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규칙 속 의외성을 딛고, <페니키안 스킴>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atoz의 규칙들로 이루어진 삶을 살던 코다의 모든 것은 웨스 앤더슨의 세계다. 대칭과 규칙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간의 정가운데에 앉아 있는 모습은 그간 웨스 앤더슨이 그리던 세계와 비슷하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의외의 상황들과 블랙코미디의 기법 역시 웨스 앤더슨의 전작들과 닮아있다. 그는 <페니키안 스킴>에서도 체스판 위에 서서 가장 알 수 없는 곳으로 튀어 나가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610_153123510_01.jpg

 

 

<페니키안 스킴>은 ‘코다’의 ‘페니키안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여정을 보여준다. 장소를 계속 옮겨 다니지만 로드무비의 속성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인물들과 얼렁뚱땅 해결되는 사건들에 더 초점을 맞춘다. ‘코다’는 수많은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사고를 겪으며 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수련 수녀인 딸 ‘리즐’ 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리즐’은 ‘코다’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믿지 않고 막대한 재산 상속과 집을 모두 거부하려 하지만, 결국은 ‘코다’의 설득에 넘어간다.

 

적들의 사보타주로 인해서 금속핀의 가격이 폭등하자 ‘페니키안 프로젝트’에 훨씬 더 큰 자금이 필요해지고,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전재산이 필요하다는 ‘코다’의 계산하에 그는 ‘리즐’과 가정교사인 ‘비욘’을 데리고 동업자들을 찾아간다. 그들이 기존에 받기로 합의한 이익보다 더 적은 퍼센트를 받게 해서 갭을 메워야 하는 것이다.

 

신발 박스에서 꺼낸 각 투자자의 이름과 정보는 영화에 몇 번이나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는 협상에 실패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존재한다.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협상을 해나가고, 이동 중에는 비행기가 추락하고,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겪으며 퀘스트를 하나하나 깨나가는 ‘코다’와 ‘리즐’, ‘비욘’의 모습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면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그들은 어느새 농구를 하고 있고, 비행기는 추락해 있으며, 믿었던 사람은 사실 이중스파이였고, 소리를 질러대며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싸운다.


이 영화는 모순과 의외성으로 굴러간다. 청렴하고 금욕적인 삶을 유지해야 하는 ‘리즐’은 ‘코다’의 노예제에 대한 죄책감 없는 모습과 ‘약간의 임금을 주면 되지 않나?’라는 말에 기겁하면서도 그가 바꿔준 화려한 까르띠에 묵주를 손에 굴리고, 화려한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고, ‘비욘’과 함께 맥주를 마신다. 수녀원장은 화려한 묵주를 들고 있는 리즐을 수녀원에서 내보내면서도 지원금은 계속 받기를 원한다. 비욘은 곤충학자인 가정교사로 들어왔지만, 잡무를 떠맡으며 이 여정에 동행하고, 맥주를 마시고 먼저 취해버리고, 나중엔 리즐에게 고백까지 해버리더니 이중스파이였던 직책을 뒤로 하고, 코다와 리즐을 돕는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610_153123510_04.jpg

 

 

어마어마한 돈이 걸린 계약의 성사를 농구 게임으로 결정하고, 마지막 공이 들어가는지는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그저 협상에 실패했음으로 결과를 짐작하게 만든다. 매 순간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아.’라는 말을 하며 자신의 삶이 그간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고 위험했는지를 ‘리즐’에게 장황하게 알려주던 ‘코다’의 말은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불안과 모순, 의외성의 정점은 이 영화의 결말에서 드러난다. 사고 난 비행기에서 탈출하고,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총에 맞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코다’는 환상을 본다. 노예제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생각, 죽은 부인의 모습과 같은 죄책감 없이 저질렀던 일들을 하나하나 마주한다. 그리고 리즐과 함께 위협을 헤쳐 나가면서 딸을 가진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회복한다. 삶의 모든 부분을 ‘프로젝트 완수’에 초점 맞춰 살아온 ‘코다’에게 가족과 사랑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찍히지 않은 화면 속에서 철저하게 정제된 인물이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선택들을 거듭해 나가는 장면들은 서사에 의외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등장인물들은 웨스 앤더슨이기에 이해되지만, 아니었다면 왜 저러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할 쪽으로 선다. 농구, 거짓말 탐지기, 번쩍이는 묵주와 6촌에게 결혼반지를 내미는 얼굴, 재력가들이 체면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장면들은 대칭과 규칙으로 빛나는 화면에 여러 가지 각도를 부여한다. 드라마, 코미디, 첩보 스릴러, 라는 다중 장르에 맞게 <페니키안 스킴>은 ‘가장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의외의 선택’을 계속하며 예측 불가능성을 더한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610_153123510_02.jpg

 

 

결말에서의 ‘코다’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 재산, 자신의 삶 전체를 가족과 행복을 위해 뒤바꾼다. 전 재산을 털고, 작은 식당을 차렸고, 영업이 끝나면 ‘코다’와 ‘리즐’은 함께 포커를 친다. 싸움과 위협으로 가득했던 삶과는 정반대로 나아간 인생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은 전부 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착취하는 게 아니라 직접 노동을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코다’의 예상치 못한 얼굴은 ‘웨스 앤더슨’이기에 그럴 수도 있는 결말이 된다. 가족과 사랑이라는 변수는 감정이라는 형태로 인생에 끼어들어 정반대로 그를 끌고 나간다. 이러한 변수들은 완고하게 존재하던 삶의 태도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총알이나, 비행기 폭발보다도 더 강력하게 ‘코다’를 막아설 존재가 된 것은 ‘리즐’이다. 더 나빠지고 싶지 않은 마음, 서로의 편이 되어줄 때 느꼈던 ‘불안하지 않은 마음’들이 모여 인생이 뒤바뀐다.


<페니키안 스킴>은 대칭과 규칙 속에 쌓아 올린 사랑이라는 의외성이 모든 것을 무너트리는 영화이다. 좋은 쪽으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