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브람스 인터메조 Op 118 - 2]

“글쓰기와 작곡은 사실 같은 일을 하는 것과 같다.”
이 말에 처음부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일과 음악을 만드는 일은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다른 분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작이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둘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글을 쓸 때 우리는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주제’를 떠올린다. 그 주제에 적합한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에 대적할 인물을 구상한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며 배경을 확장하고, 결국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작곡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나 메시지를 떠올리고, 그것에 어울리는 메인 악기를 선택한다. 그 악기에 조화를 이루는 악기들을 배치하고, 선율을 얹으며 완성된 하나의 곡을 완성해낸다.
*
그래서였을까?
이십대 초반, 입시를 준비하며 글쓰기에 몰두하던 그 시절, 나는 자연스럽게 음악에도 이끌렸다. 낮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입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끝맺으며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는 일은 무엇보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와닿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 속 주인공도 순탄한 삶만을 살 수 없듯, 나 역시 그러지 못했다.
낮에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일하고, 밤에는 고요한 적막을 견뎌야 하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자 점차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괴리감이었다.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에 지쳐 있으면서도 정작 내 이야기는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듯한 고립감. 슬럼프의 시작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재즈 음악을 만났다.
계기는 단순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BGM이었던 재즈 선율이었다. 반복되는 리듬과 사람의 말 소리라곤 하나도 없는 그 음악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그 음악을 찾아 들었고, 그렇게 음악은 내 마음을 달래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후 알고리즘은 피아노 클래식 음악을 추천해주었다. 클래식은 비교적 기승전결이 뚜렷했다. 도입부의 잔잔한 선율은 다이나믹과 주제 변형을 거쳐 클라이막스로 향한 후, 결말에 다다른다. 한 편의 단편 영화처럼 전개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점점 클래식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위로 받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 음악을 통해 상상한 주인공을 바탕으로 새 이야기를 구축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음악이 나의 괴리감을 상쇄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점차 슬럼프를 조절해가며 대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전 글이었던 영화 [소울] 오피니언에서 말했듯 인생의 굴곡은 끊임없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완벽한 평온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몇 년 동안 학교에서 글을 쓰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자유’라는 또 다른 굴곡을 맞았다. 졸업 후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더 이상 없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 있을 때에도, 입학 전에도 하고 싶은 말이 없어 힘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 글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시간 동안 나는 기획안을 펼쳐놓고 기획의도를 적는 것에 더 큰 고민을 하곤 했다.
그 때 나는 또 한 번 클래식 음악을 붙잡게 되었다. 글을 잠시 멈추고,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하는 시간 동안 나는 찬찬히 마음을 정리해보았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내가 음악을 생각보다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피아노를 치며, 연주회를 가며 음악을 통해 위로받았던 기억을 되새겼다.

“이 음악을 누군가도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이 음악을 통해 누군가 위로 받았으면 좋겠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평생 음악을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들과 음악에 대한 인사이트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었고, 나는 글 속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녹여내보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가치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즐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나는 또 다른 질문을 마주했다. 음악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그것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누구보다 음악을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화성학, 편곡 강의를 듣고, 피아노를 깊이 있게 배우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언젠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쉽고 깊이 있게 전할 수 있는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야기와 음악이 서로를 비추며 내는 시너지처럼, 나의 창작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