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사유
내가 수집하기 시작한 건 20대 초반부터였던 것 같다. 유명인들의 애장품이나 비싼 피규어, 야구선수의 사인볼처럼 눈에 보이고 값이 매겨진 것들을 수집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수집한 것은 내 감정, 어떤 찰나에 포착되는 순간, 나를 정의하는 가치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었다.
나는 미술을 전공했고, 늘 새로운 작업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창작자였다. ‘새로운 것’, ‘뭔가 특별한 것’, ‘있어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야 했다. 때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무언가에 번지르르한 말을 덧붙여 ‘작품’이라고 선보이기도 했다. 근데 이것이 바로 예술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감히 말해보고 싶다.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 또 그 과정에서 정말로 찾아지는 그것의 가치. ‘이게 내게 의미 있는 이유는 뭘까’,‘나는 왜 이걸 선택했을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이 내가 계속 수집하고, 기록하고 싶은 이유다.
![[포맷변환][크기변환]라이팅룸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21192523_nzuzrwfz.jpg)
모든 예술은 결국 ‘기록’에서 시작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말 근사한 행위다. 그래서 나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기도 써보고 그 일기를 구겨보기도 하고 다시 펼쳐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일기를 보여주기도 했고, 반대로 그들에게 일기를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 경험들은 나에게 기록을 예술의 재료로 바라보는 시각을 심어주었다.
![[포맷변환][크기변환]라이팅룸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21192559_uezlmdyh.jpg)
["대단한 삶의 변화는 아니더라도 나로서 분명해지고 명확해지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
라이팅룸이 내민 철학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가장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이 작은 공간을 빌려 담담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드라마 <안나>에 나오는 유미의 독백이다. 매일 일기를 쓰려고 하는데 어차피 내 일기고 아무도 읽으면서 진위를 따지진 않을 텐데 자꾸 사소한 거짓말을 쓰게 되곤 했다. 혹은 나도 모르게 신경을 써서 어딘가 다듬어지고 포장된 문장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만큼은, 정말 처음으로 100의 솔직함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내가 쓴 글인지 모르니까. 오직 나만 그것을 아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나 이렇게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으니까. 현실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말하기엔 너무 미안하고, 창피한 것투성이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곳에 모든 걸 다 쏟아내고 왔다. 내 방에 있는 일기장보다 더 진솔한 일기장이 그곳에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일기를 쓸 거라면, 굳이 그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라이팅룸에 들어가는 순간 특별하게 느껴졌다. 작은 음악만 흐르는 아주 조용한 공간이었는데 마치 시끌벅적하게 웅성거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들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이 글로써 남겨져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의 감정은 목소리나 표정으로 가장 잘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글만으로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어느새 혼자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기록 애호가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기록은 어떤 형태이든, 작고 사소한 낙서일지라도,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값진 예술이다. 나처럼 이 공간에서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