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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개인전 《리미널(Liminal)》을 2월 27일(목)부터 7월 6일(일)까지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인 《리미널》(2024–진행), 《카마타》(2024–진행), 《이디엄》(2024–진행)을 비롯해 대표작 《휴먼 마스크》(2014), 《오프스프링》(2018), 수족관 시리즈, 인간과 기계의 협업으로 생성되는 《U 움벨트–안리》(2016–진행), 《암세포 변환기》 등 총 12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들 작품은 현실과 허구,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존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전환한다.

 

전시 제목 ‘리미널(Liminal)’은 작가에게 있어 “예상치 못한 어떤 것이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 《리미널》 전시는 불가능하거나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생태적 환경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이끈다.

 

위그는 전시를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으로 다룬다. 관람객은 전시를 통해 낯선 시각적·감각적 현실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타자화하며, 인식의 확장과 새로운 현실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등장하는 개체들은 센서를 통해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이를 해석하며, 관람객의 개입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진화한다. 이러한 기술, 설치물 등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자율적인 객체로 간주된다. 나아가, 비인간 존재들은 허구 또는 실재들과 상호작용하며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전시 환경을 형성한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1962년 프랑스 파리 출생)는 현재 칠레 산티아고에 거주하며 활동한다. 그는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고등예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서 수학했다.

 

초기에는 영상 작업을 중심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실제 마을에서 가상의 축제를 펼친 《스트림사이드의 날》(2003)은 실시간 상황을 구성하며 현실을 예술로 전환하는 그의 작업 방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후 우연적인 현실이 작품의 본질이 되는 <경작하지 않은>(2012)은 작업 세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변종들》(Variants, 2022)에서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을 회피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프로그래밍 기반의 방식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

 

위그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작업을 ‘사변적 허구(speculative fiction)’로 간주한다. 그의 작품은 인공적 주관성이 존재하는 세계를 다층적으로 탐구하며, 전시는 그에게 있어 시간과 공간이 본질을 구성하는 섬세한 환경과 마주하는 하나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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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작품 <리미널>은 블랙박스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업으로, 본격적인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피에르 위그에게 ‘리미널(Liminal)’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하며, 작품 <리미널>은 공허를 따라 이동하는 비워진 인간 형태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피에르 위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이 들뢰즈의 ‘가능성의 평면’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가능성의 평면’은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현실화될 수 있는 잠재적 존재들이 머무는 차원을 뜻한다. 위그는 이 과도기적 상태를 작품에서 비워진 인간 형태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경계 짓는다.

 

작품 속 비워진 인간 형태는 세계, 뇌, 얼굴이 없다. 세계와의 연결, 사고 능력, 개별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상실한 상태로 은유한다. 위그는 이 과도기적 상태를 통해 잠재성과 현실이 단순한 선형적 관계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은 다양한 방면으로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임을 시사한다. 작품은 이와 같은 들뢰즈의 ‘가능성의 평면’의 개방성과 맞닿아 있다.


<리미널>에서는 자율적 개체들이 센서를 통해 주변의 빛과 소리 같은 실재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계적 환경(liminal milieu) 속에서 인간 형태의 몸짓을 생성한다. 이 몸짓은 언어처럼 기능하며, 인공지능이나 생물학적 반응 시스템과 같은 비인간 존재에게 해석되고, 이는 다시 인간 형태의 반응을 유도하며 상호작용을 지속시킨다.

 

이를 통해 위그의 설치물과 센서를 단순한 디지털 장치로 보지 않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이들을 자율적 객체로 간주하며, 기술 기기를 넘어 독립적 존재로서의 비인간적 행위자이자 의미 생성에 관여하는 ‘디지털 아파라투스’로 이해한다. 이러한 시각은 세계를 인간 중심으로만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를 동등한 객체로 보는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으로 확장된다.


