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따뜻한 햇살, 향기로운 풀꽃, 포근한 정취. 고즈넉한 나무 오두막과 낙엽을 뒹구는 많은 동물. 평소 잘 느낄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삶을 재현해 낸 게임을 좋아했다. 현실에서는 살아가기 힘든 매일을 아주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살아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스타듀 밸리와 동물의 숲, 놀러와 마이홈 같은 게임들이 대표적이었다. 이 게임들을 즐기다 보면 나의 집과 정원은 어느새 환상적인 아지트가 되어있었다.
게임 내에서는 집을 꾸미는 것뿐만 아니라 요리와 옷, 가구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무와 돌을 캐고, 천을 짜며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정말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면 어떨까,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사실 이런 분위기와 삶을 지향하게 된 건 그저 게임 취향이 이래서가 아니다. 명확하게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흐릿한 기억 속에서 이런 장면을 좋아했던 순간들을 몇 번 짚어볼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속에는 타샤의 집이 있었다. 어릴 적 보았던 따뜻한 온기를 지닌 자연 속의 집. 타샤 튜더의 삶은 그런 면에서 완벽한 나의 롤모델과 다름없었다.
타샤의 삶을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다. 따뜻한 색감의 북커버와 슬쩍 들춘 내지에 실린 양초의 사진을 보고 바로 빠져 책을 대출했다. 어쩌면 그 시점이 나의 취향 한쪽을 완성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봐도 타샤의 삶은 놀라움 그 자체다.
동화 작가로 활발히 활동해서일까, 타샤의 삶은 정말 동화와도 같다. 베를 짜고, 요리를 하고, 뜰을 가꾸는 그런 모습들이 여지없이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어쩜 이리도 단란하고 포근할 수 있나 싶다.
그러나 동화 같은 삶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타샤는 알려준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꾸려내어야 했기에 타샤의 손은 그만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예쁜 바구니와 옷, 폭신한 이불을 얻기 위해 매일 할 일이 넘쳐나지만, 타사는 그 과정을 즐긴다. 타샤 뿐만 아니라 타샤의 집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기 제 구실을 하고 있다. 계절에 맞춰 자라나는 들꽃과 나뭇가지, 옷감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양과 고소한 치즈와 버터를 주는 염소까지. 모든 것이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있고, 순리에 따라 차근차근 삶의 걸음을 맞춰간다.
그렇게 ‘코기 코티지’는 그 자체로 숨을 쉬듯 굴러간다. 이렇게 말하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떠오르기도 하고, 타샤가 소피같이 보이기도 한다. 부지런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 둘이 겹쳐 보인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내고, 또 그 물건을 이용해 다음 삶을 영위하는 삶.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부지런함과 노력은 가히 존경할 만하다.
그만큼 타샤는 모르는 것이 없다. 타샤가 쌓아온 삶의 지식들은 잊히지 않고 일상 속의 모든 순간에서 빛을 낸다. 그렇게 갈고 닦인 지식은 지혜가 된다. 지혜는 쌓여 연륜이 되고, 그렇기에 타샤의 눈은 언제나 햇빛 아래에서 빛나고 있다.
읽는 내내 어떡하면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봤다. 좋아하는 것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다 보면 될까.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들에게 애정을 쏟으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할까. 타샤와 같은 손재주를 가지려면 얼마나 많이 만들고, 실패하고 완성해 봐야 할까. 이런 생각들에 머리가 살짝은 복잡해졌지만 그만큼 하나하나 시도해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도 생겨났다. 그렇게 하루를 쌓다 보면 이 책 속 타샤의 나이쯤에는 타샤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나의 책상도 둘러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꽤 많았다. 아주 작은 나만의 코기 코티지인 셈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타샤가 만든 파이와 예쁘게 모양을 갖춘 염소 버터였다. 손수 만들어진 양초도, 직접 짠 복잡한 패턴의 담요도 오랫동안 잔상을 남겼지만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음식들의 맛은 평생 궁금증으로만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맛일지, 어떤 질감일지 상상하다 보면 내가 만들고 싶은 꿈의 음식들도 몽글몽글 떠오른다.
따스한 햇살도, 벼락같이 찾아온 폭풍우도 모두 겪어오며 안락한 보금자리의 대명사로 불린 타샤의 집. 지금이야 최첨단 기술력이 적용된 스마트 홈들을 꿈꾸지만, 나는 여전히 타샤의 집을 로망에서 지우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집을 갖게 되면 꼭 타샤처럼 포근한 방을 만들고야 말리라, 다짐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