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청명한 요즘, 그리고 장마가 얼마 남지 않은 요즘, 그래서 동시에 요즘의 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맑은 날씨가 더더욱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1년의 날씨 중 이맘때의 청명하고 약간의 더움만이 느껴지는 이 날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이다. 아마 이 계절의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한가운데 있는 날씨를 만끽하면서 전시장에 가는 것임에도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주기적으로 다니는 상담을 다녀오고 나서 향하는 발걸음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각각의 회기마다 들여다보기 싫은 나 자신을 불편하더라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상담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가만히 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때의 나 자신을 내가 너무 싫어한다'라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결과물을 생산하고 있을 때의 자신에 대한 '이상(Ideal)'이 너무 높아서, 반대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이 그날의 상담 내용이었다.
나 자신을 비난하는 자아가 크다는 건 이전의 상담을 통해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바지만, '그런 나는 또 왜 그런건지' 무수한 비난의 굴레 속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런 무거움을 안고 전시장에 입장하게 되었는데,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자 단순한 선들이 자아내는 유쾌함과 귀여움에 무거운 마음이 한 꺼풀 진정될 수 있었다.

조르주 블로크는 콜마르 출신의 프랑스 화가로, 그의 작품들은 주로 간결한 선과 상징을 이용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풍경들을 풀어내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유쾌해서 전시 초입에 있을 때만 해도 나는 그가 표현해고자 하는 가치가 프랑스 작가들이 흔히 주로 표현해내곤 하는, '삶의 환희(Joie de Vivre)'와 같은 긍정적인 가치들 위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의 여러 작품을 감상하던 그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는 기다립니다>라는,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인연이 '실(혹은 선)'으로 연결되어, 만나기도 하고 이별하기도 하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그려내는 영상 작품이었다. 한 아이가 태어나 옆에 있는 선 하나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그 선과 함께 자라나는 그 아이는 어느덧 청소년이 되고, 어느새 또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때 그 선은 서로를 연결해준다.
이내 그 선은 사랑하는 여자의 출산 과정에서 연결되어 있는 '탯줄'이 되어 한 아이가 또 태어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선은 태어난 아이의 장난감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아이를 낳았던 여자는 나이가 들어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선은 마치 그를 위로하는듯 관의 리본이 되어 주기도 한다.
전시장에 처음 입장했을 때의 유쾌한 느낌과 달리, 영상에서는 한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의 삶을 다루면서 한 인간이 겪는 여러 다양한 감정과 경험이 묵묵히 전개되고, 마침내 그 삶이 종료되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살아가면서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는 게 인생의 진리'라고는 하지만, 요즘 들어 삶에서 힘든 일을 마주하게 되면 그 일의 실제적인 크기보다 그것을 더 크게 여기게 보니 삶의 무게가 새삼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르주 블로크가 남긴 이 영상 작품을 가만히 의자에 앉아 관람하다 보니, '어쩌면 그 무게를 덜어내서 조금은 더 가볍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인 것을, 내가 나 스스로를 당장의 욕심과 불안에 나 스스로를 가두려 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단편 영상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선의 간결한 움직임들이 마음을 울렸다. 울리다 보니 정작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다.
여러 삶의 과정들에서 끊임없이 움직여가는 선의 모습 자체는 중립적이나, 그 선들이 주는 의미는 마치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이 살아온 나이테를 그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상 속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한 가시화된 삶의 나이테를 보며, 내 삶의 나이테는 또 어떻게 그려지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전시장을 나오고 나서는 커피 한잔을 마셨다. 써야 할 글이 있어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끄적이다 먹고 싶은 저녁 메뉴가 생각나 커피 한잔을 금세 다 마시곤 짐을 정리해 이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유난히 그날따라 커피 한 잔도 맛있었고, 먹고 싶었던 저녁 메뉴도 그날따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전시를 본 이후의 발걸음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짐에,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