<리미널>은 인간의 의도나 통제를 넘어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비인간 존재들이 실재적이고 허구적인 자극을 감지하고 학습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을 축적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인간 중심의 체계를 초월하고,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세계를 구성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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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마스크>는 피에르 위그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마스크'라는 상징이 전면에 부각된 작품이다. 작가에게 마스크는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장치다. 위그는 낯선 타자에게 인간의 얼굴을 씌우는 행위를 통해 안심을 느끼며, 미지의 존재를 마주할 때도 마스크를 씌움으로 안도감을 느끼고자 하는 심리를 드러낸다. 그는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 인간의 이미지를 덧입힘으로써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담론과 믿음의 체계를 만드는 것으로 본다.


이처럼 타자에게 자신의 인식으로 만든 표상을 덧씌우는 방식은 ‘오리엔탈리즘’을 연상시킨다. 오리엔탈리즘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유럽인들이 동양에 대해 품은 동경과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표상이다. 이 표상은 진실처럼 받아들여졌고, 대중 매체를 통해 반복 재생산되며 일종의 보편적인 이미지로 굳어졌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1970년대에 오리엔탈리즘을 ‘서구인의 권력에 기반한 동양에 대한 담론적 구성체’로 규정하였다.

 

1980년대 이후 탈식민주의 이론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조를 해체하는 개념으로 ‘혼존성(Hybridity)’이 제기된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가 결합하여 제3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 확장하는 과정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백인 남성 중심의 이원론적 인식 또한 인종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대중문화 속 미래 시공간에서 재현된 아시아는 여전히 서구 근대 휴머니즘이 설정한 가치들과 충돌하는 방식으로 표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데이비드 몰리와 케빈 로빈스는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이라 명명하였다. 이는 아시아, 일본의 기술력 성장에 대한 서구의 선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에서 비롯된 문화 전략이며 본질적으로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를 통제하고자 하는 서구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후쿠시마 주변 핵 배제 구역을 배경으로 인간의 마스크를 쓴 원숭이는 인간 종업원처럼 행동한다. 이는 원숭이를 인간의 은유로 제시하는 동시에, 일본의 서구 모방과 근대화 과정과 맞닿는 미장센을 통해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이 구축한 ‘일본인이 모방하는 서구’라는 은유와 겹쳐지며 전개된다.

 

이 원숭이는 학습된 행동을 반복하거나 때때로 멈춰 서는 행동들을 하면서 지시된 동작과 본능 사이를 오간다. 위그는 이러한 모호한 행위를 통해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경계가 결코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표현한다. 이는 도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 개념을 환기하며, 동물성과 인종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전용하고 전복하는 방식으로, 백인 남성 중심의 시각에 질문을 던진다.

 

결국, 가면을 쓴 존재의 눈동자가 관람자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서구-백인-이성-신사’라는 ‘겸손한 목격자’의 시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위그는 이 작품을 통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전복하며, 인류 종말 앞에서 기존 경계적 시선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확장한다.


이번 개인전 《리미널》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동명의 작품 <리미널>뿐만 아니라 다수의 작품들에서 선형성이나 완전성 보다는 혼돈과 비완결성에서 비롯된 강렬한 미적 체험, 곧 ‘숭고’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예술의 경험은 때로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흐름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생명력으로 느껴졌다.

 

전시는 작가가 의도한 비선형적 구조에서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유동적인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이 흐름은 고정된 결과로 완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그 과정 자체로의 창조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시 전반에 흐르는 비선형적 리듬은 세계를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 과정으로 보는 니체의 존재론적 사유를 은유한 작가의 철학이 엿보였다.

 

피에르 위그의 작업은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허구,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을 삶의 본질로 재현한다. 비선형적 예술 감각은 때로 불안과 긴장을 동반하지만, 그 속에서 존재의 역동성과 끊임없는 창조의 힘을 드러낸다. 이러한 예술 창조의 감각은 무질서하고 선형적이지 않은 삶 또한 그 자체로서 끊임없는 창조의 과정임을 감각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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