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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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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카키 스카우트의 문제아 샘과 외톨이 소녀 수지는 1년 전 교회의 연극을 통해 만난 뒤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샘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별종 취급을 받는 수지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상처를 보듬어주는 소울메이트가 된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둘만의 세상을 위한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둘은 각자의 준비물을 챙겨 들판에서 만난다. 샘과 수지의 실종으로 펜잔스 섬은 발칵 뒤집히고,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과 수지의 부모님은 둘을 찾아나선다. 샘과 수지를 발견한 스카우트 대원들은 샘을 공격하려다 수지에게 부상을 입고 후퇴한다. 다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샘과 수지는 외딴 해변에 텐트를 짓고 사랑을 확인하지만, 다음날 아침 어른들에게 그대로 발각되고 만다. 샘은 경찰 샤프에게, 수지는 집으로 보내지면서 흩어질 뻔한 둘은 스카우트 대원들이 돕기로 나서면서 가까스로 재회한다. 사촌 벤의 도움으로 샘과 수지는 결혼식까지 마치지만, 샘과 니클비의 다툼으로 다시 쫓기는 몸이 된다. 큰 홍수가 마을을 덮치면서 샘과 수지 일행을 비롯해 그들을 쫓는 스카우트 대원들과 어른들까지 모두 교회에 모인다. 샘이 사회복지사에게 넘겨질 위기에 처하자 샘과 수지는 교회의 지붕 위로 올라가 몸을 던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샘을 입양하기로 결심한 샤프가 샘을 붙잡으면서 사태가 일단락된다.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샘과 수지는 수지의 집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대표작과 마찬가지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분위기가 눈에 띈다. 엉뚱하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아이들의 사랑을 앤더슨만의 탁월한 미감을 통해 담아냈다. 한편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잔혹한 현실이 교차되며 이야기의 볼륨감까지 나름 성공적으로 확보되었다.

 

 


움직이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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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의 이야기와 장면들은 주인공 수지의 동화책과 닮아있다. 몽환적이고 빈티지한 색감과 상하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컷들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철저한 구도와 비율을 통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명화들, 가령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연상시키도 한다. 이 영화의 가장 멋진 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런 시각적 아름다움이다. 샘과 수지의 천진난만하면서도 낭만적인 내면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장면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홀린 듯 빠져들게 된다. 뭐든지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감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때묻은 어른인 나조차도 두 손을 들게 만드는 매력이 이 영화 속에는 있다.

 

 


아이들의 사랑은 무엇이 다른가


 

훌륭한 형식미에도 불구하고, <문라이즈 킹덤>의 서사적 아름다움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그림책의 삽화를 연상시키는 영상미와 마찬가지로 샘과 수지가 어른들의 세계를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는 동화의 순수함을 닮아있다. 그리고 둘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성장하며 용감하게 나아간 끝에 꿈에 그리던 자유를 쟁취하는 결말은 모두에게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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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과 수지는 모두 '문제아'다. 유별난 성격으로 인해 샘은 카키 스카우트에서, 수지는 학교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서로의 아픔을 알아본 듯 첫눈에 이끌린 둘은 어른들 몰래 편지를 주고받다 1년만에 재회한다. 그러나 둘은 닮은 만큼이나 달랐다. 샘은 부모를 잃고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고아인 반면, 수지는 변호사 부모님을 둔 유복한 가정의 자녀다. 이러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문제아 키우기>라는 책이 냉장고 위에 있는 걸 봤다는 수지의 이야기에 샘은 웃음을 터뜨리고, 수지는 고아가 이야기 속의 주인공 같아서 멋지다는 망언을 내뱉는다. 이 유명한 짤의 출처이기도 한 장면이다. 하지만 샘은 텐트 안에서 토라진 수지에게 다가가 사과함으로써, 수지는 '나도 사랑해'라는 엉뚱하지만 로맨틱한 대답으로써 이 간극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둘만의 하룻밤(...)을 보낸 샘과 수지는 그야말로 일심동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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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라는 공증인의 말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대답하고, 교회 지붕에서 나란히 몸을 던지는 둘의 모습은 흐뭇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도를 통해 세상을 보고, 쌍안경을 통해 마법을 보는 수지는 상극이자 환상의 궁합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향연> 속 본디 하나였지만, 둘로 쪼개졌기에 서로에게 없는 것을 나눠 갖게 된 인류의 조상처럼...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것. 현실의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이 아이들에게는 참 간단해보인다. <문라이즈 킹덤>에 등장하는 또다른 사랑은 수지의 어머니 로라와 샘을 입양한 경찰 샤프의 불륜이다. 두 커플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 그리고 '금지된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교차된다. 하지만 샘과 수지의 행복한 결말과는 달리 로라와 샤프의 미래는 묘연하다.

