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의 긴 시간이 끝났다. 12월 3일 내란 사태 이후 수많은 국민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탄핵을 외쳤다. 학교에서도 수많은 학생이 시국선언에 동참했고,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이후 SNS를 통해 다른 학교에서,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 역시도 이번 겨울에 광장에 있었던 시민 중 한 명이었다. 꾸준히 집회에 나갔고, 나가지 않는 날에도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 연극에서는 많은 연극인들이 자신의 말을 작품에 녹여내는 모습을 보았다. 긴 겨울 동안의 집회가 끝나고, 마침내 윤석열이 파면되며 광장이 문을 닫았다. 광장은 닫혔지만 삶은 계속된다. 광장이 닫힌 후, 나는 이번 집회의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지난겨울 동안 느낀 감각을 어떻게 말로 정리할 수 있을까? 24년 겨울을 연극으로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던 참에 연뮤덕들에게 초대장이 하나 날아왔다. 그렇게 찾아간 페미니즘 연극제 리서치 쇼케이스 <여는 마당>에서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났다. 광장에 대해,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의 목소리를 담은 깃발과 피켓을 만들어 거리를 행진했다. 행진의 끝에는 극장에 다 함께 말하고,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극장이라는 공간을 마음껏 누볐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극장까지 왔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나누고 싶어 할까. 내가 느낀 질문들을 다른 사람들도 감각하고 있을까? 광장이 닫힌 이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난겨울 동안 광장은 수많은 사람이 모여 제각각의 목소리를 외치던 공간이었다. 내 눈길을 끌었던 부분 중 하나라면 바로 깃발이었다. 각 학교의 깃발과 정당 깃발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 깃발, 민주묘총과 같이 재미있는 유머의 깃발, 각자 좋아하는 장르의 깃발까지 다양한 깃발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깃발은 한 가족이 아이가 좋아하는 아동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깃발이었다. 집회에 갈 때마다 재치 있는 깃발을 구경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원래 깃발은 각자 소속 단체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즉, 개인보다는 집단과 관계가 깊은 물건이다. 물론 집회의 많은 깃발이 등장하게 된 계기에 여러 일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나, 내 눈에는 다양한 깃발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상징한다고도 느꼈다.
깃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유발언에서도 시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모습을 보았다. 퇴근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으니까 얼른 탄핵하라는 시민도 있었고,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상에 대해 알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광장에서는 모두가 그 말에 귀 기울여 주었다.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었다.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도 각자의 깃발, 그리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며 한국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탄핵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모인 개인들이 그 안에서도 각자의 모습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이번 광장의 상징 중 하나인 알록달록한 응원봉의 이미지처럼, 사람들이 개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말하고 있다는 감각을 받았다.
<여는 마당>의 시작,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모인 관객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공원에서 주고받은 말에는 각자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무엇을 감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각자의 목소리가 있었다. 자유롭게 발언하고, 말을 이어받아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관객도 있었다. 따로 직접 발언은 하지 않았던 관객들도 피켓과 깃발에 각자가 하고 싶은 말들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피켓과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함께 대학로 거리를 행진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공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이야기를 연극에서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연극은 동시대성이 강한 예술이다. 그리고 그런 연극 안에서도 민중의 가장 가까이에서 숨 쉬는 연극을 말해보자면 마당극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내란 사태를 겪으며 나는 마당극에 많은 관심이 갔다. 유명한 70년대의 <진동아굿>과 같이, 관객이 함께 능동적으로 공연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멋졌다. 이번 광장에서도 마당극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정으로 인해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한뜻으로 모일 수 있다는 데에 한편으로는 놀랐다.
마당극의 정신 중 하나는 비판의 정신이다. 민중의 시선에서 특정 시기의 정치/사회적 현상에 대해 성찰해 모순을 발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마당극은 시작된다. 70년대 초창기 마당극은 대부분 민중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그들이 공감할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80년대는 민중의 시선에서는 너무나도 선명한 부정의 시대였기에, 마당극은 선악이 분명하고 도식화의 경향까지 보였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연극에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는 모두가 마당극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공통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마당극은 민중과 함께 숨 쉬는 연극이다. 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마당극은 결국 민중과 함께 끝없이 발전해야 하는 예술이다. 마당극의 정의는 여전히 완결된 것이 아니다.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70, 80년대 마당극의 형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90년대에 들어서는 공통된 관심사도 약하고, 개인의 미래 지향점도 다른 관객 사이에서 집단의 체험을 얻어내기 위해 다양한 극적 기법이 시도되었다. 그렇다면 2025년 지금, 우리는 어떤 마당극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호흡할 수 있을까?
<여는 마당>의 최종 목적지였던 극장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는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한 번쯤 와 보았을 극장이다. 나 역시도 연극을 보러 이곳을 자주 찾았었다. 이곳에 초대받은 우리들은, 원래는 극장의 관객들이었다. 배우처럼 극장을 마음껏 활보하며 헤집어놓기보다는 조용히 객석에 앉아 공연을 지켜보고 각자의 생각과 감상을 가지고 돌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우리는 빈 극장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조명에 직접 서보기도 하고, 배우가 되어 발화해 보기도 했다.
배우가 된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내 목소리로 말해본다는 것이다. 나, 그리고 그곳에 모인 우리는 각각 다른 말들을 건네받고 발화해 보았다. 그 말과 낯을 가리면서도, 그 안에서 나를 찾아 이입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목소리를 찾아가다가 누군가와 함께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각자의 말을 반복하는 데 전념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작은 무리로 모이고, 어느새 다 함께 모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에 박수를 치기도 했으며, 이어받아 자기의 말을 하기도 했다. 마치 광장에서 자유발언을 하던 그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행사의 처음과 마지막에 우리가 외쳤던 “연극을 보는 관객은 혁명적일 수 있다”라는 구호를 떠올린다. 문장을 10번 반복해 말하며 재미있었던 점은 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반복하면 할수록 더 큰 목소리로, 더 큰 힘을 가지고 말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난겨울 광장에서 외쳤던 구호들도 생각해 본다. 그 구호 뒤에는 수많은 개인과 말이 있었다. 마음껏 말하는 사람과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하는 이가 듣는 이가 되고, 듣는 이가 말하는 이가 되며, 그렇게 수없이 중첩된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보고 느꼈다.
<여는 마당> 행사가 끝나고 극장에 남아 몇몇 관객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극장을 떠났다. 다시 삶을 살아가는 나로 돌아와서, 언젠가 또 극장에서 만나기를 기약하며 사람들과 헤어졌다.
광장을 이식해 놓은 작은 마당 극장에서, 나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의 수많은 목소리가 모이는 곳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광장 이후의 삶을 살아가 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김재석. (2002). 마당극 정신의 특질. 한국극예술연구, 16, 345-361.임진택 • 채희완, 한국의 민중극 연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