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참 많이 듣고 자랐다. ‘창의적인 아이’, ‘창의적인 생각’ 그것이 마치 모든 걸 해결해 줄 것만 같았고 꼭 가져야만 하는 특성 같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자라왔기에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만들어졌는지는 궁금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이름을 보고 문득 위화감이 드는 것이다. 나는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던 걸까? 나는 어째서 창의성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던 걸까? 창의적이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 비판하고 더욱 창의적이지 못한 나를 질책하고 있었던 걸까?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 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그 질문은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서론에서 이 책은 우리가 창의성을 믿게 된 과정, 즉 창의성을 거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하게 된 과정과 무엇보다도 창의성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폭발적으로 창의성이 사용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대까지를 다룬다.
이 책은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 확립한 심리학자, 경영학 전문가, 광고 회사 임원, 엔지니어 등 다양한 인물의 생각을 추적하여 설명한다.
창의성이라는 용어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모호함은 의미 있고 정교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일 수 있는 것처럼, 창의성은 정신적이면서 물질적이고, 유희적이면서 실용적이며, 예술적이면서 기술적이고,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것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상반되는 의미와 함축이 공존하는 특성은 전후 미국에서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를 그 어떤 정의나 이론보다도 잘 설명해 준다. 20p
상기 내용에 따르면 그 당시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역설적인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특히 “예술적이면서 기술적이고, 비범하면서 평범한 것”이라는 말은 누구도 소외하지 않고 인류 전체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시대는 끊임없이 이 모호하고 역설적인 창의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이어갔다.
1952년,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글
창의성의 핵심 동력은 (……) 인간의 자기실현 경향, 즉 자신의 잠재력을 구현하려는 경향으로 보인다.
실제로 창의성은 발명이나 혁신 이상의 낭만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조직화된 사회가 비합리적이고 예술적인 것, 요컨대 인간적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한 속성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129p
즉, 창의성의 핵심 동력은 인간의 자기실현 경향이며 조직화된 사회의 반작용으로 나타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사람이란 무엇인가?
배런은 창의적인 사람을 “평균적인 사람보다 더 원초적이면서도 더 세련되고, 더 파괴적이면서도 더 건설적이며, 더 미쳤으면서도 더 분별력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139p
창의적인 사람들은 과거 불안정하고 난해한 천재와 비교했을 때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을 사회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것은 포드주의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개인을 구하려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창의성이란 새롭고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인가?라고 묻는다면 토런스는 창의성이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답했다.
토런스는 “창의성은 문제, 결핍, 지식의 격차, 누락된 요소, 부조화 동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어려움을 파악하며, 결핍에 대한 가설을 세우거나 추측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가설을 테스트하고 재검토하며, 필요하다면 수정한 뒤 다시 테스트하고, 최종적으로 결과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194p
이 창의성과 창의적인 사람들이 결국은 사회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 속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분야는 광고업계였다.
“창의성은 광고인의 이미지를, 영혼을 파괴하는 소비사회의 악당에서 소비자 유토피아의 영웅으로 변화시켰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개성과 비판이 공존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면서, 반 소비주의적 비판마저 더 많은 소비로 전환시켰다.”
창의적인 사람은 예술가와 세일즈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비즈니스 세계 안에 있지만 그 안에 안주하지 않는 경계인이었다. 219p
창의성이라는 말은 욕망의 생산을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반하는 죄악에서 고결하고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게 추구해야 할 목표로 변모시킬 수 있었다. 240p
창의적 혁명은 또한 인문학적 성향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탈출”하지 않고도 의미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43p
창의성이라는 단어에 열광하게 된 주된 동기가 ‘관리’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독창적인 젊은 세대가 자신을 잃지 않고 혹은 탈출 하지 않고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만들어주는 단어가 바로 ‘창의성’이었던 것이다.
“비록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창의성 연구는 전후 시대의 새로운 탁월성 개념을 중심으로 인적자원을 분류하는 도구를 재설정하려는 심리학자들의 진지한 열망을 반영했다. 창의성은 천재성보다 더 민주적이고, 지능보다 더 영웅적이며, 단순한 창의적 발명이나 재능보다 더 기발하고, 단순한 상상력이나 예술성보다 더 유용한 무언가를 상징했다. 일상적인 것과 숭고한 것 사이를 오갈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 전문가들은 새로운 심리적 범주를 만들어내고 이를 더욱 현실화하는 기술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책을 다 읽은 뒤 나에게 창의성이란 현대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도구인 척 날 속여왔으며 동시에 이건 어떤 획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모두에게 천재라고 할 순 없으니 사회가 만들어낸 일종의 허상일 뿐이라는 것.
창의성이라는 건 높은 지능과 우연한 환경의 만남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걸 더욱 깨닫게 해주었다. 창의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관리직에서 더욱 열광했다는 점 또한 큰 충격이었다.
창의성은 시대가 바뀌는 과정 속에서 나온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단어였으며 창의성 단체에 대한 설명은 무서우리만치 신념을 띄고 있었다.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히게 된 과정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은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이 뒤집히는 기분. 그러나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다. 나에게 가해지던 늘 새로워야 하고 획기적이어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창의성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창의적 사고’를 장려하든 그렇지 않든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술은 탄생한다.
그러니 창의적이지 않다고 해서 비판할 것은 전혀 없음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