 

두 사랑의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기원하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세상이란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어른들에게 세상이란 지키는 것이다. 샘과 수지의 세상은 아직 미숙하기에 금세 담을 무너뜨리고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로라와 샤프에게는 각자의 단단한 현실이 있었다. 기존의 세상으로부터 탈출함으로써 새로운 세상, '문라이즈 킹덤'을 쌓아올린 샘과 수지와는 달리 로라와 샤프는 세상의 눈을 피해 숨어버리기를 택한 것이다.

 

 


사랑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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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과 수지의 사랑은 항상 '예술'이 둘러싸고 있다. 교회의 연극에서 비롯된 첫만남, 샘이 수지에게 보내는 그림들, 수지가 좋아하는 동화,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오케스트라... 사랑과 예술은 확실히 통하는 데가 있다. 둘은 모두 '아름다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며, 사랑은 모든 예술의 단골 소재이다. <문라이즈 킹덤>이 영화라는 예술 형식을 통해 샘과 수지의 여정을 그려내듯이 수지가 낭독하는 동화는 샘과 수지가 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노아의 홍수> 연극은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를 암시하며, 오케스트라와 변주곡은 샘과 수지의 만남과 결합을 상징한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이 간직한 아름다움과 함께 샘과 수지의 사랑 또한 다채롭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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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랑과 예술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 속해있다. 현실과 공상이 뒤섞이고 만나는 지점이 예술이라면,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현실뿐이다. 공상 속의 사랑은 그저 공상에 불과하다. 또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통해 풍부하게 거듭나는 예술과 달리, 사랑은 상대에 대한 진실한 앎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오해와 착각이 쌓이며 현실과 인식의 간극이 커질수록 관계는 무너진다. 샘과 수지가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엇갈릴 틈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껴안았기 때문이다. 앞선 논의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먼 발치서 서로를 간볼 수밖에 없는 어른들의 사랑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샘과 수지의 사랑은 예술보다 아름답고, 현실보다 생생하다.

 

 


동화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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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이 지닌 동화적 면모는 필연적으로 동화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과 연결된다.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클라이막스다. 폭우 속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쫓기던 샘은 언덕에서 번개를 맞고도 살아난다. 워드는 폭발 현장으로 몸을 던져 피어스 사령관을 아슬아슬하게 구출해낸다. 홍수가 마을을 휩쓰는 가운데 샘과 수지는 교회의 지붕에서 몸을 던진다. 이 장면들의 공통점은 다소 비현실적이고 과장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샘을 적대시하던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이 갑자기 샘과 수지를 돕기로 마음먹고 샘을 끌고 가려던 사회복지사도 샤프의 지시를 따르게 되면서 결국 진정한 악역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특히 수지에게 칼에 찔려 부상까지 입은 니클비가 도움에 앞장서게 된 변화가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화를 읽으며 논리와 개연성을 따지는 사람은 없듯이 이 영화의 비현실성 또한 장르적 특성으로 눈감게 만드는 힘이 있다.

 

 

 

총평


 

리뷰할 만한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본연의 목적을 망각할 정도로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이 비평으로 모든 가치를 담아내기엔 무척 까다로운 작품 같다. 다소 클리셰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구연 동화를 감상하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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