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영화들이 다뤄왔고 결국 결혼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거의 모든 영화 100중 99의 영화, 어쩌면 100까지 모든 영화가 사랑을 다뤘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은 그만큼 다른 영화들이 쉽사리 떠오르기도 쉽고, 진부해지기도 식상해지기도 쉽다. 잘 이용하면 그만큼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사랑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이 결혼 이야기라는 작품은 그 내용적인 면에서, 대사적인 면에서, 연출적인 면에서 모두 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첫 나레이션은 남편과 아내, 즉 이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에 관해 그간 느꼈던 배우자의 인상과 느낌을 글로 쓴 걸 그대로 읽는 걸로 시작된다. 그 나레이션에 맞춰 각각의 배우자가 마치 짧은 단편처럼 오프닝을 장식하고 그 뒤 본격적으로 두 남녀의 이혼이 진행되는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남편은 브로드웨이에서 극단을 연출하고 아내는 미국 la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다. 즉 뉴욕과 할리우드라는 거리적 격차를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수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살아온 것이다. 잘되지 않았을 적, 무명 시절부터 서로 함께해오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버텨온 뒤 결국 두 사람 다 어느 정도 결실을 맺게 되었을 무렵, 그 사랑의 약속도 같이 깨져버리게 된다.
쌓이고 쌓이던 게 결국은 폭발하고 만 것이다. 이혼도 그렇고 어떤 것이든 그 엇갈림이란 건 단지 그 순간의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간 쌓여왔던 그 수많은 것들이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이 단지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이는 작은 부싯돌로써 작용해 크게 터져버리는 것, 그것이 결국 충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그 엇갈림의 씨앗, 그것의 발육과 성장이 되는 것이다.
두 사람 다 이혼을 앞둔 두 남녀라고 하기엔 여전히 서로에게 약간의 애정이 있어 보이는 듯도 보였고, 생각보다 평온하게도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변호사를 두고 재판에서 법적 다툼을 벌일 때, 서로는 침묵을 유지하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날뛰는 변호사 앞에서 결국은 두 사람 모두 지칠 대로 지쳐버려 이제는 정말 갈라서고 싶은 듯 보인다.
그 뒤, 조용한 집에서 두 사람은 그냥 합의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서로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굉장히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그간 쌓아왔던 이야기가 화산이 터지듯이 폭발적으로 새어 나온다. 남편의 말도 이해가 가고, 아내의 말도 이해가 가고, 그들의 자녀 헨리를 둘러싸고 하는 이야기들도 너무나 공감도 가고 누구 편을 들 것 없는 그런 딜레마적인 상황이라 참으로 갑갑하고 씁쓸했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정서적으로 집약되어 온 감정이 가장 폭발하는 신이라 배우들의 연기도 그만큼 인상적이고 감정적으로 모든 힘이 소진되는 것처럼도 보였다. 롱테이크로 배우들이 동선까지 이동해가며 토해내는 그 울부짖음이 화면 안에 담겨 우리에게 보일 때, 그 감정의 요동침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조핸슨,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인 것은 알았지만 그 신에서만큼은 이혼을 다룬 어떤 이야기, 어쩌면 이혼이 아니라 결혼이라 표현하고픈 그 이야기 중에서도 가히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것 같다.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찰리가 마지막에 울분을 토해내며 당신이 차에 치여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니콜에게 말하는데 나는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길, 분명 자기 자신도 깊이 후회할 말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 말을 들은 니콜 역시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이 장면이 이 영화가 결혼을 다룬 다른 이야기들과 차별화되는, 이 영화가 특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니콜은 그 말을 듣고 주저앉기보다, 그 말을 내뱉자마자 울음을 토해내며 주저앉은 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수년을 함께한 세월이 그들을, 그 공간을 모든 것이 소진된 사랑 뒤의 공허함을 감싸온다. 니콜 역시 그 말이 찰리의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찰리 역시 자신이 내뱉은 말을 너무도 깊이 후회할 것을, 내뱉자마자 주저앉아 울게 될 것을 알았지만 그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설움과 울분에 토해내듯 뱉어낸 것이다.
니콜도 그걸 알기에 찰리의 말에 상처받기보다 진심 하나 없는 그의 말들을 가뿐히 걷어내고 주저앉아 우는 그를 부드럽게 감싸준 게 아닐까 한다. 결국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듯 보이고 할로원데이 날 집으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 찰리는 그녀랑 같이 살고 있는 듯 보이는 남자와 마주하고 바로 뒤 니콜을 마주해 그녀가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는다.
찰리 역시 큰 작품을 연출할 기회를 얻고, 결국 그들은 갈라서고 나서 서로 더 날개를 펴게 된다. 갈라섰던 게 더 큰 힘으로 작용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그렇게 더 날개를 편 상황에서 두 사람이 그런 소식을 주고받을 때는 왜인지 씁쓸함이 서려 있는 듯하다.
그 뒤, 오프닝 나레이션으로 나왔던, 찰리에 관해 쓴 니콜의 글을 아들이 읽고 뒤이어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겠다는 아이의 말에 찰리가 마저 그 글을 읽어 나간다.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듯해 보이는 목소리와 표정 뒤, 어느샌가 니콜 역시 묵묵히 첫 오프닝 나레이션을 듣던 우리의 입장이 되어 같이 그의 입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글을 듣고 벅차오르는 듯한 표정을 보인다.
이제 말이 안 되긴 해도, 그를 평생 사랑할 것이라던 그녀의 마지막 대사. 오프닝에선 나오지 않았던 그 말이, 결국 완전히 갈리지고 정착한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얹히게 되자 슬픔도 기쁨도 아닌 어떤 정서가 마음 깊은 곳을 고요히 진전해 그 몇 초간의 침묵에서 수년의 세월을 목도하도록 한 것만 같았다.
마지막 다시 헨리를 자기 차에 태워 가는 찰리의 뒷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서서히 크레딧을 올리며 엔딩을 장식한다. 결국 파도같이 요동쳤던 그들의 결혼 생활, 이혼 생활은 편안한 일상으로 다시 정착하게 된다. 결코 슬픈 엔딩은 아니고, 두 사람 모두 계속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그런 식의 일상이 그들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나레이션을 읊조리던 찰리의 목소리와, 목이 메인듯한 목소리로 끝까지 읽어내려갔던 니콜의 글, ‘난 평생 그를 사랑할 것이다, 이제 말이 안 되긴 하지만’이라는 그 말이 평온해진 그들의 일상, 행복에 가까워진 그들의 일상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게, 다시금 그들이 결합하길 바라는 질척임으로 나를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