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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진행되었던 독서 모임의 주제는 SF 소설이었다. 독서모임을 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SF이라는 장르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무궁무진한 장르인 줄은, SF라는 단어 하나가 담을 수 있는 세계가 이리도 크고 거대할 줄은 정말 몰랐다.

 

SF에도 하드 버전과 소프트 버전이 있다고 한다. 하드 버전의 대표적인 작가가 테드 창인데, 영화 <컨택트>의 원작을 쓴 저자이자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독서 모임을 통해 그의 소설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여러 단편을 엮어 만든 책이었는데, 어떤 이야기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쯤 누군가 말했다. 이것이 하드 버전의 특징이라고.

 

개인적으로 읽어보았던 SF 소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소프트 버전의 SF였던 것 같다. 그때도 오늘 소개할 배명훈 작가의 책이었다. SF를 빙자한 로맨스 소설. 마음이 찡한 이야기였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소프트 버전의 SF는 이해가 어렵지 않다. 종종 과학적 지식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이야기의 구조를 형성하는 도움말 정도이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 즉, 골자는 일상적이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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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버전의 SF가 더 좋냐, 더 우수하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에게 잘 맞는 방식을 찾아 읽으면 그만이다. 나 같은 경우에 하드 버전은 SF 장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역시, 친숙도는 소프트 버전이 더 높다. 따라서 손이 가는 쪽은 아무래도 소프트 버전 쪽인 것 같다.

 

그래서, 배명훈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책 <기병과 마법사>는 작가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한반도 북부 너머의 대륙을 떠오르게 하는 상상의 공간과 전근대를 연상하게 하는 상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판타지이며, 주인공은 스스로를 송곳이라고 생각하는, 영민하고 단단한 스물일곱 살의 여성 영윤해이다.

 

따라서 소설 속 세계는 과거의 한반도를 닮아 있다. 하지만 결국은 가상의 세계이다. 소설 속 세계에서 주인공 영윤해는 역사의 끊어진 고리를 다른 시대 예언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연결해 내며, 독재와 폭정을 저지르는 파괴적 군주와 맞서는 한편, 세계를 파멸로부터 구해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바로 초원의 기병 다르나킨이다. 영윤해는 그를 만나, 그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다. 책에 등장하는 기병의 존재는 서양 중세 배경의 판타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저자는 이를 한국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반도 지역의 기병에 관한 역사학과 군사학 분야의 논문 수십 편을 찾아 읽으며 다르나킨이 딛고 설 배경을 구축했다고 한다. 이처럼 치밀하고 세세한 사전 조사 덕분에 소설 속 기병의 존재가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왠지 초원에 정말 그런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소설에서 느꼈던 것처럼, 배명훈 작가의 문장은 참 아름답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탁월한 묘사와 감각적인 단어 배치로 각각의 문장들이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전체 이야기의 구조도 무척 탄탄하고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문득 마음에 꽂히는 문장의 맛이 훨씬 짜릿했다.

 

책 <기병과 마법사>는 독특하면서도 친숙하고, 탄탄하면서도 아름다운 판타지 소설이다.

 

김초엽 작가가 말한 것처럼,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놀랍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앞으로 점점 더, 더위와 습기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럴 때는 마음이라도 시원하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판타지 소설을 읽기 딱 좋은 계절, 여름. <기병과 마법사>는 그런 여름에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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