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의미심장한 날에 영화 〈그을린 사랑〉 4K 리마스터링이 재개봉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이 원작이며 종교 대립에서 촉발한 레바논 내전을 다룬다.
수년 전에 대학 동기의 강력한 추천으로 호기심에 보았던 이 영화는 ‘충격 반전 영화’라는 명성에 걸맞게 당시의 내게도 경악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본 영화의 감상은 이전과 다소 다르다.
〈그을린 사랑〉 포스터
영화 포스터의 붉은 배경 전반을 차지하는 얼굴의 주인공 ‘나왈 마르완’은 쌍둥이 남매 ‘잔느 마르완’과 ‘시몽 마르완’에게 기이한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유언의 내용인즉슨, 죽은 줄로만 알던 아버지와 생전 알지도 못한 형제를 찾아 어머니가 마련한 편지를 전해 주어야만 정석적인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남매간에 작은 대립이 일었지만 잔느는 이내 어머니의 뜻에 따라 프랑스 퀘벡에서 중동으로 떠난다. 휘몰아친 나왈의 인생의 여정을 향해서.
아이의 머리를 어떤 남자가 무자비하게 깎아대는 장면에서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가 흐른다. 익스트림 클로즈업되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의 눈빛은 형언할 수 없다.
〈그을린 사랑〉 스틸 컷
오프닝 시퀀스부터 드러내는 반전의 서막은 잔인하며 직설적이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 될 그 아이의 비극은 기독교도인 나왈이 무슬림 난민 ‘와합’과 사랑에 빠진 것에서 시작한다. 가문의 수치로 태어나자마자 발뒤꿈치에 3개의 점이 새겨진 채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나왈이 대학을 다니는 와중에 기독교 마을이 공격을 당해, 잊지 못한 아이를 찾으러 다시 고향 레바논 남부의 고아원으로 향한다. 이슬람의 테러단체가 휩쓸고 간 지역은 처참했고 아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나왈이 ‘십자가 목걸이’를 숨긴 채 무슬림의 피난 버스에 동승한다. 그러나 곧바로 등장한 기독교 민병대의 총기 난사로 인해 탐승객이 전멸할 위기에 처한다. 나왈은 숨겨둔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기독교도임을 증명하고 버스에서 빠져나온다.
여기서 다시 포스터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버스에는 피난민 중 어머니와 딸이 있었다. 나왈은 부러웠을 것이고 잠시나마 평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장면이 더 처절했다. 나왈이 자신의 딸인 척 함께 도망치려 했던 그 여자아이는 무슬림의 자녀라는 이유로 사살되었다.
나왈의 옆모습 뒤로 버스가 불에 활활 타올랐다.
학살을 겪은 이후 그 어디에서도 아들을 찾지 못한 나왈은 이슬람 테러 단체에 합류하고, 기독교 민병대의 지도자를 암살하며, 감옥에서 십수 년 간 고문을 당한 순간까지 한치도 망설임 없었고 악에 받쳐있었다. ‘3개의 점’은 말 그대로 운명에 휘말린 그가 말년에 수영장에서 여가를 즐기던 어느 날에 난데없이 한 남자의 뒤꿈치에서 발견한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에는 나왈의 아들이자 남편, 즉 ‘니하드’이자 ‘아부 타렉’의 정체에 놀란 순간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이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는 한 인간의 역사로만 설명할 수 없다. 배타적인 종교적 관점, 민족주의, 종교를 내건 정착 전략, 역사의 곡해 등 현실 사회에서도 벌어지는 거시적인 사건으로 인해 기막힌 우연이 중첩되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다.
어머니 나왈은 그럼에도 모든 것을 수용하고 용서했다.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며. 함께 영화를 감상한 친구와 과연 우리는 그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 물음을 주고받았다. 진실을 알게 되면 조금 너그러워질까. 아직도 그 질문에 머물러있다. 진정 사랑으로 ‘분노의 흐름을 끊어’낼 수 있을까?
〈그을린 사랑〉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