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청 1층에 위치한 계양아트갤러리, 오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벽에 걸린 작품들을 신기하다는 듯 가까이에서 들여다봤다. 멀리서 보고 그림인 줄 알았다가 가까이 와서야 실 한 땀 한 땀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키코시 스튜디오가 개최한 터프팅 아트 전시, <빛과 실>의 풍경이다. 이번 전시에는 개최자인 몽지 작가를 포함해 31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전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터프팅 아트가 낯설거나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터프팅이란 촘촘하게 뭉친 '다발'을 의미하는 '터프트(Tuft)'에서 온 단어로, 터프팅 아트는 밑그림 위에다 터프팅건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실을 수놓는 방식의 공예다. 러그나 카페트가 가장 흔한 형태지만, 키링, 컵받침, 거울 등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실의 종류나 길이, 마무리 방법에 따라서도 표현법이 무궁무진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실을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색감도 표현 방식도 제각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빛과 실>의 큰 주제는 '색'이다. 우리가 색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빛 덕분이다. 물체가 빛을 반사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색을 띠는 것이기 때문이다. 색을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 '빛과 실'이 된 것도 그래서이다. 전시 현장에서는 각 작가들이 어떤 색을 좋아하고 평소에 어떤 색을 자주 사용하는지 직접 쓴 짤막한 글들이 작품과 함께했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실로 다양한 색을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 궁금했다. 수채화나 유화 같은 회화의 경우 기성품인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색을 어떻게 조합해 섞느냐에 따라 표현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실로 하는 작업은 실의 색이 이미 정해져 있고 물을 사용해 섞을 수도 없으니, 섬세한 표현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막상 전시를 보니 그런 생각은 터프팅 아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상상력 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선아 ⏐ 하얀 그림자 ⏐ 725x725mm ⏐ 아크릴사, 울사, 미니블럭 ⏐ 2024
시작은 무채색부터다. 검은색과 흰색이 주가 되는 여러 작품 중 이선아의 '하얀 그림자'는 한국의 전통 기와를 모티프로 해 반복되는 모양과 여기서 발생하는 리듬을 표현했다. 터프팅 아트는 실이라는 소재 특성상 대체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데, '하얀 그림자'를 포함해 무채색이 사용된 작품들은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로 기존의 터프팅 아트 하면 떠오르는 것과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무채색 작품이 늘어서 있던 곳에서 앞으로 나아가자 회화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명암 표현이 정교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터프팅 아트에서의 색은 실과 실을 겹쳐서 표현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 가닥 한 가닥의 실이 분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우리의 눈은 여러 가닥의 실들로부터 자연스레 명암과 빛의 변화를 읽어낸다. 몽지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니, 아예 실 두 가닥을 터프팅건에 한번에 걸어 작업을 하기도 하고, 원하는 색으로 실을 직접 물들인다고도 한다. 회화만큼이나 터프팅 아트로 표현할 수 있는 색도 다양한 셈이다.
김민서 ⏐ 빛의 결 ⏐ 650x740mm ⏐ 천에 실 ⏐ 2025
꽃과 풀, 나무 등 주로 자연물을 담은 작품에서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가운데, 눈에 들어온 작품 중 하나가 김민서의 <빛의 결>이다. 작가는 푸른색 실과 베이지 색의 조합으로 회화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자연광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벽에 아른거리는 빛과 화분 그림자가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몽지(최지인) ⏐ 태양의 눈 ⏐ 800x500mm ⏐ 천에 실 ⏐ 2025
그 옆에 있었던 몽지 작가의 <태양의 눈>도 눈에 띄었다. 작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떤 사물의 색이 정말로 그 색일까 의문을 품었다. 예를 들어, 노란색과 흰색의 조합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데이지는 정말 노란색과 흰색일 뿐일까? 작가는 데이지를 검은색 배경 위에 회색과 베이지색을 섞어 표현하며 질문을 던진다.
박현아 ⏐ 깨끗함 ⏐ 610x860mm ⏐ 천에 실(나일론) ⏐ 2022
그라데이션이 화려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단순한 색을 서로 뚜렷하게 대비시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작품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박현아의 '깨끗함'이다. 빨간색과 검정, 흰색과 같은 뚜렷한 색을 사용하되 빨간색 실만 길게 뺐다. 이렇게 하니 다른 요소는 모두 고정되어 있는데 빨간색 실에서만 움직임이 느껴진다. "신의 피가 흐른 자리, 죄는 사라지고 완전히 하얗게 되었다."는 설명을 읽고 나면 작품의 세부사항이 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보통 터브팅 아트라 하면 러그처럼 사각형 형태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작품일수록 추상화의 성격을 띠며 사각형의 틀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남궁아린 작가의 'White bloom'과 김체라 작가의 'Me'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내면의 성장과 자기 자신의 분위기 같은 주관적인 주제를 자유로운 형태로 표현했다. 한 작품 안에서도 실 마감을 다르게 하여 공간감과 입체감을 더하기도 했다.
고유(고은지) ⏐ Welcome to GOYU World(Gate 041) ⏐ 1100x1000mm ⏐ 천에 실, 레진⏐ 2024
터프팅 아트라고 해서 실만 사용하라는 법은 없다. 이번 전시에서 터프팅 아트에 다른 표현법을 접목한 작품들은 터프팅 아트의 범위를 한층 더 넓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려움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찰나를 표현한 고유 작가의 'Welcome to GOYU World(Gate 041)'는 터프팅 아트에 레진을 부착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최태리 작가의 '밀려오는 것'은 터프팅 아트로 파도를 만들어냈는데, 여기에 소라 껍질 같은 자연물 오브제를 부착해 부드러움 속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을 표현했다.
다양한 모습의 터프팅 아트 작품들을 둘러보며 이 모든 작품의 시작은 모두 실 한 가닥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실을 이용한 공예는 삶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비슷해 보이는 하루하루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듯이, 한땀한땀 반복의 과정을 거쳐야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몽지 작가는 "공예에 필요한 것은 손재주가 아니라 인내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에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어떤 반복을 하느냐에 따라 색도 형태도 달라지고 그 사람만의 고유함이 생겨난다. <빛과 실> 전시에 모인 작품들을 보니 작가마다 한두 작품만 있을 뿐인데도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한 작가의 개인전이 그 작가의 세계를 깊게 들여다볼 기회라면, 이번 전시처럼 단체전은 같은 매체로도 작가에 따라 얼마나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지 확인하는 자리다. 각자 어떤 반복의 시간을 지나왔을까. 눈으로 보이는 것 이면에 존재하는 그 반복의 시간을 떠올리며, 다음번에 있을 키코시 스튜디오의 전시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