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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사연으로 돌아왔다. 작품은 2019년 초연 이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녀신인상과 작품상, 안무상을 수상하고 예그린뮤지컬어워즈에서 앙상블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매 시즌마다 발전을 거듭하며 2020년대 한국 창작 뮤지컬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공연을 보기에 앞서, 알아두면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더 즐길 수 있는 작품의 배경과 설정 이야기를 소개한다.


 

 

시조로 통하는 나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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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뮤직비디오 현장 사진 

제공: PL 엔터테인먼트

 

 

무대 위 인물들의 저고리와 두루마기, 갓과 쪽머리 등 익숙한 의상에서 조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아는 조선과는 조금 다르다. 시조가 국가이념인, ‘시조의 나라 조선’이기 때문. 이 나라에서 시조는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또 다른 언어다. 사람들은 들리는 모든 것을 운율 삼았다. 삶의 애환도, 세상에 대한 불만과 기대도 시조에 담아 불렀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조만 떠올리면 낯설 수 있지만, 원래 우리 역사에서 시조가 일종의 유행가로 통하기도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조의 나라 조선’은 꽤 설득력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언제나 예술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시대를 막론하고 그것을 통제해 왔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시조를 짓고 부르던 시대는 15년 전 역모 사건을 계기로 끝이 났다. 제 기능을 잃은 예술은 껍데기로만 존재할 뿐이다. 양반에게만 시조가 허용된 세상에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언어를 잃어버렸다. 언어를 잃으니 울분을 표현하거나 부당한 일에 저항할 동력도 함께 잃었다. 매일을 간신히 살아간다. 작품은 첫 넘버 ‘시조의 나라’에서 이러한 상황을 요약해 들려주며 단번에 관객을 집중시킨다.


이런 세상에서 나답게 살고 싶은 ‘단’과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이 있다. 문제가 명확하니 이들이 해야 할 일도 분명해진다. 시조의 나라 조선답게 누구나 시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비밀리에 조직을 꾸려온 이들이 바로 골빈당이다. 작품은 진과 단이 골빈당과 함께 자유를 되찾는 여정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시조와 힙합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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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연습현장

제공: PL 엔터테인먼트

 

 

‘시조의 나라 조선’을 배경으로 정한 다음, 이 이야기를 좀 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맞게 잘 다루기 위한 제작진의 선택은 시조를 힙합/랩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부른다’는 말보다 ‘내뱉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랩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음악이다. 이 장르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 ‘스웨그(swag)’란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나 스타일을 의미한다. 자신만의 개성과 멋이 돋보이는 사람을 두고 ‘스웩이 있다’라고 묘사하는 식이다. 그런 맥락에서 모두가 시조로 자기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작품 속 세계는 ‘스웨그에이지(swag age)’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처음에는 뜬금없게 느껴지던 제목이 납득이 된다. 물론 작품 내에서 스웩은 ‘수애구(壽愛口)’로 표현되며 ‘목숨을 걸어 시조 사랑을 외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시조와 힙합/랩을 연결하고 나면 단과 진을 비롯한 골빈당과 일반 평민들이 보여주는 저항정신도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다. 힙합 역시 미국의 흑인들이 빈민가에서 자신이 경험한 불평등을 세상에 전하려는 열망으로부터 발전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시조가 검열당하고 오로지 특권층만 자유롭게 시조를 할 수 있는 시대,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랩과 비슷한 형태로 세상에 꽂힌다. 각운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가사는 중독성이 있고 “이것이 당연한 일인가” 반복되는 물음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시조가 힙합/랩과 함께할 때의 또 다른 장점은 고증의 문턱이 낮아지고 다양한 퓨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탈춤에서 스트릿댄스로 이어지는 앙상블의 안무, 국악기 소리 위에 깔리는 랩 등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어색하지 않은 퓨전은 꾸준히 언급되는 이 작품의 매력이자 개성이다. 인기 소설과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과 이미 고정 팬이 많은 대극장 뮤지컬 사이에서 사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이 독특한 정체성에서 비롯되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품



 


남녀노소 상관없이, 뮤지컬이 처음인 사람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 역시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큰 장점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천방지축 아웃사이더이지만 자유로운 나라에서 나답게 살고 싶어 하는 ‘단’과, 골빈당의 일원으로서 집안의 뜻을 거슬러 대의를 이루고자 하는 ‘진’ 두 사람의 목표도 알기 쉽고 분명하다. 별다른 정보 없이 공연을 보러 가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이유다.


압제에 저항하는 이야기이지만 진지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흥 넘치는 뮤지컬이 된 것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와 패러디, 신나는 넘버 덕분이다. 조선시조자랑은 자연스레 전국노래자랑을 연상시키고, 힙합에서의 MC를 패러디한 듯한 ‘엄씨’는 관객의 호응을 유도한다. 1막 초반부터 ‘조선수액’에서 각운과 언어유희를 활용해 흥을 돋운 다음, 1막의 끝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탈춤을 떠올리게 하는 ‘이것이 양반놀음’으로 양반 풍자를 하며 웃음을 자아내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흥겹다 보니 지난 시즌에서는 싱어롱 회차를 따로 마련해 관객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렇듯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자신만의 스웨그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사연에 이르렀다. 이제는 국내 무대를 넘어 해외 진출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에는 'K-뮤지컬 로드쇼 in 런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런던에서 쇼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보편적인 주제의식에 한국적인 요소를 담아 쉽고 유쾌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더 멀리서, 더 다양한 관객과 함께하는 날을 기대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사연을 맞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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