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토요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ARTE)가 공동으로 개최한 문화예술다큐 특별상영회에 다녀왔다. 예술가와 예술 그 자체를 다채롭게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4개가 하루 동안 상영되었다. 관람객들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예술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그 가치를 재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1회차와 2회차 상영작이었던 <헤어날 수 없는 아름다움, 밀로의 비너스>와 <영혼의 눈동자> 두 작품을 관람하였고, 그 특별했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1회차 : 나타샤 길러, <헤어날 수 없는 아름다움, 밀로의 비너스>
먼저 상영회의 시작을 열었던 나타샤 길러의 <헤어날 수 없는 아름다움, 밀로의 비너스>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자리한 세계적인 작품 ‘밀로의 비너스’를 둘러싼 수많은 언어와 시선을 재구성한 영화이다.
‘걸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작품 자체의 내재적인 가치가 기반이 되어야겠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 또는 사회가 부여하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내재적인 가치 또한 외부의 평가에 의해서만 탄생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예술 작품의 사회성을 꿰뚫어서, 미술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등 각 분야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밀로의 비너스를 대상으로 제시하는 통찰을 엮어낸다. 밀로의 비너스의 명성이 형성되는 과정부터, 제국주의적 약탈, 페미니즘적 권력구조까지, 하나의 조각품이 역으로 설명해 내는 인간사회의 성질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조각의 불완전성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잘 모를 때 그가 가장 매력적인 것처럼, 기원전 2세기에 탄생한 밀로의 비너스는 잃어버린 두 팔과 작가의 미상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불완전함은 곧 상상의 여지가 광대하다는 뜻이다. 원작의 팔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작가는 누구였는지 등은 관객의 추측과 논쟁으로 끊임없이 다루어지면서 작품의 가치가 재생산되는 동력이 된다. 이는 모나리자의 눈썹을 두고 벌어지는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밀로의 비너스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라면, 이것을 제작하는 과정부터 사회적 아름다움이 반영되었음은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 놀라운 일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오랫동안 ‘미의 기준’처럼 평가받아 왔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은 여성 신체에 대한 서양의 이상적 미가 형성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비너스의 신체는 애초에 비현실적으로 길고 얇은 팔다리와 과장된 비율을 가졌다. 다시 말해, 당시에 이상화되었던 미가 아주 먼 미래 사회의 기준에까지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불행히도, ‘기준’은 ‘배제’로 번역될 수 있다. 다수가 맞출 수 없는 것을 기준 삼은 오류가 얼마나 많은 여성을 배제하고 억압시켰을지를 생각하면, 예술에서 발아하는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여성의 아름다움을 좌우하는 남성의 힘에 대한 담론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비너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아프로디테’는 그 기원에 있어서 사랑과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전쟁의 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전쟁의 신은 따로 분리되고, 질투나 연애 등에만 초점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여태껏 몰랐던 다소 충격적인 사실은 아프로디테가 신화 속에서 아버지 우라노스의 고환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출산의 능력이 없는 남성의 몸에 그것을 인위적으로 부여하였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것처럼, 여성의 출산 능력은 고대부터 시기 받아온 강력한 힘 - 그래서 남성으로부터 빼앗기거나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힘이라는 것이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되고 있었다.
한편,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조각품을 ‘밀로의 비너스’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역사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조각은 그리스 작가가 만들고 그리스의 밀로스섬에서 발견된 ‘밀로스의 아프로디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프랑스 파리에 있을까? 영화에서 역사학자는 프랑스의 백작이 조각을 사겠다고 먼저 협상한 그리스의 부자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하면서 조각을 프랑스로 들여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밀로스의 아프로디테가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지금도 수만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만큼, 그녀의 아름다움이 과연 맞는 자리를 찾았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해 보물을 잃은 그리스 국민들의 마음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헤어날 수 없는 아름다움, 밀로의 비너스>는 예술 작품을 보는 시선,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지는 시선, 그 시선들이 상호작용하여 다른 시선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주목한다. 예술 작품을 볼 때 어떻게 봐야 옳게 보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옳게 본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그대로 보고 드는 생각과,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아마도 밀로의 비너스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 다가가는 저마다의 여정일 것이라고 믿는다.
