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은 문화콘텐츠 전문 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츠와 공동으로 5월 16일부터 8월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를 개최한다. 서양미술사의 거장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경주, 부산, 제주를 거치며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기록하였고 서울에서 그 마지막을 선보인다.
늘 그렇듯 우리는 유명한 화가의 이름에는 홀린 듯 이끌려지기 마려진다. 모네와 앤디워홀의 이름은 나를 아주 쉽게 이 전시로 이끌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ohannesburg Art Gallery, JAG)의 주요 소장품 143점을 선보이는 이 대규모 기획전으로. 덕분에 나는 이 전시회를 통해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전시회의 규모는 꽤 컸고 400년에 걸친 서양미술사를 사조별로 9개 섹션의 구성으로 보여주었으며 노루페인트도 빠지지 않고 각 섹션을 밀도 있게 그리고 감각 있는 색으로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의 이번 전시는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에게 미술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으며 5월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함께하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는 말처럼 그의 의도가 잘 전달되는 구조와 콘텐츠들로 가득한 전시였다.
먼저 이 전시가 가진 의의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를 만든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은 예술이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1910년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이것은 오늘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큰 공공 근현대 미술 컬렉션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컬렉션’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첫 번째 섹션으로 필립스 부부의 초상화를 훑고 나면 네덜란드의 회화의 황금기를 보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가장 부유한 국가였으며 그에 맞춰 네덜란드 화가들은 부르주아 주택을 꾸미는 것을 목표로 삼아 풍경, 초상, 정물, 동물이 있는 그림, 일상생활의 에피소드 등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그렸다고 한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한마디로 소박한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례대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부터 인상주의의 전후 그림들, 20세기 초반의 혼란을 지나 컨템포러리 아트가 되는 과정, 그리고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현장으로 도착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인상주의 이전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 인상주의 이후” 이렇게 인상주의를 기준으로 전과 후의 변화를 보여준 점이었다.
낭만주의는 19세기 후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탄생하였는데 이는 고전주의의 규범과 규칙을 거부하며 예술가들이 자신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의 시작이었다. 그로 인해 단순한 배경이었던 풍경화가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발전되었고 이는 귀스타브 쿠르베의 에트르타 백약 절벽(1869)를 통해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인상 주의자들은 불변하는 대상이 아닌 짧은 순간에 화가가 처음으로 지각한 사물을 캔버스 안에 붙잡아 넣고, 빛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고 변화하는 흔적을 그리고자 했다.”
특히 에드가 드가는 움직이는 무희들을 즐겨 그렸는데 드가는 발레리나의 날씬한 몸의 움직임과 왜곡을 관찰하고 해부학적 구조를 묘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시선은 호기심 많고 무자비하며, 아름다움이 엄격하게 보증하는 만큼만 허용하고 오히려 제스처의 즉각성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이 그림도 보다시피 왼쪽 발레리나의 일부를 시야에서 제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상주의 이후 몇몇 혁명적인 예술가들은 팔레트의 색상을 혼합하지 않고 순수한 색상의 점들을 사용하는 점묘법을 탄생시켰다.
조르주 쇠라가 창시한 이 운동은 폴 시냑에 의해 완성되었다.
폴 시냑, 라로셀, 1912
내게 이 구간은 어딘가 비슷해 보여 헷갈렸던 인상주의와 다른 사조들을 구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부분이었다.
그렇게 20세기를 넘어 마지막 구간에서는 다양한 흑인 예술가들의 그림으로 마무리 되었다.
내 시선을 끌었던 건 알렉시스 프렐러의 여사제들 (1957).

1950년대에 그려졌다고 믿기 힘든 비현실적이며 미래적인 특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이국적인 무늬의 사용과 인간 형태의 재구성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그리고 윌리엄 켄트리지의 물에 잠긴 소호(1999).
남아공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1955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인권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담하고 창백한 붓 터치와 색감이 어딘가 모르게 눈길이 가는 그림이었다.
모네와 앤디워홀이라는 이름에 홀려 들어간 전시였지만 오히려 그들보단 숨겨져있던 보석 같은 예술가와 작품들을 알게 된 전시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변화를 담고 싶었던 클로드 모네의 말을 마지막으로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지나가는 시간을 잡고 싶은 미숙한 감정을 뒤로하며 바뀌어 버린 나와 바뀌어 버린 주변을 그저 인정하면서 또 나아가기를. 끊임없이 변했던 미술사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