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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멀리 있는 듯하지만 멀리 있지 않은 것


 

우리는 간혹 미디어에서 타의에 의해 살던 곳을 떠나온 사람들에 관한 소식을 접한다. 은연중에 그들의 사연이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전작 《스노우 헌터스》부터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룬 폴 윤의 신작 《벌집과 꿀》은 그 순간을 불러오는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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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에는 한국계 디아스포라들이 등장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단지 지리적으로 흩어진 삶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향에서 멀어진 마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을 떠나 살아가야 하는 감정을 포괄하기도 한다.

 

폴 윤은 일곱 편의 소설에서 이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히 디아스포라를 다룬 이유가 있을까. 이는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영향이 클 듯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 소설의 출발점이 6.25 전쟁 당시 피란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경험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탈북 여성인 ‘주연’이 나오는 〈코마로프〉, 탈북 이주 가정 2세대인 ‘해리’와 ‘그레이스’가 나오는 〈크로머〉를 다시 보게 된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놓인 배경 또한 말이다.

 

미국 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 러시아 사할린 등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모두 다른 시공간에 있지만, ‘뿌리 없음’의 정서를 공유한다. 출소 후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려는 이민 노동자,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 탈북 여성, 조선인 소년의 고국 송환을 돕는 사무라이, 러시아의 고려인 이주지에서 일하는 장교, 사할린섬의 교도소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아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남성 등.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떠나온 곳에서 잃어버린 삶의 한 조각을 찾아가는 여정에 서 있다.

 

 

 

무엇인가 사라졌다/잃었다는 느낌


 

첫 번째 단편 〈보선〉에서 ‘보’(=‘보선’)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수감된다. 일하던 무역 회사가 알고 보니 장물(훔친 물건)을 거래하는 회사였던 것이다. 장물을 옮기던 중 영문도 모른 채 붙잡힌 보는 경찰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다리 아래로 뛰어내리려다 잡힌다. 그리고 소설은 그 당시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보는 서른한 살이었다.

 

좋은 변호사를 고용할 여유는 없었고, 있었더라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창고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붙잡혔고, 빠르게 기소된 다음 형을 선고받았다.

 

_〈보선〉 14~15쪽

 

 

소설에서는 한국계 이민자인 보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하지만 두 문장은 당시 보가 노동 현장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한다. 보는 현장에서 붙잡히기 전까지 회사가 저지른 일에 대해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죄로 교도소에 수감될 수밖에 없었다.

 

보는 교도소에 입소한 뒤에 자신의 생활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보라는 사람 자체가 무덤덤한 사람인 걸까. 그는 마치 이 생활을 나름 잘 적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감정은 자신의 상황 혹은 처지에 대한 체념에 더 가깝다. 자신을 설득하고, 심연에 있는 감정을 들춰보지 않으며 유지하는 삶. 그것이 보가 선택한, 상처받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법처럼 보인다.

 

〈크로머〉에서도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탈북 이주민 2세대인 해리와 그레이스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가 당연했고, 자연스레 부부가 되었다. 서로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기던 그들은 양친을 떠나보내기 시작한 이후로 삶의 권태를 느낀다. 둘의 하루는 기계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해리는 자신의 “내면에 붙들려 있던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빠져나가 사라져 버렸다”라고 느끼기도 한다.

 

다른 단편들 또한 삶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벌집과 꿀〉에 실린 단편들의 목소리는 전반적으로 건조하다. 문단과 문단 사이의 공백에서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고운 입자의 모래사막 위를 걷는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 움큼 쥐어 올리면 손가락 사이로 곧장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속 어디가 비어 있는지 모른 채 방황하거나 눈앞의 현실에 그저 순응하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듯하다.

 

 

 

그럼에도 앞으로 걸어나가는 사람들


 

 

그는 갑자기 자신이 아주 먼 길을 왔으며 무언가 굉장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는 걸, 오늘 밤이나 내일은 아닐지 몰라도 머지 않아 일어나리라는 걸 느꼈다.

 

_〈보선〉 53쪽

 

 

그러나 폴 윤의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기 삶에 순응하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미약할지라도 삶에 가지는 기대를 놓지 않는다. 다음 목적지를 조금씩 탐색하며 나아간다.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낙관할 지점을 발견한다. 사막 속에서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다.

 

인물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 가만히 서 있기보다는 어디론가로 떠난다. 교도소에서 나와 새로운 마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오랫동안 일하던 동네를 떠나 아들을 만나러 간다. 오랜 시간 함께한 아이와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고, 오래전 신혼여행지였던 곳으로 떠난다.

 

그렇게 떠나온 낯선 곳에서 작은 인연을 맺기도 한다. 〈고려인〉에서 교도관인 아버지를 찾아 떠난 소년이 만난 낯선 이들은 그에게 쉽게 호의를 건넨다. 〈보선〉에서의 보 또한 교도소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곳에 정착하게 되며, 거기서 그에게 아무 보답을 바라지 않고 음식을 건네는 사람을 만나 인연을 쌓는다. 〈벌집과 꿀〉의 장교는 엄마를 잃은 아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의 곁을 지켜주며, 〈역참에서〉의 사무라이는 오랫동안 봐온 조선인 아이에게 정을 줘버린다. 이렇듯 타인과의 미지근한 연결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고단한 삶을 계속 이어 나갈 의지를 회복한다.

 

 

그 연극은 더 이상 목수가 아니게 된 목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도 오랫동안 오직 집 짓는 일만 하고 살아온 나머지, 그 일이 더 이상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되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지요. 온갖 곳으로 여행을 하며 자신에게 또 다른 삶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저 계속 떠나고 또 떠납니다. 연극은 그렇게 끝납니다. 그 사람이 떠나는 장면으로요.

 

_〈역참에서〉 127~128쪽

 

 

《벌집과 꿀》을 읽는 일은, 오랜 시간 어디에도 마음을 정착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무너진 집터 위에 다시 벽돌을 쌓으며 천천히 삶을 재건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다. 독자의 자리에서 그 벽돌을 쌓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 모든 걸 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지금 자신의 삶이 어딘가에 뿌리내리듯 단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된다. 어디로든 성큼 떠날 수 있는 용기와 떠나온 길에서 함께 걸어갈 수도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 조용한 희망을 품기 위해 올 여름, 이 책을 펼쳐봐도 좋을 것이다.

 

 

*참고 자료

황지윤, 「‘광장’의 희망 편이란 평가, 마음에 들어요」, 조선일보, 2024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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