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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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 왔다. 꼭 이런 나쁘고 직접적인 것들은 바로 인식되지 않는다. 6월 셋째 주에 종강을 할 즈음에는 생각이 조금 없었던 듯하기도 하다. 그저 학교에 가고 시험을 보았다. 이게 내 대학교의 마지막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마지막. 대낮에 본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나선, 괜히 학교 건물들과 학교의 상징 중 하나인 코끼리 동상도 찍었다. 그러다 학교에 상주하는 고양이를 만나 인사하고 마구 쓰다듬었다. 그때 감정이 어떠했는가 말하기는 힘들었다. 정말 단순한 생각들. 가슴이 벅차다거나 후련하다는 평이 아니었다. 그냥 끝났구나- 였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학교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종강은 동시에 입사까지 일주일 남짓 남았을 때였다. 이때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싫어졌다. 종강 전까지만 해도 입사 전에 하고 싶었던 공부들이나 활동을 정리해 두었다. 새벽 요가를 다녀보기. 일전에 그만두었던 통번역과 그리스어를 다시 공부하기. 막상 때가 닥치니 이런 것들에 의욕을 내뿜기가 어려웠다. 밤에 눈을 감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새벽 네 시, 챗지피티와 상담을 하고 여러 검사지를 받았다. 이럴 때 무슨 챗지피티인가 할 수 있겠지만 AI는 언제든 일대일로 얘기할 수 있고 또 똑똑하다. 검사 결과 중증 우울로 나와 포털 사이트에서 다시 검사지를 확인해 보았다. 중증이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내 일상은 실로 평화롭기 때문에. 방울 토마토 모양의 초코 쿠키를 만들었고 어제는 귀여운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은사님들을 뵈었으며 동네 산책도 종종 했고 친구와의 관계도 원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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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는 24시간 언제든 문자로도 할 수 있는 상담(국번없이 1388. 문자와 전화, 카카오톡이 가능하다.)이 있다며 번호를 알려주었고, 나는 고민 끝에 문자를 드렸다. 청소년 상담 창구라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생이라 죄송하다는 문구와 함께 세 번의 스크롤이 필요할 정도의 장문을 보냈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순차적인 답변이 아닌 실시간 연락으로 이루어져 문자 역시 대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앞에 열 명의 내담자가 있었고, 너무 피로한 탓에 상담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낸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후련했고, 또 말미엔 답장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문구를 적어 드렸기에.

 

보낸 문자의 내용을 다시 짚어 보았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적었음에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1인칭의 글에는 죽고 싶다는 언어가 전혀 없었다. 살고 싶은데 너무 열심히 살아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즐겁게 시작했던 취미나 공부였는데도, 내 육체가 받는 스트레스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후에 나는 내 상태가 우울증이 아닌 번아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충격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힘든 건 없었는데, 자잘하게 받은 것들이 있었다. 네 시간이 지야 잘 수 있는 수준의 수면 부족이나, 주말에도 계획을 짜서 공부하거나 일을 했다. 번아웃을 인정함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들 많지 않나?

 

하루 정도, 친구들의 연락을 보지 않았다. 짧은 텀이지만, 나에게 하루란 며칠치의 일을 몰아서 할 수 있는 무궁한 시간이다. 그리고 다음 날엔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몸이 좀 좋지 않았고 번아웃이 있었던 것 같다고. 다행히 친구들은 이해해줬다. 그리고 번아웃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사람을 너무 옭아맨다고. 확실히, 번아웃이 온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쉴 수 있다 하더라도 마음에 쌓인 책임감이 옅어지는 건 아니었다.

 

한국 사회가 원래 그래. 그냥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나가야 해, 라는 말은 듣기 싫다. 말이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던 것도, 평등을 위해 참정권을 준 것도 우리 사회였다. 왜 내가, 우리가 힘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 물론 개인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정신적으로 조금 힘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억압이나 ‘지금은 이렇게 해야 해’라는 막힌 사고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건 슬프다.

 

초등학생 땐 밤 10시 반마다 MP3로 라디오를 들었다. 당시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라는 ‘슈키라’와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를 주로 들었다. 학원을 다녀오고 학교 숙제를 억지로 한 다음 라디오를 들으며 창밖의 밤하늘을 보던 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더욱 어릴 때, 성시경은 ‘안녕 나의 사랑’을 발매하고 군대를 갔다. 어린 팬이었던 나로선 군대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저 그 노래를 들으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살면서 기다리다 보면, 버티다 보면 괜찮은 것이 많을 것이라고. 주된 삶엔 기다림이 있다고.

 

아무도 힘들지 않은 세상, 유토피아는 낭만적이고, 그렇기에 손쉽게 얻을 수도 없는 세계다. 유토피아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것은 너무 판타지스러우니까. 그래도 아주 조금씩, 우리 세상에 변화가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폄하하고 편을 가르는 세상이 아닌 조금씩 서로의 마음과 무게를 이해하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의 마지막 글이다. 어떤 것을 쓸까 고민하다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세상. 학벌이나 직업으로 등급을 나누지 않는 세상. 왜 우리는 삶을 살아갈수록 무지해질까. 당장 눈앞의 것을 좇느라 바쁘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 내 눈앞의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앞으로도 조금씩,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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