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안진진은 어느 날 아침 문득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한다고 외친다.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인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나’라는 개체를 이다지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안진진은 인생을 살아가며 탐구해야 하는 무언가로 정의 내린다.
책 <모순>은 1998년 출간 이후 작가의 메모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히며 현재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 중 하나이다. 책장의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는 진진이 삶의 선택을 하고 나아가는 과정 일부를 긴 시간 함께한다. 이윽고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나’는 ‘독자’도 ‘안진진’도 아닌 무언가가 되는 기분이다.
삶은 한 줌의 모래알 같은 것이다. 온전히 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틈으로 모래알은 빠져나간다. 무언가를 붙잡으려 할수록 그 무엇도 손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를 밟아오며 계획을 세우고 나면, 계획대로 흐르는 삶이 지루해져 감정이 따르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또 후회를 반복한다. 이성과 감성이 교차하며 살아가는 삶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람에 쉴 새 없이 흩날린다.
“우리는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우리는 인생을 쉽게 두 갈래로 분류한다. 부유와 빈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이는 우리가 선택이라는 불가피한 길에 서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길을 간 사람의 삶을 정반대로 보거나 쉽게 재단해 버린다. 하나의 선택이 꼭 또 다른 선택을 종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선택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해 버린다.
안진진에게는 일란성 쌍둥이인 엄마가 있다. 엄마는 남자를 잘 못 골라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이모는 괜찮은 남자를 만나 평범하고 단란한 일상을 살아간다. 외양이 똑같은 둘을 대척에 두고 감정에 따르는 주정뱅이 아버지와 건달 동생을 계획적이고 성실한 이모부와 명문대에 진학한 사촌들과 비교한다. 안진진은 불행에 익숙하다. 아빠라는 작자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행사하며 집안 물품을 부수었고, 그러다 어느 날은 홀연히 집을 나가버렸다. 동생은 성인이 되자마자 건달 행세를 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교도소에 수용된다. 그녀는 그저 시장에서 양말이나 팔며 매일 신경을 곤두세우는 엄마를 안쓰러워할 뿐이다.
이러한 대척점은 사랑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안진진의 두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사람이다. 김장우는 그녀에게 설렘을 주며, 나영규는 그녀에게 완벽한 인생을 주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소설이 진행될수록 독자는 안진진이 되어 둘을 평가한다. 나영규는 계획적인 남자이다. 데이트 코스부터 그의 삶까지 고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촘촘한 계획이 들어차 있다. 안진진은 그에게 자신의 모든 불행을 털어놓는다. 동생이 수용된 사실도, 집을 나갔던 아빠가 치매로 돌아왔다는 것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김장우의 불행을 들어주기만 할 뿐 자신의 불행을 나누지 못한다. 안진진에 비해 얕은 고통을 견디고 있는 김장우에게 자신의 불행이 부담될 것 같아서였을까. 어쩌면 안진진은 김장우에게 괜찮은 여자이고 싶었다. 적어도 그의 앞에서 안진진은 긍정적이고, 진정으로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안진진은 김장우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라고 결론 내린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인생의 선택과 다름에서 안진진은 결국 이모의 죽음을 맞이한다. 엄마와 달리 부유에 속했던, 행복에 기울었던 이모의 인생은 자살로 막을 내린다. 이모는 삶이 지나치게 평탄해서 지리멸렬했다고 서술한다. 이모는 괜찮은 남자를 만나 명석한 자녀를 두고, 폭행이나 빈곤 따위는 모르는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첫눈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평생을 천진난만하게 살아왔던 이모는 평생 제 쌍둥이 언니를 부러워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주저앉는 대신 불행을 과장하고 무쇠처럼 단단하게 불행을 해결하는 언니의 삶을 보며 평온한 삶에서의 자신을 두려워했다.
개개인의 불행과 행복은 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갈림길에서 마주하는 것은 행복과 불행이 아닌 어떠한 불행과 행복을 맞이하느냐 그뿐이다. 그래서 안진진은 사랑하는 김장우 대신 이모부와 비슷한 나영규와 결혼한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녀는 인생을 재정의한다. 인생은 탐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가며 탐구하는 것이다.
손에 쥐어진 모래는 자갈이 박힌 모래일 수도, 해수욕장의 관리된 고운 모래일 수도 있다. 자갈은 상처를 내지만 바람에 쉽게 흩날리지 않고, 고운 모래는 부드럽지만 쉽게 날아가 버린다. 개개인의 불행과 행복에 대해서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은 그저 내게 들이닥친 모순 덩이리인 인생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불행과 행복을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