코에게서는 어른스러움과 아이스러움이 적당히 묻어났다. 일본의 여름을 아름답게 담아내면서도, 탄탄한 스토리와 결말을 놓치지 않았다. 해맑은 포스터에 속아 휴지를 까먹지 마라. 무조건 울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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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식탁에 앉아 저녁밥을 먹는 가족. 엄마가 자리를 뜨자 균형이 무너진다. 아빠는 내일 이사하기로 했고, 이제는 소스도 혼자 만들어 먹어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렌은 엄마 아빠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혼자 밥도 잘 차리고, 빨래도 잘 너는 씩씩한 딸이지만. 어느 날 문득 부여받은 이혼 가정이라는 타이틀은 아직 버겁다. 학급 친구들 사이에서는 금술 좋은 가정으로 알려져 있기에 더욱 그럴 테다.

 

엄마 나즈나는 렌과 새출발을 기념한다.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술도 한잔 걸치고, 둘만의 생활 규칙도 새로 만든다. 렌은 새로운 규칙을 찢어버리고, 이 집을 떠나고자 짐을 싼다. 계획을 들켜버린 렌은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다. 연락을 받고 서둘러 달려온 켄이치와 나즈나는 또 다시 싸운다. 왜 애를 잘 보지 않았느냐. 너도 잘한게 없지 않으냐. 사소한 상처들이 몇 년간 쌓이면 걷잡을 수 없이 큰 구멍이 되곤 한다. 구멍은 메꾸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조차 모른다. 욕실 건너편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왜 낳았냐고 물어보는 렌의 말. 그 말이 나오기까지 거쳐온 렌의 작은 입과 마음이 너무나 안쓰럽고,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엄마와 아빠의 귀가 참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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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의 돌발행동으로 셋은 매년 가던 호수로 여름휴가를 떠나게 된다. 아빠는 렌의 숙제를 해왔지만, 렌은 상처를 받는다. 짧은 줄로 셋이 단체 줄넘기를 하려다 보니, 조금 지쳤던 것 같다는 아빠의 말. 다른 사람의 줄을 이어서 길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는 렌의 말.

 

생각이 많아진다. 렌과 아빠 그 중간 어디에 내가 있기 때문이려나. 부모는 아이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줘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러나, 엄마 아빠도 부모이기 이전에 나즈나와 켄이치이다. 남자와 여자이고, 사람과 사람이다. 부모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은 직결되어 있다. 부모가 행복할 수 없다면, 아이도 행복을 배울 수 없다. 그러니 안정적(으로 보이는) 가정을 억지로 유지하며 행복을 연기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을 아이가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말은 힘을 잃는다. 아이의 세상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는 가정만이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가정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정적인 가정의 개념을 확대해 내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자 이런 고민들을 넣어두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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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리가 한창인 일본의 어느 마을, 렌은 엄마와 아빠를 떠나 달리고 달린다. 볏짚은 새빨간 불에 활활 타올라 이내 떨어지고 부서진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쭈그려 앉아 그 광경을 눈으로 담고 또 담는다. 대나무 숲 사이를 거닐고, 계곡 바위에 앉아 늑대를 흉내 내다 지쳐 잠든 렌은, 과거의 나를 만난다.

 

행복해 보였던 엄마와 아빠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혼자 남게 된 나. 그 과거의 나를 안아준다. 렌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빠나 엄마가 설명해 주는 이혼의 이유나 변명이 아니다. 진정한 받아들임. 이는 곧 자기 자신과의 화해에서 비롯된다. 헤어짐의 과정에서 받은 숱한 상처들을 똑똑히 마주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충분히 위로해 준다. 그래야 놓아주고 다음을 맞이할 수 있다. 할아버지가 말씀했듯, 추억할 일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렌이 외치는 '오메데또!(축하해!)'는 아마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성장을 축하하는 것이겠다. 마치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난 뒤처럼, 렌은 평온해졌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엄마와 간식을 나누어 먹고,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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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살인 나도 누군가와 간식을 나누어 먹고 싶지 않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아마 쉰셋 우리 엄마도, 서른다섯 살 삼촌도 그럴 것이다. 내가 그리고 수많은 어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보면 더욱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렌이다. 렌은 열세 살에 만났지만, 누구는 스무 살에 누구는 예순 살에 만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내면의 어린아이가 있다. 그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똑똑히 마주하고, 또 잘 보살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혼자 두 발 딛고 살아갈 수 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어른이 되어가는 렌이 보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별에 익숙해진다거나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잘 받아들이게 된다는 게 아니다. 나를 잘 보살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끊임없이 마주하고, 잘 대화하고 구슬려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노하우를 터득해 간다는 것이 아닐까. 렌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나 어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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