2회차 : 카를로타 넬손, <영혼의 눈동자>
2회차 작품은 카를로타 넬손 감독의 <영혼의 눈동자>이다. 앞선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시선을 다룬다. 특히 사진작가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로데로의 시선이다. 오늘날 우리 거의 모두는 카메라를 하나씩 쥐고 살아간다. 무언가 기록하고 싶은 것을 보면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셔터를 누른다. 이런 ‘찍고 싶다’는 욕구를, 핸드폰 카메라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실현해 온 74세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짐작건대 이 작품은 ‘사진’을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러한 의심은 사진은 창작이 아니라 현실을 포착하는 기술에 불과하다는 시각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질문한다. 사진은 현실인가? 사진 속 세상은 현실인가? 가르시아 로데로는 촬영하려는 대상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그렇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까이 다가간 피사체에서 어떠한 감동했을 때, 그녀는 셔터를 누르고 그렇게 찍은 사진만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감정은 몹시 주관적이고 내밀한 것이다. 측정할 수는 없을지언정, 사진에 감정이 담겼다면, 그리고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이것이 단순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그 결과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감정적 경험을 준다면 회화와 사진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더군다나 작가는 돈이 목적이 아닌, 사진에 대한 강한 창작욕과 그것이 주는 기쁨을 순수하게 내비쳤다. 따라서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중 단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사진은 예술이다.
스페인 사진작가인 가르시아 로데로는 스페인 종교 행사와 이교도 행사 등을 최초로 포착했다. 그녀의 사진들에는 조국인 스페인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사랑과 존경, 또 스페인을 넘어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 대한 인류애가 느껴진다. 사진작가로서 그녀의 직업 정신은, 홀로 카메라를 쥐고 활동하는 얼핏 자유로워 보이는 작업 방식과는 상반되게 매우 엄격하다. 너무 많이 걸어서 발이 아프고, 예상치 못하는 현장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겁을 먹을 법함에도 그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성큼성큼 대상을 찾아간다. 또 그러한 도전을 정말 근면히 실천한다. 다큐멘터리 속의 모습에서 작가가 몇십 년간 걸어온 발걸음과 들여다본 뷰파인더 속 세상의 크기를 가늠하면, 물에 젖은 옷가지처럼 무겁게 축 늘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그녀가 용감히 찾아가는 사람들로 메워진 현장은 종종 강렬하고 매섭다. 동시에 생생하고 아름답다.
그녀는 작업의 대상을 인간, 특히 인간이 많이 모이는 축제로 정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 어딜 가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사진이 보여주므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심과 관용을 가질 수 있다고. 삶을 찬미하고 신을 기리고 전통을 지키는 모습. 아기를 신성하게 다루고 건강을 기원하는 모습은 어디에나 있다고. 여기에서 역시나 인간의 주제는 인간임을, 그리고 그것을 알아가는 방식에는 사랑이 깃듦을 느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라는 예술 속의 사진이라는 예술. 카메라가 담아내는 현실 속의 주관적 현실. 작가의 시선 속 타인의 시선. 액자 안의 액자로 굽어 들어가는 예술의 세계가 심오하고 황홀한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두 영화, 작품을 둘러싼 인간 사회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와, 한 인간이 그려내는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관람하였다. 다큐멘터리의 방식은, 밀로의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가르시아 로데로의 사진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매력이 돋보인다. 문화예술은 우리 사회와 아울러 숨 쉬고 있었다.
두 작품을 비롯하여 감상회에서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들은 현재 EBS 다큐멘터리 전용 플랫폼 ‘D-Box’에서 시청 가능하다.